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칼럼  

함께 한 50년, 함께 할 50년

김복철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2023 여름호

세상 참 좋아졌다. 이런 말을 하면 나의 아내는 나이 든 티 좀 내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만 객관적으로 세상은 참 살기 좋아졌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이 참 많이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필자가 태어날 당시 대한민국의 GDP는 40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6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조 8,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450배 성장했다. ‘대한민국’ 앞에 붙는 수식어도 변화해왔다. 전쟁 직후에는 ‘최빈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면 1980년대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꼽혔고, 오늘날에는 ‘반도체 강국’, ‘IT 강국’ 같은 수식어들이 붙고 있다. 대한민국은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 대덕특구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근면 성실한 국민성도 한몫했지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은 가발이었지만 오늘날 반도체, 자동차 등 첨단기술이 들어간 고부가가치 제품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이 된 곳이 서울 홍릉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과학기술의 씨앗을 심었다. 이렇듯 KIST가 심은 과학기술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자라나는 데 큰 역할을 한 곳이 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대덕연구개발특구’다.

1970년대 초반 서울 홍릉 연구단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정부에서는 ‘제2학원도시’ 조성 계획을 수립한다. 이때 당시 충남 대덕군이 ‘제2학원도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1973년 12월 대덕연구학원도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78년 한국표준과학연구소가 처음으로 대덕특구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1980년대에 많은 정부출연연구소가 대덕특구에 입주했다. 30년간 몸담았었던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1989년에 대덕연구단지로 내려오게 되면서 대덕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처음 대덕으로 내려왔을 때는 허허벌판이었던 대덕특구를 기억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당시에는 ‘대전(大田)’이라는 이름답게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지금은 최첨단 과학도시로 변모했다. 현재 대덕특구에는 26개 출연(연), 7개 교육기관, 2,300여 개 기업이 자리 잡고 있으며 3만 9천여 명의 연구인력이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메카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첨단과학기술의 탄생지 대덕특구

대덕특구가 50주년을 맞이한 것이 의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의 50년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경제 발전 역사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학기술 집약도가 세계 3위인 세계적 혁신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수많은 첨단과학기술이 이곳에서 탄생했지만, 대표적인 성과 몇 가지를 예로 들면 원자력발전을 국산화시킨 ‘한국형 원자로’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1978년 개발되었다. 1986년에는 통신 강국 초석이 된 TDX와 반도체 강국의 기틀을 마련한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개발됐다. 1996년에는 통신 강국의 입지를 굳힌 세계 최초 ‘CDMA’가 ETRI에서 개발되었고, 2007년에는 세계 최고의 기록을 써가고 있는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 ‘KSTAR’가 개발됐다. 2012년에는 원자력발전의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중소형 원자로 SMART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개발됐고,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을 2020년에는 코로나19 치료제 검증을 위한 ‘코로나19 관련 영장류 동물모델’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개발됐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대한민국을 세계 7대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누리호’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됐다.

지난 50년간 대덕특구에서 만들어진 성과가 모든 구성원의 열정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듯,
앞으로 만들어갈 50년 역사도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구성원과 함께 한 50년, 함께 할 50년

대덕특구는 지난 50년간의 성과를 밑거름 삼아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재창조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대덕특구가 위치한 대전시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기업 등 대덕특구의 모든 혁신 주체가 함께 재창조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계획으로 2032년까지 스타트업 500개 만들기, 융합연구혁신센터 구축, 출연(연) 실험실 창업 혁신단지 조성, 청년·창업가 맞춤형 주택공급 시책 같은 것들이다. 이를 통해 대덕특구에 그간 축적된 지식이 교류·융합돼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그 성과가 활발한 창업과 사업화로 연결돼 기업의 성장과 산업고도화를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혁신 활동들은 '지방소멸'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성공적인 지역혁신 사례가 될 것이다. 지난 50년간 대덕특구에서 만들어진 성과가 모든 구성원의 열정이 더해진 덕분에 가능했듯, 앞으로 만들어갈 50년 역사도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미국 혁신의 아이콘이듯 대덕특구가 대한민국 과학기술 혁신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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