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IN
우주에서 법까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
어떤 연구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어떤 연구는 지금 이 자리의 토대를 다진다. 정책연구는 그 둘을 동시에 붙들어야 하는 일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안형준 팀장과 김권일 연구위원은 각기 다른 출발점 에서 같은 질문을 향해 걸어온 연구자들이다. 물리학에서 과학기술학으로, 법학에서 정책으로. 두 사람의 길은 달랐지만, 우주라 는 거대한 주제 앞에서 만났다.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공동체를 위해 더 생각하고 궁리하는 일. 두 연구자가 말하는 정책연구 이야기를 들어본다.왼쪽부터 안 형 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 팀장
김 권 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 연구위원
과학기술학자와 법학자, 우주 앞에 서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 팀장 (이하 안형준)
우주와 국방을 포함한 거대 공공 과학기술 분야의 정책 과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더 이상 과학 기술의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안보·외교·데이터 경제까 지 연결되는 복합적인 영역입니다. 이를 하나의 국가 시스템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관심은 물리 학과 철학을 거쳐 과학기술사로 이어진 제 학문적 여정과 자연스 럽게 연결됩니다. 과학기술은 중립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과 제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깊이 이해하게 된 이후, 그 것을 분석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 정책으로 설계해보고 싶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김권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 연구위원 (이하 김권일)
법학을 전공했고, 정책연구자의 길을 걷기 전까지는 주 로 국방행정법을 연구했습니다. 연구원과의 인연도 그 과정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방행정법을 연구하다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하 STEPI)에서 국방 R&D 정책을 연구하는 분을 만났는데, 연 구과제나 네트워크에서 산출된 성과가 국가정책에 실제로 반영 되는 것을 보고 매력을 느꼈습니다. 학술적 담론에만 머무르지 않 고 국민과 공동체에 직접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이론과 실무를 연 결하는 역할이 제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안형준
저도 비슷한 계기로 연구원을 선택했습니다. 석사를 마 친 뒤 과학기자로 활동하면서,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제도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현장에서 실 감했습니다. 그때부터 정책이라는 영역에 관심이 생겼고, 박사과 정을 통해 미국에서 한국의 우주개발사를 글로벌 히스토리 관점 으로 연구하면서 그 문제의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지식을 이해하는 사람에서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 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형준 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로 뉴스페이스(New Space)시대 관련 연구를 꼽으며, 연구회 벽면에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유치와 누리호 발사 성공 축하 울랩이 붙어 있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사진은 누리호 1차 발사 장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안형준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국내에 소개하고 정책 적 대응 방향을 제시했던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16년 해외에서 관련 흐름을 처음 접했을 때, 우주산업이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런 변화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던 터라, 이 를 우리 정책 환경에 맞게 해석하고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몇 년간 연구를 통해 정책 보고서 를 발표했고, 지금은 뉴스페이스라는 개념이 정책과 산업에서 널 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 이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STEPI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를 운영하면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기관 연구자분들과 협업의 지점을 늘리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연 구회 A동 벽면에 센터 유치와 누리호 발사 성공 축하 월랩(Wall Wrap)이 크게 붙어있었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권일
우주항공청의 「우주항공 법제 정책연구」가 가장 큰 전환 점이었습니다. 우주항공청 개청 후 첫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을 맡 아, 국내 우주법을 조문별로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주항공기본법안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었고, 앞 으로 국내 우주규범이 새롭게 조성될 예정인 만큼 지속적으로 법 정책 논의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수심 300m급 유인잠수정 개발에서 법정책 연구를 수행한 경험도 기 억에 남습니다.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을 방문해 국제 잠수정 규제 논의에 직접 참여했는데, 유인 잠수정처럼 이제 막 태동하는 분야일수록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국제 규범 수립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안형준
아직 구조가 만들어지는 단계의 분야에서, 그 틀 자체를 설계하는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네요. 저도 최근 에는 우주를 국가전략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민관·민군·국제 협 력을 중심으로 정책 프레임을 제시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 다. 단순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정책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 는 시도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업입니다.
정책연구자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안형준
저는 정책연구자를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해석자이 자 설계자’라고 생각합니다. 학문·기술·산업·정부·사회는 각기 다 른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이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정책연구자는 그 간극을 이해하고, 각자의 언 어를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 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기술적 가능성과 정책적 선택이 항상 일 치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바 람직하지는 않고, 반대로 정책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술적으로 준 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 사이에서 ‘실행 가능한 선 택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책연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권일
저는 조금 더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 국가와 국민, 공동체를 위하여 더 생각하고 찾아보고 궁리하는 것이 정책 연구자라고 생각합니다. 현업에 있는 국민이나 공무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생각해보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고,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봅니다.
안형준
결국 같은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정책연구자를 ‘정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제약 조건 속 에서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 고, 사회가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 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연구는 분석이면서 동시에 일종 의 공공적 설계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연구자가 함께 일하며
김권일
안형준 팀장님은 스스로 소위 ‘덕업일치’를 이룬 행운아 라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우주를 좋아해서 우주 분야에 대한 열 정과 사랑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 열정과 함께 넓은 포용성에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품으로 우주정책 네트워크의 커다란 허브가 되어 정책연구 수행에서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 니다.
안형준
네. 저는 ‘우주 덕후’인데 김 박사님을 우주 분야에 꼬시 느라 노력을 많이 했지요.(웃음) 저는 김 박사님과 STEPI에 합류 하기 전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국가 난제 연구를 수행할 당시 국방 연구개발 관련 주제에서 외부 전문가로 도움을 받으면서 처음 깊은 논의를 하게 되었고, 이후 박사님이 STEPI에 합류하 면서 자연스럽게 협력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함께 연구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의 정교함 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과학기술과 산업, 거버넌스 관점에서 문 제를 바라보는 반면, 김 박사님은 법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 도와 규범의 구조를 매우 치밀하게 분석하십니다. 같은 문제를 보더라도 접근 방식이 다르니 서로의 관점을 통해 문제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권일
공감합니다. 특히 우주나 국방처럼 법적·제도적 경계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어디서부터 는 시장과 민간에 맡겨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핵심인데, 이 부 분에서 서로 생각이 잘 맞았습니다. 단순히 정부의 역할을 확대 하거나 축소하는 논의가 아니라, 기능과 책임, 지속가능성의 관 점에서 역할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안 형준 팀장님을 통해 우주정책 수행자, 기업, 학계 연구기관 등과 협력할 수 있었고, 이런 기관 간 네트워크가 쌓이면서 연구의 폭 도 함께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김원일 연구위원은 우주항공청 개청 후 첫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을 맡아 우주항공기본법안을 만드는데 참여했다. 사진은 우주항공청 개청 관련 KTV 국민방송 유튜브 영상캡처. ⓒKTV 국민방송
정책연구자로서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
안형준
연구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제가 고민했던 문제의식이 정책 논의로 이어지고, 그것이 실제 변화로 연결되는 과정을 목격할 때입니다. 우주정책처럼 아직 구조가 만들어지는 단계의 분야에서는, 연구자의 문제 제기나 개념 정리가 하나의 정 책 의제가 되고, 그것이 제도나 조직 변화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연구가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실 감하게 해주는 순간들이죠.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별을 보며 가 졌던 호기심이 지금의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일이 ‘내가 오래 고민해 온 질문을 계속 이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낍니다.
김권일
저는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가장 즐겁습니다. 계획할 때가 제일 설레고, 산출물이 기 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도 많지만, 고민하고 생각한 바를 동료나 다른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연구자로서 행복한 순 간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온전히 하고 싶은 주제보다 주어진 주 제에서 제 생각을 풀어가고 있는 편입니다. 언젠가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온전히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 습니다.
안형준
그 마음은 저도 잘 압니다. 연구 과정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새로운 관 점을 발견하고, 서로 다른 요소들이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할 때 느끼는 지적 만족감은 연구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최근 정책연구의 흐름과 국책연구기관 간 협력
안형준
최근 정책연구의 가장 큰 변화는 현실과의 밀착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연구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d System, PBS) 변화 이후에는 국정과제와의 연계성이 강 조되면서 연구 주제와 방향이 정책 수요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연구자의 자율성과 충 돌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연구하느냐보 다 ‘어떻게 연구하느냐’입니다. 주어진 정책 과제를 해결하는 수 준을 넘어, 그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 정리하는 노력이 함께 있다면 충분히 조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권일
저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오히려 발로 뛰는 현장연구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연구는 인공 지능이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정책에서는 과학 기술인이나 기업인 등 혁신주체를 직접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해 질 것 같습니다.
안형준
그렇기 때문에 국책연구기관 간 협력이 더 중요해집니 다. 우주정책은 이제 과학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입니 다. 한 기관의 전문성만으로는 통합적 접근이 어렵고, 협력 연구 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다만 각 기관이 자신의 전문 영역을 나 열하는 방식으로는 시너지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하나의 정책 문제를 중심으로 각 기관의 전문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고, 그 과정에서 언어의 통합, 즉 서로 다른 분야의 개념과 분석 틀을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묶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 니다.
김권일
실제로 저는 제 전공이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자분들과 가 까운 분야라 그분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고, 연구 주제별로도 적극적으로 국책연구기관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이어가려 노력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결이 쌓이는 과정 자체가 이미 협력의 시 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연구란 무엇인가
김권일
아직 좋은 연구라는 것을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연구를 위해서는 상념(想念이 아니라 常念), 즉 쟁점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각도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간 압박에 이기지 못하고 급 하게 글을 쓸 때가 있지만, 2~3년 이상은 고민해야 좋은 결과물 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연구의 대상이 국민 전체라는 점 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들이 점 점 다양성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 큼, 많은 분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연구하고 그 방향성을 잃 지 않는 덕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형준
좋은 연구란 기존의 지식과 정책 위에 ‘의미 있는 한 걸음 을 더하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할 때 “내가 이 분야에 돌 하나를 얹는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이 질문이 명확해지면 연구의 방향과 깊이도 자연 스럽게 정리됩니다. 연구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는 지적 성실성과 동시에 유연성을 꼽고 싶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과,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 열린 태도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국책연구기관 연구자로서 학술 연구와 정책 연구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구자, 어떤 동료로 기억되고 싶은가
안형준
개인적으로는 학술적 깊이와 정책적 실천력을 함께 갖춘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연구가 실제 정책과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가 더 중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에게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연구는 결국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수 있는 동 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과 다시 한 번 같이 연구해보 고 싶다” 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이 연구자로서 가장 의미 있는 기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권일
먼저 법학자로서 제 분야에서 요구되는 법도그마틱(법해 석학) 작업을 충실히 수행해 좋은 연구 실적을 남기는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정책연구자로서는, 같이 연구하면 유익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연구는 함께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좋은 성과도 나온다고 믿습니다.
안형준, 김권일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 팀장, 연구위원
2026.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