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지상중계  

‘고등교육 혁신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국가의 역할’ 토론회

박치현대구대학교 성산교양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2022 봄호

인문사회 학술 생태계의 국가책임성을 향해

2022년 2월 10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비판사회학회가 공동주최한 ‘고등교육혁신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국가의 역할’ 토론회가 열렸다. 비정년 트랙 전임 교원이면서 학문 후속 세대이자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로서 학문 후속세대가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연구 안전망’ 형성을 위해 국가의 직접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은 정치적 변동과 관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유달리 다른 분야에 비해 인문사회 분야는 세계화되는 K-대중문화, K-스포츠, K-문학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지 못하다.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 성격에 맞는 거시적인 연구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다. 오로지 대학교에만 맡겨놓은 상황이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대학교들이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이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고용위기, 생계 위기로 이어질 것이고 나아가 인문사회 학술 지식 생산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정부 시대에 더 심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토론회는 국가가 인문사회 학술을 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특히 학문 후속 세대 연구자를 왜 지원해야 하는지 그 ‘논리적·실증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토론회는 총 두 세션으로 구성되었는데 전반부는 정부 주도의 학술정책 형성을 주장하는 발표들이고, 후반부는 지역 대학교의 위기에 대한 발표들이다. 얼핏 보면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주제지만 지역 대학교의 위기가 앞으로 인문사회 분야와 연구자들의 위기를 더 심화시킬 것이므로 충분히 묶일 수 있는 주제다.

국가가 책임성을 가져야

단체사진

이강재(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인문사회 학술 문제를 ‘국정과제’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묵직한 주장을 제기했다. 문명 대전환 시기에 기존의 선진국 추격 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선도형 국가가 된 대한민국이 성숙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입국과 인문경국을 결합한 ‘학술경국(學術經國)’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가가 기초연구 토대를 튼튼히 해 그것을 교육으로 환류해야 하며, 결국 연구자 양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학술정책과 기초학문 연구자의 양성에 ‘국가 책임’이 필수적이며, 관련 법령 제정(학술기본법)과 학술정책연구원이나 학술진흥원 같은 학술정책 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청와대에 ‘학술 연구수석’을 신설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청와대 수석을 설치한다는 것은 국정 과제로 연구의 중요성을 승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교육수석을 부활시키되 교육연구수석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현재의 교육부를 ‘교육연구부’로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인문사회학술정책연구원’ 설립의 구체적인 청사진과 자세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김귀옥 교수의 발표는 질적·경험적 근거를 통해 도출된 주장을 제시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인문사회 연구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대학교과 학술 생태계의 현황, 특히 학문 후속 세대 연구자의 처지와 입장이 잘 드러난다. 김귀옥 교수는 연구재단 시스템에서 보듯이 인문사회 학술정책이 자연과학 정책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인문사회과학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려 ‘중장기적 정책’ 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인문사회학술정책연구원’이 설치되어야 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연구비 격차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학술장 내의 격차와 차별까지 지적한 것이 인상적이다. 인문사회 학술 연구는 소규모 장기 연구 위주로 재편되어야 하고 연구자의 정확한 실태 파악과 더불어 개별 연구자의 자율성 부여가 확대되어야 하며, 연구 결과의 사회적 공유가 필요하다는 주장 모두 중요한 지적이다. 인문사회 학술정책연구원은 단순한 정책연구원과는 다르게 학문 후속 세대의 연구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도 포함하고 있다. 연구 재단의 ‘국가학술 연구교수’ 제도와 연동하는 ‘학문정책 연구실’과 나머지 9개 연구실이 그것이다. 2024년까지 국가학술 연구교수 최소 2,000명을 달성해 학문 분야별 연구실에 배치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이때 연구 재단의 동 사업과 통폐합). 이것이 가능해지고 앞으로도 점진적으로 인원이 확대된다면, 인문사회 후속 세대에게 현재의 생계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미래의 후속 세대들에게 공부를 진로로 선택하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는 두 발표에 대한 토론에서 대학 위기 속에서 인문사회 학술 생태계를 유지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문 후속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 과제 중심으로 연구비와 연구 공간까지 제공하는 ‘기초인문사회과학원’을 비수도권 몇 곳에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김귀옥 교수가 제시한 학문정책연구실이 별도의 기관으로 독립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연구 재단이 운영하는 인문사회학술교수 A,B형을 확대하되, ‘연구 공간’을 지역 균형발전을 고려해 비수도권에 두는 지원책이라고 보면 된다.

지역 문제 연구는 집중과 협력으로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 대학교들이 교육부로부터의 예산 확보를 학교 홈페이지에 대문짝 만하게 내건다든지, 교수 연구자들이 지역문제가 아닌 수도권에 편향된 연구를 수행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사회 연구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지식 트라이앵글 개념을 적용한 말뫼 대학교 등 해외 사례를 보여주면서 대학교가 지역사회에 충분히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석열 남서울대학교 교양대학교 교수는 지역 대학 대학원들의 운영 실태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대학원 시스템이 더 이상 재생산의 역할을 하기 어려움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대학원에서의 연구를 대학원생의 경력 관리 수단이 아닌 ‘공공재’로 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한 지역 대학의 정체성과 특성화가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학원에 대한 정부의 질 관리와 평가 체계 구축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토론자인 조은주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사회에 내재된 다중적 격차 문제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지역 대학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강태경 학생(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은 대학원생에 대한 펀딩 제도가 부실함을 지적하며 대학원생에게 명확한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안정적으로 교육받고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후속 세대 연구자의 관심과 요구 절실

국가의 학술 책임은 국립대학교을 육성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립대학교라도 지역 대학은 현재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대학이 연구와 학술보다는 공룡 같은 대학교시스템 자체를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하다. 지역 대학교의 위기는 지역 대학교만의 위기가 아니라 앞으로 고등교육과 학술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분명한 미래 시나리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주문한 본 토론회의 문제의식이 앞으로도 진전되고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한다. 특히 학문 후속 세대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성과를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요구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경제· 인문사회연구회가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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