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 IN  

이론과 현실의 경계에 선 법제연구자의 시선

최환용,최유경한국법제연구원 부원장실 과제감리단 선임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사회적가치법제팀장 2022 여름호

국가 입법정책 지원과 법제 발전을 위한 방법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한국법제연구원의 두 선·후배 연구자가 만나 법제 전문 연구자이자 국책연구기관 종사자로서 정체성과 고유성, 입법정책연구의 방향성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풀어냈다. 그들이 지향하는 좋은 연구란 무엇일까.

최환용

저는 학문적 차원에서 지방자치법제를 다루고 있고, 연구원에서는 해양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처음 입사해 해양 폐기물 투기 관련 연구를 수행하면서 학술적 영역과 입법적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국법제연구원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나 고야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기획조정실장님과 법령정보센터장님 두 분이 대학에 오셨을 때였는데 그때 연구원의 존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 한국법제연구원 박영도 박사님의 입법학 관련논문을 읽고 감명을 받았고 법사회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법이라는 것이 추상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법사회학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입법의 영역을 한번 고찰해보자는 생각에 한국법제연구원에 지원했고 다행히 지금까지 다니고 있네요.

최유경

제 주 전공은 헌법이고 법사회학 영역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입사 이후 1년에 한 번씩 사업 팀을 바꿔가며 입법 평가, 국제교류 등의 일을 했고요. 현재 사회가치법제팀에 소속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제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헌법을 전공했기 때문에 커다란 제도 중심으로 사법 영역을 바라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실생활이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은 법률의 시행령과 같은 하위법령이거든요. 유학을 마친 뒤 여러 정부부처의 연구용역을 수행하면서 이를 깨달았고, 법사회학이나 학제 간 연구는 입법의 영역에서 장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인근 국책기관들과 다년간 연구 덕분인지 이러한 수요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면접 당시에도 제 연구방법론을 관심 있게 봐주셔서 입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론과 현실 문제를 엮어내는 정책 디자이너

최환용

연구방법론에 대해서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요. 언젠가 지방자치에 대해 학술적 측면의 연구를 하면서 기회가 닿아 자치법규 실태조사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법학에서는 실태조사라는 방법론을 쓰지 않는데 과연 자치법규가 현실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거의 모든 지자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현실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지난해 협동연구로 수행한 제주 4·3사건 보상 관련 연구도 의미가 컸습니다. 다른 기관의 연구자들과 많은 토의를 거치며 연구를 했습니다. 과거사라는 주제는 특히 규범적인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입법이 갖고 있는 묘미 중 하나가 창의성인데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하며 기존 법리를 개선해간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최유경

저는 유통산업발전법 관련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대형마트 월 2회 휴무 규제 관련 연구로 경제적인 효과 분석과 더불어 사회적인 조사방법으로 설문조사, 대형 유통 담당자와 중소상인을 대상으로 한 면담조사를 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과제 선정에만 8주가 걸렸죠. 과제 수행의 계기가 된 건 대형마트 영업 규제와 관련한 헌법소원심판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600쪽에 달하는 입법평가 사례를 남겼고, 헌법소원심판 변론에 저희 연구 보고서가 활용되면서 정부의 승소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연구과제를 통해 전국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 점포 180여 곳에 대해 공무원들과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법학자로서는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 힘들었지만 직접 실태를 보며 현실에 부합하는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사회갈등의 측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느낄 수 있었던 연구였습니다.

최환용

일반적으로 대학에서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이론 체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는데 이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정책이죠. 이론과 현실의 중간 단위에서 이 둘을 엮어내는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정책연구자입니다. 정책연구자는 기본적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천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미래 지향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법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규범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입법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고찰해야만 합니다. 상당히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유경

평소 최환용 박사님을 자주 뵙진 못했지만 생각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걸 느낍니다. 정책연구자는 가교역할도 하지만 디자이너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법학은 정책보다는 현행 법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대다수 법학에 익숙한 분들은 현실이나 공무원, 정부의 수요를 알고 있지만 이론에 천착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연구자는 이론에 천착한 분들과 이론은 잘 모르고 현실 문제에만 매달리는 분들 사이에서 협의하고 조율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입법연구, 한국법제연구원의 정체성이자 독자성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이 늘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정체성입니다. 다른 기관들은 특정 기능에 맞게 깊은 고민을 하는 구조이고 거기서 비롯된 고민들을 법체계에 녹이는 과정에서 한국법제연구원이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저희는 전공이 없어요. 물론 연구자마다 법학의 세부 전공들을 갖고 있지만 정책을 다룰 때에는 전공을 불문하고 프리즘으로 비추어 보듯 법 원리를 통해 정책을 바라보는 겁니다. 이를 통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법제화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정책연구의 성과를 규범적인 입장에서 수용해야 하는 관점에서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또 어떤 면에서 보면 딱히 분야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거든요. 법학은 인간과 관계에 대한 학문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가질 수밖에 없죠.

“입법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고찰해야만 합니다. 상당히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부원장실 과제감리단 선임연구위원

최유경

조금 다른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다른 전공의 경우 졸업 이후 진로의 방향이 다양하고 그중 하나로 국책연구기관도 고려 대상이 되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법제연구원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연구원에 대한 관심 유무를 떠나 법학을 전공하는 과정에서 입법학에 대한 트레이닝이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법학의 방법론은 다른 사회학 방법론과 비교할 때 단순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영역의 전공자들이 ‘나도 법을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만도 합니다. 하지만 법은 독자성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법을 읽고 해석할 순 있지만 연구 결과를 정책화하고법률을 드래프팅하는 단계는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이나 시행령 체계가 법체계에 다 부합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법학자들이 이 단계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입법학의 영역은 어찌 보면 한국법제연구원이 앞으로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환용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법치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법의 특성 중에는 개혁적인 측면이 있거든요. 물론 이 부분도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입법 기술론적인 측면으로 접어들고 규범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정착되면 기득권 보호의 측면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입법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 틀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수 있는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다른 연구기관에서 연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이를 현행법 체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어떤 식으로 조정해나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거죠.

성과 지향보다는 틀 벗어난 사고와 시도 필요

최환용

국책연구기관 연구자들은 자기만의 연구주제가 있어요. 이를 일정 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죠. 이 미션을 벗어나서 뭔가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책연구기관 종사자들 간에 서로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한국법제연구원에 머물고 있지만 때로는 이 영역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법학 이외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원장님이나 부원장님에게 종종 연구원들이 한정된 영역과 미션을 넘어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을 드리곤 합니다.

최유경

무엇보다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구자는 근무시간을 52시간으로 하든 68시간으로 하든, 인센티브를 얼마나 주든 그런 부분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확고하고 어떤 면에선 고집과 까탈스러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무엇을 유도하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제 경우 법학에서는 학제 간 연구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재미가 있으면 돈이 되든 안 되든 없는 시간도 만들어 하게 되거든요. 형식적인 교류 협력은 오히려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틀에 박힌 행정을 걷어내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는 교류 협력의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니 조금만 시도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환용

좋은 말씀입니다.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호기심과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입니다. 어린 시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연구자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 속에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의 움직임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는 그게 연구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틀을 조금씩이라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혹 실패하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봐요.

“국책연구기관은 일부 대학보다도 우수한 연구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트렌디한 사회 현상이나 단기간 내에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정책적 쏠림 현상 속에서 늘 균형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사회적가치법제팀장

지금 당장 쓸모가 없다고 평가되더라도 훗날 가치 있는 것으로 재평가되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입법 연구보고서가 당장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몇 년이 지난 뒤에 이를 설명해달라고 연락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우리가 하는 연구를 잘 살펴보면 근대 학문 체계를 형성했던 선배 연구자들이 했던 이야기와 기본 원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선 연구의 근본, 본질에 충실한 자세를 취하면서 현실이 강요하는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최유경

국책연구기관은 민간 재원에 의존하지 않는 싱크탱크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를 하면서 느낀 장점은 정부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등의 입장을 지원하면서도 어떠한 이해관계에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경우는 없어요. 이렇게 좋은 여건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최근 연구동향을 보면 지나치게 트렌디한 단어나 개념, 현상에 쏠려 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학령인구의 감소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싱크탱크는 단순 정책 연구를 넘어 기초적인 연구까지도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고 봐요. 물론 쉽진 않겠지만 연구자 스스로도 좋은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