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책 거버넌스 구축의 이론적 근거 연구」는 인문정책 거버넌스 구축에 필요한 인문 개념을 이념적·역사적 차원에서 재정립하고자 수행되었다. 인문 개념을 재정립해야 하는 필요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우리 연구에서 규명했듯이 인문정책의 수립 및 집행은 국가 운영의 기본이다. 동서양의 역사는 국가의 규모나 국제적 위상 등과 무관하게 국가다운 국가로서 존재하고 역할하기 위해서는 인문정책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실현해가야 함을 단호하게 일러준다. 인문은 현실을 개선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바탕이자 원천이며 동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디지털 대전환’이라고까지 운위되는 문명조건의 대대적 변이 속에 개도국 최초로 선진국 진입을 일구어낸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국가가 인문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은 더욱더 절실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인문정책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무관심하다. 일제 강점, 6·25전쟁 같은 궤멸적 파괴에서 한국을 오늘날과 같이 부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과학정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기존 선진국 가운데 독보적으로 초갈등사회, 소모사회, 위험사회 같은 부정적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단적으로 ‘선진성을 구현하지 못한 선진국 한국’이라는 기형적 양태가 고착되고 있으며 그러한 비정상 속에서 국민 대다수는 지치고 불안한 삶을 보내고 있다.
<사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인문정책 거버넌스 구축의 이론적 근거 연구」,
김월회 외
인문의 역사는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는 실천적 활동에 걸쳐 있어
둘째는 인문에 대한 치우친 인식이다. 이는 인문학에 대한 편향된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인문학은 인문을 학술적으로 다루는, 근대가 만들어낸 분과 학문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인문의 개념을 주로 ‘순수’라는 수식어를 붙여 이해해왔다.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 같은 각종 현실적 이해관계를 넘어 존재하는, 초월적 가치를 담고 있는 그 무엇이 인문의 요체라고 여겼다. 이를테면 인간, 인간다움, 삶 등의 궁극적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라고 보았다. 맞는 말이다. 이러한 이해 속의 인문도 엄연한 인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인문의 유일무이한 본령이고 참된 인문이라고 주장하면 이는 오판 혹은 무지의 소산이다. 인간, 인간다움, 삶 등의 궁극적 본질은 사회나 자연과 분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것들과 유기적 상호작용 속에 형성되고 구현된다. 또한 인문은 그러한 본질 규명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그들을 사회와 자연 속에서 제대로 구현하는 데도 큰 관심을 갖는다. 인문의 역사가 이론적 탐구와 더불어 개인부터 지역사회, 국가에 이르는 실천적 활동에 두루 걸쳐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경세(經世)’라는 말로 개괄되던 이러한 인문 전통을 인문학 울타리 밖으로 내몰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인문학을, 또 인문을 국가사회 운영에서 없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결과 사회 전반에 걸쳐 인문적 성숙도가 제고되지 않아 사회적 갈등과 혐오, 불안, 폭력 조장 등에 매우 취약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 연구진은 이러한 문제적 현실의 근본적·구조적 해결없이는 한국이 선도국가이자 보편문명국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문제적 현실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인문정책 거버넌스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였다. 동서양 공히 인문이 일국 차원 혹은 제국 차원, 나아가 문명 차원에서 세상 경영의 토대이자 원천으로, 또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음은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경세적 인문이 본성적·이념적 차원과 실천적·역사적 차원 모두에서 천하 경영, 국가 통치와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었으며, 문명의 요람이자 그것의 기틀을 빚어내는 차원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이념적 차원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동서양 모두 실제 역사에서도 그러하였다. ‘고대 중국의 학정일체(學政一體, 학술과 정사의 일체화) 전통’, ‘역대 중국의 황실 주도도서 정비와 간행 사업’, ‘중국 전국시대의 직하학궁(稷下學宮)’과 ‘조선시대의 규장각(奎章閣)’ 및 ‘인문학이 만든 로마국가와 로마 문명’, ‘그리스-로마의 인문 진흥과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 부흥’, ‘서구 근대를 빚은 인문학’ 등에서 확인되듯이 말이다.
한국의 인문학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선
이는 과학정책 거버넌스만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이 사뭇 기형적임을 반증해준다. 동서양의 역사는 인문이 경세의 근간이자 원천이었음을 인문을 요체로 하는 인문학이 동서양 모두에서 경세의 근간이자 원천으로 활용되었음을 입증해준다. 전근대시기에나 그러했음이 아니다. 지금의 선진국이 근대 이래 인문을 바탕으로 선진국다움을 빚어내고 갱신해온 데서 목도되듯이 인문과 국가의 결합은 늘 현재적이다. 그렇다고 국가와 인문의 결합이 선진국만의 특징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동서양의 역사가 확고하게 말해주듯이 그 둘의 결합은 어느 수준의 국가이든, 국가가 국가로서의 기본을 수행하고자 하는 한 항상 구현되어 왔다. 한국은 국가로서 당연히 이행했어야 할 인문과의 결합, 곧 인문정책의 수립과 집행, 갱신과 같은 국가의 기본을 그동안 방기해왔을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한국은 인문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집행·갱신해 가야 한다. 백 보 양보하여 물질적 차원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문화적 차원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라도 인문정책 거버넌스의 구축은 절대적이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선 만큼 인문을 기반으로 우리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빚어감은 국가가 마땅히 실현해야 할 소명이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정립되고 구동되기 위해서는 ‘과학흥국(科學興國)’과 ‘인문경국(人文經國)’의 양 날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