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서 정책으로  

보행자우선도로: 안전하고 걷기 좋은 도시를 위한 작지만 큰 변화

이미지 남궁지희건축공간연구원 보행환경정책연구센터장 2025 여름호

건축공간연구원의 보행환경정책연구센터는 2010년부터 안전하고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보행안전과 보행환경 개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과 삶의 질, 나아가 도시 차원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이번에 선정된 ‘우수실천과제’는 보행안전, 범죄예방, 건축물과 시설물 안전관리 등 다양한 현안과 세부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연구에서 정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잘 담겨 있는 ‘보행자우선도로’ 사례를 중심으로, 그동안의 경험과 성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보행자우선도로 : 우리나라 생활도로 현실에 대한 고민과 해법

우리나라 생활도로 대부분이 좁고 보도가 없는 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협소한 생활도로에서 '보차분리'를 위해 물리적 경계와 차단시설을 설치할 경우, 양방통행이나 일시적 주정차, 소방차 등 대형 차량 통행에 지장이 생기고, ‘단차없는 보도’로는 무단 주정차나 차량 침범을 막지 못해 보행안전을 제대로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

보행자우선도로는 보도와 차도를 물리적으로 구분하는 대신 전체 도로공간을 보행자와 자동차가 함께 이용하는 도로이다. 보행친화적 가로환경을 조성하고 보행자의 우선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안전한 공존을 도모한다는 원리이다. 보도 설치가 어려운 생활도로에서 보행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2012년 도시계획시설 규칙의 도로 분류에 ‘보행자우선도로’라는 새로운 도로 유형으로 도입되었다. 이후 2013년부터 서울시, 2019년부터 행안부의 시범사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산되었고, 2022년에는 보행안전법과 도로교통법의 개정을 통해 제도적 근거가 강화되었다. 2024년 말기준, 전국에 총 269개소의 보행자우선도로가 지정되어 있다.

보행자우선도로는 보편적인 설계 원칙과 현실 사이의 절충안이자, 우리나라 생활도로 고유 문제에 대응하는 자생적인 해법으로서 의의가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설계 요소는 ‘보행친화적인 도로포장’이다. 이는 보도나 시설물을 설치하기 어려운 공간적 제약 속에서 시각적인 대비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이다.

또한 초기부터 다양한 포장기법과 패턴에 대한 시행착오와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지자체 선호도와 체감효과가 높은 몇 가지의 권장 패턴으로 수렴하게 되었고, 지양해야 할 패턴에 대한 지침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보행자우선도로의 진화와 새로운 도전 과제

법제화 이후에도 보행자우선도로의 진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22년 3월부터 지자체와 관계 기관이 함께하는 보행자우선도로 활성화 협의체를 주기적으로 개최하여 지정과 조성 현장의 어려움을 점검하고, 제도적으로 미비한 지점을 보완하고 있다. 보행자우선도로의 사업유형별 지원 기준을 세분화하여 보도 설치가 충분히 가능하더라도 가로공간의 통합적 활용이나 보행자 중심의 장소 활성화, 상권 활성화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특화형’ 보행자우선도로를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반대로 보행자우선도로 지정을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확대할 수 있도록 설계요소와 시설기준을 간소화하여 구간당 사업비 부담을 낮추는 ‘보급형’ 보행자우선도로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다.

2023년에는 전국 도시지역 이면도로의 기초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면도로 구간 단위로 구축된 속성정보를 바탕으로 보행자우선도로 지정의 대상구간과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고 지정된 구간에 대한 현황조사와 정비계획 수립, 사후 평가 및 관리 단계까지 통합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점차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이나 교통사고 통계분석시스템(TAAS)에 보행자우선도로 관련 정보를 띄우는 날도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시작은 작고 조용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보행자우선도로를 널리 알리고 확산하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현장 실증 기반, 생활밀착형의 정책 연구에 참여하면서 얻은 기쁨과 보람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고 감사하다. 앞으로도 보행자우선도로가 생활도로의 보행권 보호와 보행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나아가 우리 도시환경과 사회문화, 공공정책 전반에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기반이 더욱 확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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