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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INSIGHT] 사회적 대화 의제의 파레토 최적은 노동의 미래

  • 국가비전과 전략연구
  • 위원회 및 연구단
[ISSUE&INSIGHT] 사회적 대화 의제의 파레토 최적은 노동의 미래 대표이미지
  • 발행기관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 연구자임운택 계명대학교 교수

주요내용

임운택 교수 사진

임운택 계명대학교 교수


코로나 19로 인한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4월 18일 민주노총이 제안한 ‘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5월 20일 ‘코로나 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시발로 본격화되었음에도 7월 1일 민주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끝내 합의안에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은 다시 무위로 돌아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의원대회를 열어 합의안에 대해 재차 동의를 구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희망의 신호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사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사와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반복된 사회적 대화의 실패경험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1998년, 2004년, 2015년 3차례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민주노총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딱 한 번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민주노총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맺었다가 정리해고제 요건 완화와 파견법 시행 등에 합의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내부 반발로 탈퇴한 후 사회적 대화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이후 두 차례의 사회적 대화는 한국노총만 참여하는 노사정 합의로 진행되었고, 민주노총은 그때마다 대정부 투쟁으로 대처하는 관행마저 생겨났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 아래 정치권이 과도하게 시장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무리한 입법화를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와 입법 현황


사회적 대화에 대한 불신이 발생하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과잉 정치화와 입법화이다. 과잉 정치화는 노사합의에 기초하여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싶어 하는 정부의 과욕에서 비롯된다. 1998년의 사회협약이 외환위기라는 국난에 비유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온갖 사회경제적 의제를 떠안고 빠르게 진행되었다면, 2004년과 2015년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다모클레스의 검’으로 작용하던 시절에 노동유연성 확보가 흡사 경제적 효율성의 필수요인처럼 인지되어 과도한 입법화가 성공을 위한 ‘파레토 효율’처럼 인지되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실제로 노사정이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의 성과는 언제나 입법화로 평가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입법화는 당사자 간의 합의를 못 믿기 때문에 법으로 일종의 행위수칙(code of conduct)을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과도하여 노동계에서 보면 항상 불리한 조건을 합의문에 못 박아 관행을 제도화하는 ‘악마의 맷돌’처럼 인지되기도 한다. 실제로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영계의 요구와 이를 담보하려는 정치권의 과도한 입법화가 이를 추동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표 1>참조). 그러다 보니 노동계도 반대급부적인 요구사항의 입법화를 요구하여 사실상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법률적 쟁점이 중심이 되고, 경제문제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노동법 학자들의 이해조정과 국회의 입법화로 끝나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법만능주의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대화가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해당사자 간의 신뢰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러한 신뢰부족은 나쁜 경험에서 학습된 것이고, 법제화라는 강고한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기에, 우리의 사회적 대화는 현실적으로 신사협정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서구의 노사정 대화 합의문을 보면 대체로 간결하고 명료하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합의를 하면 이를 지키려는 후속 행동 조치가 당연히 뒤따라야만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예외 없는 것은 불가능한지라 하위 실행단위에서 일정한 수준의 자율적 결정 범위는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사회적 대화와 협약 당사자의 책임 준수는 기본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불신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입법화를 앞세우다 보니 사회적 대화 자체가 일종의 과잉 정치화 현상을 부르고, 합의문이 장황하다. 이해당사자 간의 대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내부자들에게 보여주는 정치적 목소리에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노동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심지어 ‘노동존중 사회’를 앞세운 이번 정부에서도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의 의제를 앞세워 대화 자체를 냉각시켜버렸다. 물론 경제계에 대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노동계가 그토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슈의 과도한 법제화를 내세워 굳이 사회적 대화를 파행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것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서도 아니다. 사회적 대화에서 굳이 민감한 쟁점을 피하자는 이유도 아니다. 사회적 대화가 작동하려면 보다 보편적이고, 노사정이 공감할 의제를부터 논의를 해야 실효적일 텐데, 처음부터 노사가 화력을 집중해야 할 의제를 들고 나와 꺼져가는 전투성에 불을 질렀다. 


소위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었던 디지털 전환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본격화될 것이다. 노동의 방식과 형태가 달라지는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 19로 발생한 고용위기와 사회안전망의 위기가 구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고용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는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고용과 사회안정망을 유지하기 어렵고, 이를 대체하는 제도의 보완이 다소 시간을 필요로 한다면, 이러한 의제를 포위하고 있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의제가 ‘파레토 최적’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노사정 대화에 대한 불신은 다가오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서 지금 내가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노동의 변화는 이전보다 급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네 가지 중요한 요인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동화, 디지털화, 인공지능, 빅데이터로 인지되는 기술혁명은 노동의 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온 디멘드(on-demand)나 긱 경제(gig economy)방식이 초래한 불안정 노동의 급격한 증가이다. 둘째, 인구절벽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허용된 이주노동이 초래할 노동력 구성의 변화인데, 사회적 갈등의 잠재적 원천이 될 것이다. 셋째, 기후변화와 에너지전환은 전통적 산업의 구조조정을 피할 도리가 없다. 넷째, 이와 같은 일자리에서의 변화는 소득 불평등을 보다 가속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긍정적 전망을 기대하기 어려워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정책논의를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사회적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동의 세계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 대화가 더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대화를 통해 임금 및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여 노동쟁의의 쟁점을 일정하게 해결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합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 대화 의제의 파레토 최적은 그간 우리가 벤치마킹했던 독일의 산업 4.0-노동 4.0 모델처럼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다. 청년 실업이 늘어가고 이 세대의 고용의 질이 기성 세대에 비해 나쁜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미래의 좋은 일자리에 대한 의제는 항상 주변화되어 있다. 지난 ‘인국공’ 사태는 그러한 현상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디지털 전환으로 새로운 기업과 기업경영방식이 등장하고 가속화되는 노동의 디지털화는 청년세대에게 점차 낯선 일이 아니다. 이는 현행 노동법과 노사관계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노동과 일자리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동을 보호하는 사회적 대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한 노동을 방치해야할까? 그러한 노동대신 청년세대를 위해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노력을 하는 것이 사회적 대화의 핵심의제가 되면 안 될까? 노사정 이해당사자간에 보다 많은, 긍정적인 사회적 대화의 상상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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