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부과와 이에 따른 주요국과의 협상도 이제는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의 협상은 이제는 양국 모두가 더 이상 갈등 확산을 바라지 않고 관리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모양새이다. 인도 및 브라질과의 협상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연내 합의 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인도는 미국이 요구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는 방향에서 미국과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도 그동안 중단되었던 협상을 재개하였고, 미국도 브라질 농산물에 부과하던 40% 관세를 철폐하여 양국 간 협상 타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국제 무역에 불어닥친 관세 광풍은 연내 또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면 상당히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근본적으로 주요국 입장에서 고율 관세로 인한 부담이 누적되어 이를 타개할 필요성이 커졌고, 트럼프 대통령도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물가 관리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트럼프 관세 이후 전개될 국제통상환경의 변화를 주시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중장기 통상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 네 가지 방향으로 전개
이후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는 크게 네 가지 방향에서 전개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국제 무역의 분절화 지속이다. 10년 전만 해도 ‘Made in World’라는 말이 국제 무역의 유행어였다. 세계 각국은 어떻게 하면 글로벌 가치 사슬에 편입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효율성을 토대로 세계를 연결하는 가치 사슬의 취약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2020년 이후는 회복력(resilience)이 국제 무역의 화두가 되었고,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통상정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였다. 더욱이 러-우 전쟁의 반발 이후 국제 정치가 개입하면서 지정학적으로 국제 무역이 더욱 분절화되었다. 향후 분절화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둘째는 기존 공급망에 일대 전환(supply chain reconfiguration)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공급망의 대전환을 가져올 핵심 원인은 기술 혁명과 기후변화 대응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자율주행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 혁명은 저임금의 이점보다는 기술력 및 관련 지식 인프라를 더욱 중시한다. 따라서 기술력과 지식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국가가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대규모 투자도 이러한 국가로 집중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지구 전체가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현상으로 향후 그린 공급망(green supply chain)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린 공급망은 탄소 저감(혹은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이나 기업, 국가 등을 공급망에서 배제함으로써 형성된다. 기술 혁명과 마찬가지로 탄소 저감 생산 기술과 능력이 있는 기업이나 국가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셋째는 국제 무역에서 서비스의 비중이 계속 커질 전망이다. 2024년 기준 서비스 무역액은 약 8.8조 달러로 상품무역 24.5조 달러의 36%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연 평균 무역 증가율을 보면 서비스 무역이 6.5%로 상품무역 4.5%보다 2%p 앞선다. 특히 부가가치로 보면 상품에 체화된 서비스가 상당하여 서비스 무역이 상품무역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서비스 무역은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무역을 관장하는 WTO가 위상이 크게 손상되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통상분쟁을 해결하는 기능은 상소 위원의 부재로 사실상 정지되었고 향후 이러한 상태는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자연히 각국은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관세, 비관세, 보조금 등 무역 저해 조치를 남발하고 있다. 여기에 미-중 갈등으로 인한 국제 무역의 불확실성 배가는 덤이다.
중장기 통상정책 방향은 ‘우리의 역할 확대’
이러한 국제통상환경의 변화 전망에 대응한 우리의 중장기 통상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특히 자원이 부족하고 중간재 수출입이 경제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재편이 예상되는 국제공급망 흐름에 올라타 그 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첨단기술의 개발(그린 공급망 참여와 관련된 탄소 저감 기술개발 포함)과 함께 우리가 보유한 첨단기술의 격차 유지가 중요하다. 특히 첨단기술과 매력적인 기술-지식 인프라 환경 조성과 유지를 통해 주요국들이 우리에게 공급망 참여를 요청하게끔 만드는 것이 공급망 활용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상정책은 기술개발과 격차 유지, 관련 지식이 어우러진 ‘테크-놀로지(Tech-Knowledge)’ 가 되어야 한다. 특히 기술개발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나 보조, 외국 기업에 대한 합병이나 투자 등이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사전 지침을 제공하고 상대국의 문제 제기에 적극 대응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재편되는 국제공급망에 올라탄 후에는 그 역할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K-컬처 등에 기반한 한국형 서비스의 개발과 전파이다. 특히 서비스를 포함 지식 산업 발전은 지식재산권 보호가 전제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지식재산권의 보호 없이는 지식 서비스 시장이 형성될 수 없고, 산업도 일정 수준 이상 발전이 불가능하다). 이를 위한 통상정책은 서비스 및 디지털 규범 정비와 함께 공급망에 있는 국가와 규범 조화가 핵심이며, 공급망 참여국 사이에 지식재산권 문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공급망과 공급망 사이의 연계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공급망과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공급망이 대립하는 지정학적인 공급망이 형성되어 이들 두 공급망 사이의 무역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중심이 되어 공급망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무역 증가는 물론 국제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에 통상전략은 떨어진 두 공급망을 효과적으로 이어주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두 공급망에 있는 국가들과의 FTA 등 양자 협력이 중요하다. 양자 협력 강화는 두 공급망을 적절히 연계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국가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안정적 공급망 확보는 우리 자체 능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상대국과 신뢰성 높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이외 중견국 및 개도국과의 공감의 통상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때 국제개발협력은 양자 이해증진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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