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합계출산율 1.3 미만의 초저출산 국가의 범주에 접어든 것이 2002년(합계출산율 1.18)부터이므로 그로부터 벌써 22년째이다. 2006년(합계출산율 1.13)부터 시행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초기에는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지원을 시작하였으나 점차 일반 기혼 가구의 보육 부담 경감에 초점을 맞추면서 2015년(합계출산율 1.24)까지는 출산율의 하락을 어느 정도 방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출산율이 다시 지속적인 하락추세로 이어지며 작년에는 합계출산율이 전년도 대비 10% 가까이 감소한 0.72명을 기록하였다.
최근 출산율 감소는 중-상 소득 여성에서 두드러져
주된 출산 연령층인 30~39세를 기준으로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 여성의 소득분위별 출산율을 살펴보았을 때 2015년 이후 저소득 분위에서보다는 오히려 중-상 소득분위 에서 출산율의 감소가 더 두드러졌다. 이는 청년들이 결혼 및 출산을 늦추는 이유가 단순히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보인다. 즉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출산 및 아동 양육시 직면하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과 이로 인한 경력 포기 등의 기회비용 증가가 최근 출산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구 증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최근 맞벌이 가구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결혼 및 출산 주 연령층인 30~39세 맞벌이 가구 비율은 2011년 41.4%에서 2022년 54.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는 ‘여성의 경력 유지’에 두는 가치가 과거에 비해 보다 중요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성의 경력에 대한 가치가 높아진 만큼 이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 또한 커졌을 것이다. 최근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는 경력 단절을 우려하여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선택이 출산율 감소의 40%가량을 설명함을 보였다. 더하여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현실은 ‘출산’과 ‘경력 유지’간의 이러한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를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의 현실적인 한계
우리나라는 영유아 보육, 아동 돌봄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을 상향하는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보육 및 돌봄 서비스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하원(하교) 후 가정 내에서의 돌봄은 또 다른 문제로 남아있다.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 맞벌이 부부가 돌봄을 위해 대표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가능하다면 고용보험 피보험 단위 기간이 180일 이상인 경우 ‘육아휴직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유급 자녀 돌봄이 가능하나 평균적인 소득을 가진 직장인이라면 절반에 가까운 소득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또한 통상 1년 간 활용 가능하므로 그 이후의 자녀 돌봄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두 번째로 부부가 각기 다른 시간대에 출근을 하는 ‘시차 출퇴근제’ 활용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가 모두 해당 제도의 활용이 가능한 직장에 근무하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므로 그 대상이 매우 한정적인 측면이 있다.
근무 유연성 확보가 우선시 되어야
독일의 경우, 만 2~3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의 주당 근무 시간은 20시간~36시간 사이에 가장 많이(55%) 분포한다. 이는 근무시간 동안에도 보육 및 돌봄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 퇴근 후에도 자녀 돌봄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이러한 근무 유연성이 보장되지 않거나 설령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업무 대체 인력 지원이 쉽지 않아 결국은 동료에게 업무가 전가되는 등 실질적으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어렵다. 2022년 기준 0~4세 아동 수 72.2만명 중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급여제도 이용자는 1.9만 명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육아 부담을 가진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전일제 근무와 육아를 병행하거나, 육아휴직 후 자녀 돌봄에 전념하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부모의 돌봄이 필수적인 영유아기에서 초등 저학년 시기까지 일시적으로 활용 가능한 육아휴직제도뿐만 아니라 가정 내 돌봄 시간 확보를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제도의 보완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보여준다. 정부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노력이 의도한 바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근무 유연성 확보가 최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업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지원 및 유인 체계를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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