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세계 ‘인구절벽’ 논쟁의 중심에 동아시아 국가가 서 있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은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절벽’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이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8년 1명 이하로 하락한 이후 2022년 0.78명에 그치고 있다. 인구 천 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조출생률은 4.9명, 인구 천 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조사망률은 7.3명으로 인구 자연 증가율은 2020년 부터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특별좌담>에서는 1980년대 이후부터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관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나 왜 아직까지 효과를 보이고 있지 않은지, 대한민국에서 유독 출산율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효과를 발휘할 정책 방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구정책연구단은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수정계획(2021~2025)」의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효과적인 저출산 정책 추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2021년 겨울호부터 2022년 가을호까지 연속기획 I, II 시리즈를 통해 세계의 싱크탱크와 국가정책연구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번 <연속기획 “99년 연구회 체제”를 넘어>는 2022년 겨울호 ‘싱크탱크와 국제협력’, 2023년 봄호 ‘싱크탱크와 지역 협업’을 주제로 연구회 체제하에서 국책연구기관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변화에 대해 고민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싱크탱크와 디지털 전환’을 통해 디지털 혁명이라는 환경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은 어떤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디지털 전환은 다양한 산업 환경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계획 보고회’에서 디지털플랫폼정부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의 미래 정부 모델이자 국가전략산업이라며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책 연구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의 활용은 불가피하다. 정책지식 생태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에 걸맞은 ‘혁신’이 요구되고 있는 현시점, 대한민국 정책지식 생태계를 선도하기 위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책연구기관은 어디에서부터, 어디부터, 무엇부터, 어떻게, 무엇을 진화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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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트라우마는 극도로 위협적이거나 끔찍한 사건으로,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생명의 위협, 심각한 위해, 성적인 폭력과 관련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커다란 고통 중 하나이다. 미국 등 해외 연구에서는 70~80%의 사람들이 평생 한 번 이상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소수의 특별한 불운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닥칠 수 있는 불청객이다. 그중에서도 집단 트라우마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또는 사회 전체에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건을 말한다. 대형 재난, 전쟁, 테러, 인종 학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사건에 직접 휘말리거나 간접적인 노출을 통해 공통적인 충격과 상처를 받는다. 홀로코스트는 가장 잘 알려진 집단 트라우마 중 하나로 역사와 인류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2011년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 역시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2015년 국내의 한 언론사가 광복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조사했는데, 한국전쟁, 세월호 참사,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다. 집단 트라우마의 특징 집단 트라우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의 발달로 지구 건너편에서 벌어진 전쟁, 지진 등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며, 각종 모바일 기기는 참혹한 영상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놓는다. 참혹한 비극을 목도할 때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은 충격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구성원들의 기억에 남고, 사건과 관련한 상황이나 자극에 의해 다시 꺼내어진다. 집단의 정체성이 손상되면 부정적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되는데 사건을 직접 겪은 세대를 넘어 후세대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 르완다, 보스니아, 캄보디아 등 대량 학살 생존자의 자녀들을 조사한 연구들에서 집단 트라우마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에게서 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이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우울과 불안은 사고방식, 행동 패턴, 감정을 통해 자녀에게 전달된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부모는 자녀를 과도하게 보호하거나 과잉 감정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모의 결핍을 충족시키도록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부모와 자녀 간의 안정적인 애착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자녀의 정서적 문제로 이어진다. 몇몇 연구에서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자녀에게서 생물학적인 변화를 보고하고 있다. 스트레스 조절 중추인 뇌하수체 중심의 내분비 체계 교란이 관찰되는데 이로 인한 만성적인 코르티솔 저하는 면역기능 저하, 심혈관 질환, 당뇨병, 염증 증가와 같은 신체적인 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에서 유전자 염기서열의 변화까지 보고되어 트라우마의 대물림이 생물학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집단 트라우마는 과거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집단 트라우마의 영향 트라우마는 우리의 신념과 가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위협에 맞닥뜨리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정말 안전한지, 주변 사람들을 믿어도 되는지, 나 자신과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게 된다. 집단 트라우마는 이에 더해 집단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던진다. 불안에 휩싸인 공동체 안에는 각종 루머와 혐오가 만연하며 갈등과 분열이 발생한다. 역사적으로감염병 대유행 때 이방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증가했던 사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유대인과 집시가 ‘우물에 독을 탔다’라는 루머의 대상이 되어 학살되었고, 매독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각 국가에서는 적대국의이름을 본따 병명을 붙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각 국가에서 이방인 혐오(Xenophobia)가 만연했고, 몇몇 국가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급격히 증가하여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집단이 구성원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의 가치감을 떨어뜨리고 집단의 정체성에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다. 반면 집단 트라우마가 결속력을 더 강화시키는 사례도 있다. 공통의 상처를 경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감과 상호 지지가 이루어지고 연대감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속력과 유대감은 역경을 이겨내는 동력이 된다. 또 역경의 극복이라는 과업에 집중하게 되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유토피아적 효과도 나타난다. 기존의 각종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구성원들은 정부와 사회기관에 개선을 요구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한다. 위기관리 체계가 개선되며 미래의 위험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에서 정의와 혁신을 강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노력이 증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집단 트라우마의 회복 역경의 극복은 사회적 자본에 달려있다. 공동체 복원은 개인과 집단, 사회, 환경 등이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실질적인 지원과 정보 교류가 이루어지고 공통의 의미와 이해, 규범과 가치가 공유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자원 배분이 중요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동체에 대한 신뢰, 집단의 규범, 다양성과 가변성에 대한 존중과 같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커진다. 공동체를 신뢰하는 사회는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인식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피해를 본 구성원이 보호받고 모두가 힘을 합쳐 역경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루머와 혐오를적극적으로 경계하고 이들이 고립되거나 모욕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때 당사자는 강력한 사회적 지지를 경험한다. 당사자의 회복이 촉진될 뿐 아니라 전체 구성원의 사회적 신뢰가 강화된다. 누구라도 곤경에 처할 때 집단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이 튼튼한 사회는 역경 앞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결속력과 유대감을 강화해 나간다. 이를 통해 집단이 가진 잠재력과 효능감이 강화되고 긍정적인 집단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202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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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사회 공동 연구로 거대위기 극복해야그동안 분산적이고 소규모로 진행된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로는 현재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 같은 거대위기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어렵다. 따라서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이하 인사협)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거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범인문사회분야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과 사업 확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국회정책토론회를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인사협은 2023년 6월 13일(화)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제2차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 국회정책토론회: 거대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개최하였다. 이번 토론회는 작년 12월 2일(금) 개최된 제1차 토론회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토론회였다. 인문사회분야에도 누리호같은 수천억 원대 메가프로젝트 추진해야 제1차 토론회는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과 가능성의 사례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김동혁 GIST융합교육및융합연구센터장은 유럽에서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이라는 약 5조억 원 규모의 대규모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메가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발표하였다. 한국형 메가프로젝트 사례로, 이형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장은 7,000억 원대 규모의 ‘한국인문사회-문화예술 디지털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다원적 활용’ 프로젝트를, 이재은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은 3,200억 원대 규모의 ‘국가위기관리 디지털 플랫폼 구축사업’ 등을 제시했다. 신문규 교육부 대학학술정책국장도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인사협은 인사협 기획정책위원회(안기돈 위원장)와 ‘메가프로젝트 TF’팀을 구성하여 제2차 정책토론회를 준비하였다. 제2차 토론회는 1차 토론회처럼 국회 교육위원회 이태규 의원과 김영호 의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조승래 의원, 그리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함께 인사협이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국회방송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방송되었으며, 300여 명이 넘는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거대 담론 과제 해결은 ‘지식의 통섭’으로 제2차 정책토론회에서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에코과학부 생명과학전공) 석좌교수는 ‘거대 담론 과제와 지식의 통섭’을 발표하였다. 최재천 교수는 한국은 이념갈등, 계층갈등, 남녀갈등, 세대갈등, 다문화갈등, 환경 갈등 등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사회라고 보았다. 이러한 다양한 갈등을 안고 있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거대위기로 최재천 교수는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지방소멸과 균형 발전, AI와 인류의 미래, 팬데믹과 백신 등을 들었다. 또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숙론(熟論)과 통섭(統攝)(Talking Together and Jumping Together)’을 제시하였다. 엄연석 한림대학교 태통고전연구소장은 토론 과정에서 최재천 교수의 ‘숙론과 통섭’을 실행하기 위한 이념적 기초와 실행방안을 제안하였다. 프랑스 아날학파의 인간과학과 MIT의 STS 프로그램과 같은 탈분과 학제 간 연구 프로그램이나, 클라우스 슈밥의 시스템리더십과 가치 중심적 리더십, 그리고 박이문의 생태학적 문화론 등이 그것이다. 신동원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소장도 ‘한국 과학문명의 성찰을 통해 유라시아의 미래를 모색한다’ 에서 기존의 분야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융복합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 프로젝트는 유라시아 각국과 한국의 과학기술 협력현황을 과거, 현재, 미래로 시계열화하여 분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여 향후 교류협력에 활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 토론 ‘희망소멸사회’ 극복은 메가프로젝트로 이관후 인사협 사무국장(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은 ‘희망소멸사회와 메가프로젝트의 필요성’ 에서 한국은 국제 환경의 변화,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저출산 고령화 등 복합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이 중에서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위기는 저출산으로 인한 한국의 소멸위기이다. 합계출산율이 2012년 1.3수준에서 2022년에 0.78로 떨어졌다. 이런 속도에 대응해 향후 5년 내에 합계출산율이 0.5까지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회복 탄력성을 잃게 되어 소멸국가로 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280조 원이라는 방대한 예산이 저출산·고령화 방지를 위해 사용되었지만 실패했다. 국가소멸을 비롯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관후 사무국장의 주장처럼 지난 세기 동안 축적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분야의 국가적 역량이 다양한 분야에서 총집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문사회과학분야에 대한 예산 지원이 단지 학술분야의 전문가 지원이나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어떤 공동체로 지속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내는 데에도 투입해야 한다는 이관후 사무국장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인문사회과학분야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 미래 국가 비전과 철학을 제시해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희망소멸사회’를 넘어설 수 있다는 이관후 사무국장의 주장은 인사협이 추구하는 메가프로젝트의 입장이기도 하다. 인사협은 메가프로젝트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한국 인문사회 학문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인사협은 2023년 가을에 개최할 예정인 제3차 국회정책토론회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교육부와 사전 논의와 협의를 통해 메가프로젝트가 정책화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하려고 한다.강성호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 202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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