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칼럼  

AI시대의 인문학

염재호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2024 겨울호

2022년 말 ChatGPT 3.5의 등장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미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8년 전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4승 1패로 승리했을 때, 인류는 인공지능의 잠재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알파고는 기존 바둑 기사들의 기보를 학습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제 스스로 학습하여 지능을 생성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ChatGPT 3.5 출시 후 5개월 만에 공개된 ChatGPT 4는 출시 두 달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생성형AI의 가능성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한편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사비스는 알파폴드를 개발하며, 인류가 발견한 20만 개의 단백질 구조를 뛰어넘어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 혁신적인 성과는 노벨 화학상 수상으로 이어지며 생성형AI의 위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AI가 그리는 미래, 미래를 위한 대담

이러한 생성형AI가 언젠가는 인간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기가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다. AI가 단순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넘어 인간을 통제하는 시기가 올 것을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기계적 지능인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무시한 채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여러 나라에서는 AI안전연구소 같은 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달 판교에서 국가AI안전연구소가 출범했다. AI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초지능을 가지게 된다면 인간의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지난 11월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24’에서, 인문학적 미래학자로 평가받는 후안 엔리케스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와 함께 AI시대에 인문학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AI시대가 단순히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논의했다.

AI와 인쇄술, 문명사의 또 다른 전환점

마치 145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인간에 대한 해석이 획기적으로 변화했던 것처럼, AI의 등장은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사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인쇄술의 도입으로 서적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 가능해졌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이후, 유럽은 천 년 이상 중세 암흑기를 겪었다. 이 시기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부속품에 불과했으며, 교황은 왕권 위에 군림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제들의 강론을 통해서만 전달되었고, 라틴어 성경은 필경사에 의해 극소량만 필사되어 사제들 사이에서만 읽혀졌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은 서적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했고,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이후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일반 신도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종교개혁의 확산을 촉진하며 성경 속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이어진 르네상스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세계관과 예술의 방향을 전환시켰고, 이 과정에서 지동설과 같은 과학적 혁신이 등장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 모든 변화는 인쇄술을 통해 지식이 급속히 확산된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사회에서 AI가 확산되고,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게 되면 인류의 문명사는 또 한 번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산업의 진보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가치에도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호모 파베르에서 호모 루덴스로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면 물건을 만들고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호모파베르(Homo Faber)’에서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삶의 형태가 변화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보편화되면서 인간의 생존 자체는 더 이상 큰 어려움이 없게 되겠지만 자아실현을 위한 다양한 삶의 방식과 새로운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가족의 개념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관계는 이미 변화를 겪고 있으며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영화 ‘허(Her)’에서처럼 인공지능이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태어난 남녀 성별(sex)이 아니라 사회적 성별인 젠더(gender)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며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는 이메일주소에 자신의 젠더를 명시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SNS가 확산되면서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일상을 매일 노출시킨다. 과거에는 자신의 일기를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보기를 원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인간은 본래의 모습보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다중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성형과 문신은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의 표출이자 표현 방식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게 되면 인류의 문명사는 또 한 번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산업의 진보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가치에도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AI가 열어갈 또 다른 혁명

AI 기술이 검색엔진과 강화학습을 통해 개인의 선호를 점점 더 단일화하고 몰아갈 때, 인간 본연의 모습과 생각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이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은 무엇일까? AI시대에는 기술과 산업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일, 그리고 인간의 모습, 더 나아가 AI가 내재화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와 AI가 만들어낼 새로운 사회 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또한 인류를 지탱해온 도덕, 규범, 가치, 철학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천 년 이상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 사회가 인쇄술의 발명으로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며 인간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왕권이 붕괴되고 시민권이 등장했던 사회 변혁과 같이 AI가 초래하는 새로운 시대는 또 다른 인간과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이런 변화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줄 것이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