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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통상질서 변화와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이미지 한형민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2025 가을호

세계 경제 질서는 더 이상 자유무역의 확장과 개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보조금 및 관세 경쟁, 기후 디지털 규범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전례 없이 확대시키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안정적인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을 유지하면서 국제 규범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경제외교의 전략적 강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고착화와 관세 경쟁의 확산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을 전례 없이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보편 및 상호관세 추진, 중국의 전략광물 수출통제 강화, 중동 정세 변화로 인한 해상 물류 차질 등은 효율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글로벌 경제와 협력 체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 제조업의 부상과 국내 인구 고령화, 저출산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잠재성장률 하락, 생산성 둔화, 핵심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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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의 개념

이처럼 복잡하게 변화 중인 글로벌 환경은 개별 국가가 경제를 안보적 관점에서 더욱 포괄적으로 접근하도록 만들고 있다. 경제안보는 국내외의 경제·통상·정치·외교 환경변화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의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품목·서비스·기술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부적절한 해외 유출이 차단되어 국가안보가 유지되며 생산소비·유통 전반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제2조).

그런데 국가안보 차원에서 경제 부문이 다루어지는 것은 새롭지 않으며 오히려 그 범위가 다양한 위기와 함께 확장되어 왔다. 1970년대 석유파동은 원유 확보와 비축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안보’를 부각시켰고, 1990년대 정보화 확산은 사이버 공격 대응과 데이터 보호를 포함하는 ‘정보, 사이버 안보’로 논의를 넓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경제안보의 핵심 요소로 편입시켰으며, 2010년대 들어서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5G·AI 등 첨단산업과 공급망 안정화, 핵심 기술 보호가 곧 국가안보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즉, 경제안보는 특정 자원이나 부문을 넘어 산업·기술·금융·데이터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적 국가 전략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글로벌 통상 환경과 경제안보의 교차점

현재 통상 환경은 시장 개방이나 관세 감축 논의에서 벗어나 자국 중심적이며 보호주의적 성격으로 변화되고 있다. 대표적 통상 정책 수단으로는 수출통제와 대외투자 심사, 보조금 및 국경조정 조치(탄소가격, 상계, 반덤핑), 기술표준 및 데이터, 사이버 규범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통상 정책은 특정 품목의 공급망과 데이터 이동을 제한하여 원가 상승, 납기 지연 위험과 규정 준수에 대한 부담을 높이고 있으며 공급망 구조 자체에 변화를 일으켜 기업의 경영 안정성에 부담을 준다. 통상 정책으로 인한 기업과 산업 차원의 충격은 국가 차원의 생산 기반과 무역 구조에 영향을 주며, 이는 글로벌 통상환경의 변화가 개별 국가의 경제안보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안보 취약 요인과 구조적 도전

현재 한국의 경제안보와 통상을 위협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첫째, 미국의 관세, 보조금 정책은 대미 수출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운영 전략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둘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철강 및 알루미늄 등 주력 품목에 실질적 비용을 부과할 뿐 아니라 간접배출 관리를 압박함으로써 기업의 규제 대응 부담을 크게 높인다. 셋째, 중국의 전략광물 수출 통제는 반도체, 배터리와 같은 핵심 산업의 조달 안정성을 위협한다. 넷째, 홍해, 말라카 해협 등에서의 물류 차질은 운송 비용과 납기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제조업 경쟁력 전반에 부담을 준다.

마지막으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기능의 제약과 디지털 및 환경 규범의 급속한 변동성은 국제 통상 질서의 예측가능성을 저하시키며, 그 결과 기업의 준법 비용과 리스크 관리 비용이 구조적으로 증가한다. 이러한 위험 요인들은 한국의 수출 의존적 경제 구조와 글로벌 공급망 기반 산업 구조 문제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 경제안보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안보 대응을 위한 경제외교 역량 강화의 중요성

이처럼 글로벌 통상질서가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국면에서는 개별 기업이나 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제 협상력 제고와 전략적 연대를 통해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경제외교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경제외교는 단순히 무역 갈등을 중재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의 관세 및 보조금 정책에 대응한 전략적 협의, EU와의 환경 규범 협상, 중국의 전략광물 통제에 대비한 자원외교, 중동 정세 불안 속 물류 다변화 협력 등 구체적 현안을 해결하는 실질적 수단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안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확보뿐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 규범과 통상 환경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경제외교 역량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곧 한국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다.

한국 경제외교의 전략적 지향점

궁극적으로 경제외교는 관세, 규범, 공급망, 안보를 통합 관리하는 국가 역량전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다자 협력체와 양자 협상을 적극 활용해 국제 규범 형성과 공급망 협력 구도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올해 APEC 정상회의가 단순한 개최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그린 전환, 공급망 협력 등의 의제에서 실질적 성과를 발굴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외교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 규범 형성 과정의 발언권 강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정례화하여 정부 정책과 기업 현장의 수요를 긴밀히 조율한다면 빠르게 변동하는 보호무역 환경 속에서도 대응 속도를 높이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경제 외교 정책 대응이 다층적으로 결합할 때, 한국은 글로벌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고 새로운 성장의 궤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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