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칼럼  

선행학습과 간척사업

최재경고등과학원  원장 2023 봄호

4년 전, 홍콩 중문(中文)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홍콩은 동아시아에 있으면서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이라 즐겨 방문하던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중문대학은 나의 지도교수의 지도교수가 졸업한 곳이어서 전공 분야의 연구가 활발한 대학이기도 했다. 중문대학 방문 도중 열린 학회에서 지도교수의 제자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대만 출신 여제자가 물었다. “왜 홍콩 사람들은 대만인보다 날씬하지?” 내가 거들었다. “비좁은 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자면 날씬해질 수밖에.” 모두 웃었다.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농담 속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살고 있는 공간이 구성원의 체형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선행학습이란 고질병

공간 영향력으로 한국 사회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어린 학생들은 일찍부터 선행학습을 강요받고 있다. 치열한 입시 전쟁에서 성공하려면 선행학습밖에 별도리가 없으리라. 요즘은 초등학생 사이에도 의대 입시반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의 입시전쟁은 입학정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두고 학생들끼리 벌이는 전쟁 같은 경쟁이다.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은 구성원을 남보다 무조건 빨리 달리도록 몰아간다. 이런 공간과 구성원의 상호작용은 유탄이 되어 뜻밖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유탄의 희생자는 바로 출산율이었고, 그 결과 한국은 2022년 세계 최저 출산율인 0.78명을 기록하게 되었다.

낮은 출산율의 주범 중 하나는 고액 사교육비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날로 증가하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한다. 이같이 출산율 저하, 결혼 주저, 고액 사교육비, 선행학습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들은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 다발성 증후군으로서 우리를 오랜 세월 시들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이 이런 고질병들을 퍼지게 만들었나? 선행학습은 학생이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오늘날 경쟁 도구로서 악습이 되어버렸다. 본래 공부란 것이 경쟁과는 동떨어진 순수한 행위 아닌가? 한국에서 선행학습이 횡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 출제되는 입학시험 문제 때문이다. 지정된 범위의 내용만 미리 달달 외우면서 청운의 학창 시절을 낭비하고 말 것인가?

공간 확장과 간척사업

한국의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넓은 의미의 공간 확장이 필요하다. 선행학습을 본연의 동기유발적인 학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입학시험 문제의 유형을 넓혀보자. 획일적으로 계산하는 평가점수 제도를 답안지의 관점을 다양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자. 이렇게 실행하기도 어렵지만, 막상 시행해도 공정한 평가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수가 냉소하리라. 그러나 공정하게 학생을 선발하려다 범상한 인재만 뽑고, 비범한 인물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기보다는, 기울어졌더라도 운동장을 확장하는 게 다양한 인재를 끌어들이게 해주며 공정의 문제도 덜어주지 않을까?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남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선 시험 성적밖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남과 다른 길을 가면 새로운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내 속에서 남과 비슷한 나를 단조롭게 훈련하기보다 나만의 특장을 발굴해 넓은 마당에서의 호연지기를 키우는 것이 창조성이다. 내가 주인인 공간을 확장하자는 말이다.

1970년대까지 한국은 좁은 땅덩이를 확장하기 위해 여기저기 간척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현대는 땅을 넓히는 간척사업보다 가치의 간척사업, 즉 추상적인 공간 확장이 요구되는 시대다. 남과 같은 삶 대신,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수학적 공간 확장

추상적인 공간 확장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수학에서 볼 수 있는 공간 확장의 고전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우리는 음수를 제곱하면 양수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대의 반대는 원래가 되니까. 그런데 제곱해도 음수가 되는 수가 있다. 바로 허수가 그것이다. 데카르트는 허수를 말도 안 되는 수, ‘상상의 수’라고 불렀다. 이렇게 궤변에 불과한 허수와 기존에 쓰고 있던 실수를 합쳐서 ‘복소수’라 부르고, 수학자들은 복소수의 미묘한 계산을 즐겼다. 300년이 지난 뒤, 깨달은 진리는 음수가 반대를 향하므로 180도 회전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허수는 제곱해서 음수가 되므로 90도 회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앞뒤만 나타내는 실수와 좌우를 가리키는 허수는 서로 수직이 되고, 실수와 허수를 포함하는 복소수의 집합은 2차원 평면이 된다. 애초에 순서만 강조하는 1차원의 수직선이 인간 인식의 기본 틀을 이뤄 인간은 툭하면 1등에서 100등까지 줄 세우기만 한다. 그러나 허수까지 포용하여 서열이 없는 복소평면을 보라. 360도의 다양한 시각을 허용하지 않는가?

1차원에서 2차원으로 확장하면서 추가된 회전의 특성 덕분에 복소수는 난해한 물리현상을 설명할 때 그 위용을 드러낸다. 성적순 줄 세우기에 몰입하는 한국 사회가 궤변도 들어주고 포용력 많은 사회가 되려면, 수직선을 복소평면으로 확장한 300년의 수학적 간척사업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난해한 사회현상을 해결할 때 수학적 공간 확장의 교훈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발상을 전환하여 사유 공간을 확장하고 허수 같은 궤변도 포용하자. 그리고 복소수 같은 생소한 계산을 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해보자. 이 다양성에서 허수를 닮은 혁신이 싹튼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혁신을 싹틔우고 우리의 사유 공간을 확장시켜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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