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각자도생으로 지친 삶을 치유할 수 있는 힘

김정희원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3 봄호

‘공정’ 개념이 한국 사회의 담론장을 지배하게 된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공정’을 향한 사회적 열망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23년에 들어서면서 공정 담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아 더욱 확대되고 있는 듯하다. 초기의 공정 담론은 한때 청년들이 외쳤던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는 문구가 시사하듯, 입시 및 채용 과정에서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해달라는 요구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내가 시험을 보고 정규직이 되었으니 다른 이들도 (그의 경력과 무관하게) 무조건 시험을 보고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최근의 공정 담론은 특권층과 사회 지도층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분노와 엮여 더욱 강력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여러 사례 중 특히 ‘퇴직금 50억’ 사건과 학교폭력 사태는 불공정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좌절과 박탈감을 급속도로 가중시켰고,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학내 대자보가 서울대학교에 여러 차례나 붙었다. 이른바 엘리트 계급이 법제도와 사회자본을 활용해 가해를 지속해도 그것이 합법적으로 용인되는 모습을 보면서 청년들은 부모 찬스와 세습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능력 대비 보상의 법칙을 실현해주는 국가를 갈망하고 있다.

공정 열망에서 시작된 무한경쟁 속 각자도생

공정에 대한 열망은 온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나의 능력과 노력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사회경제적 배경 및 지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최선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나의 능력과 노력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각자도생×자유경쟁×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깊은 신뢰를 고착화하고 있다. 개인적 노력의 양과 질, 효과가 결코 구조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각자의 출발선이 사회경제적·역사적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그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지우고 나의 순전한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같은 공정성 모델은 곧 원자화 모델이다. 공정에 대한 열망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각개전투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대와 협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실력과 시험’으로 보상받고자 하고 불공정한 수혜를 입으려 하는 여성, 장애인, 소수자에 대한 적대와 혐오 역시 공정한 보상에 대한 요구와 정비례 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공정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관계와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부당한 국가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정치적 기초를 부식시키며 대안적 사회를 구상할 수 있는 시야를 차단한다.

한국 사회의 ‘공정’ 현상은 우리가 얼마나 개별주의적 존재론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끝없는 무한경쟁에 내몰린 각자도생의 삶은 우리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우리 사회의 출발점 자체를 달리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굳이 전쟁, 경기 침체, 재난, 기후변화 같은 복합위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개별주의적 존재론에 바탕을 둔 삶과 사회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발본적 전환과 변혁을 위한 전 사회적 노력이 시급하다.

갈등 해결을 위해 관계성과 공동체성 회복이 시급

『공정 이후의 세계』에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이 세계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발본적 전환을 촉구하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식론적 바탕인 관계적 존재론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고자 애썼다. 최근 여러 학자와 활동가들이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을 존재론적 핵심으로 내세우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아마도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위기의식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차별과 혐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관계성과 공동체성의 회복이 시급하다.

2023년 제1차 인문관통에서 강연하는 김정희원 교수

서로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며 때로는 추월하고, 때로는 밀려나는 각자도생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그려볼 수는 없을까. 관계적 존재론의 측면에서 볼 때, 개인이 독립적 완전체이며 자유경쟁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우리는 완전체가 아닌 과정으로서 존재하며 인간과 비인간 모두와의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나간다. 즉 모든 개인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며, 직간접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존재다. 결국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민주적 공동체는 모두가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간성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돌봄 사회로 전환해야 할 때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의존적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면 돌봄이 사회의 중추적인 운영 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돌봄은 사적 영역에서 제공되는 물리적 도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조직하는 핵심 원리다. 돌봄 없이는 그 어떤 관계도, 조직도 결국은 존속 불가능하지 않은가?

정치철학 및 사회철학으로서의 돌봄 이론은 일찌감치 가족은 물론 국가, 경제, 사회제도 운용의 측면에서 돌봄이 어떻게 정책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논해왔다. 어느 돌봄 이론가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돌봄을 입은 존재’ 이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성찰은 궁극적으로 타자에 대한 포용과 연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을 확인시켜준다. 결국 우리의 연대와 참여 없이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각자도생의 세계를 끝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돌봄 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방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