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연구하는 삶’을 위한 여성 신진 연구자들의 고민과 분투

김지수연세대학교 미디어문화연구학과 박사수료  2023 봄호

본 연구는 현재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연구진 주변의 여성 연구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학령인구가 늘어나면서 과거에 비해 여성의 대학원 진학률이 늘어났지만, 학업 단계가 올라갈수록 여성 선배들이 점점 사라진다. 실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취업 상태에 있는 박사들의 비중이 늘고 있으며, 이는 인문사회 분야 비정규 연구자의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즉 대학에서 여성일수록,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일수록 장기적 생존이 힘들어진다. 왜 그럴까? 그리고 여성 연구자의 생애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여성 연구자들이 사라지는 이유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 연구자들에게는 경제적 불안정성, 학술적 자원과 네트워크에 대한 불안정성, ‘여성’으로서 겪는 불안정성이 중첩되어 있었다. 대학원 진학 기간 중 절대다수가 복수의 불안정한 노동을 병행하고 있었고, 열악한 연구 환경이나 각자도생 형태의 연구 문화 속에서 공부하면서 학업 중단을 고민하는 연구자도 많았다. 여성 연구자들이 또래 남성에 비해 간사 노동이나 보조적 역할 등 학계를 지탱하는 젠더화된 지식노동들을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음에도 이는 쉽사리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전히 존재하는 노골적인 성희롱과 은근한 형태의 여성 배제는 이들의 학술 네트워크 형성이나 지적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여성 대학원생의 디폴트 상태가 ‘미혼-무자녀’로 설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주요 경력 단절 요소 중 하나인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문제는 학계에서 비가시화되어 있었다. 모두가 사라지는 학술의 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성 롤 모델은 ‘연구에도 일에도 가정에도 완벽한 여성상’이었고, ‘버티는’ 여성 연구자들은 이런 여성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스스로 새로운 선례와 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료수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법률에 근거한 지원센터와 실태조사가 마련된 이공계와 계열을 막론하고 여성 연구자를 지원하는 해외 사례에 비해 국내에서는 인문·사회 분야 여성 연구자들의 기본 실태조차 제대로 조사되거나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연구자의 제도적 안전망에 대한 논의 마련해야

국내의 여성 신진 연구자들은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 신진연구자, 여성으로서 교차된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그 불안정성에 대해 오직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책임과 대응을 요구받고 수행해 왔다. 연구진은 별도의 선행 사례로 참조할 수 있을 만한 여성 연구자 관련 제도가 특별히 없는 상황에서 분야별로 세부적인 정책 구성보다 기본 방향의 제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기적인 실태조사, 정책 추진 주체, 인적 인프라, 네트워크 지원방안, 연구기관에서의 심사 기준 마련이라는 다섯 가지 방향을 제시로 정책 제언을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어떻게 보면 ‘절반의 진술’만 담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연구 과정에서 많은 연구 참여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끔찍한 학계의 현실과 자기 경험을 담고 있었지만, 마지막 크로스체킹 과정에서 아직 학교를 떠나지 못한 위치의 참여자들이 인터뷰 내용을 통한 신분 노출을 상당히 우려했으며, 보고서에 담으려 했던 진술 내용 중 많은 부분을 덜어내게 되었다. 대학원생 여성 신진 연구자들이 학술 장에서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연구하는 삶’을 위한 여성 신진 연구자들의 고민을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 삶을 보장하고 말하고 증언할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안전망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 길에 이 연구가 조금이라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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