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1   미래사회 이슈에 집중하는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공동체의 갈등과 분열 막는 유럽의 싱크탱크

< 인터뷰 > 신광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2022 여름호

“유럽 정책지식 생태계의 강점은 지식 공론장과 과학적 증거 기반 연구”

20세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용화된 현대적 차원의 시공간 개념을 확립하고 표준화된 문명의 사회적·제도적·사유적 보편성을 확산한 유럽 문명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유럽의 발전을 견인했고 현대 유럽이 직면한 구조적 고민에 대응하며 제도적 발전을 모색하는 지식집단으로서 유럽의 정책지식 생태계와 싱크탱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이들의 활동과 성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답을 구하기 위해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신광영 명예교수는 한국스칸디나비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유럽의 싱크탱크와 정책지식 생태계를 객관적·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정책연구와 담론에 시사하는 바를 깊이 있게 탐구해온 학자다. 이번 인터뷰는 2022년 7월 1일(금) 신광영 명예교수 연구실에서 홍일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의 진행으로 실시되었다.

홍일표 사무총장(이하 홍일표)

최근(6월 말) 대통령이 첫 해외순방으로 NATO 회의에 참석하셨다. 왜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유럽에 주목해야 하는가를 시사하는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유럽의 정책지식 생태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이하 신광영)

우리나라의 정책은 주로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전통 관료제 중심의 행정 조직과 법률 구성은 일본, 경제제도와 외교안보 부문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유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래의 도전과제와 관련된 고민과 대응방안을 유럽이 적극적으로 먼저 모색 중인 데 있다. 인권, 난민, 이민과 같은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속성이 지닌 문제가 여기에 속한다. 유럽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사회적으로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이미 경험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이 크다. 유럽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노동 문제(19세기), 인구 문제(1920~1930년), 불평등과 빈곤 문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 탄소중립 문제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구상할 때 유럽에 대한 여러 관심과 이해가 매우 중요함에도 한국에서는 유럽에 대한 연구가 취약하고 유럽은 우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는 실정이다.

유럽을 단위로 한 지식 공론장 형성

홍일표

유럽의 지식 사회는 대학, 정당, 의회 등의 다양한 문제에 대응하는 제도로서, 또는 장(場)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유럽 싱크탱크와 유럽 정책지식 생태계의 특징이 궁금하다.

신광영

EU 회원국은 27개국이다. 민간단체, 대학의 연구기관, 정당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책적 논의도 각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중국의 중국사회과학원과 비슷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이라고 하는 국가 주도의 중앙집권적인 연구 조직이 있다. 반면 독일의 경우 민간 연구소뿐만 아니라 애버트 재단과 같은 정당에 속한 재단 형태의 연구소, 정책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우수한 연구를 수행하는 시민단체, 노조 산하 연구소도 만들어냈다. 노조 산하 연구소는 스웨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흔히 ‘스웨덴 모델’ 이라 불리는 대안도 노조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스웨덴 사민당보다 대안적 사회 개혁, 미래 비전 등에 관해 더 활발한 논의를 통해 실업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불평등 문제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논의한다. 이러한 점들이 국가 주도의 프랑스와는 매우 다른 부분이다.
대학 이외의 정당연구소, 노동조합연구소, 민간연구소, 기업연구소 등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의 목적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이들 사이에 위계적인 질서와 같은 분위기는 없다는 게 한국과 다르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에는 1급 학자들이 민간에서 중요한 연구자로 활동하고 세계적인 담론 형성과 이론적 논의가 거기에서 이루어진다. 철학이나 신학이 중심이었던 유럽의 전통적 대학들도 요즘에는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중시하고 있다. 유럽 사회가 직면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나온 ‘제3의 물결’과 같은 담론이 그 예이다.

홍일표

유럽의 지식인들이나 대학의 연구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유럽 차원의 시민사회 공론장이 별도로 존재하는가? 지식인들이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일 수 있는 유럽 기반 연구소나 출판물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신광영

20세기 말, 초기 6개국에서 시작한 유럽연합이 점점 확대되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학회가 구성되고 학술지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사실 유럽의 기존 학계는 국가 단위로 지역화되어 있었는데 1980년대 후반 공산권이 붕괴되고 EU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과거 하버마스와 같은 저명한 학자가 제시한 이론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전파되는 수준을 넘어, EU 출범 이후에는 학자들의 활동 무대 자체가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유럽 다른 나라의 학위를 인정해주는 볼로냐 프로세스와 같은 시스템 통합도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학계 활동의 대표적 예다. 학사 제도, 석·박사 과정 등의 시스템이 통합되면서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가 독일에서 교수가 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통합이 EU 출범 후 커다란 변화였고 이 외에도 노동시장에서의 복지제도 통합, 투표권 통합, 이주의 자유 등에 따라 이슈 자체가 유럽 전역을 단위로 발생하면서 유럽이 공론장의 중요한 바운더리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유럽의 갈등과 분열을 막기 위한 정책의제 설정

홍일표

그런데 ‘EU’와 ‘유럽’은 같은 게 아니라는 점도 중요해보인다. 오히려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이라는 경계’, ‘유럽(인)이라는 정체성’, ‘유럽의 문제’, ‘유럽식 해법’과 같은 이슈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인) 만들기’와 같이 유럽 중심으로 생각하고 유럽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는 동시에 국가별, 지역별 갈등 또한 심화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 싱크탱크와 정책지식 생태계에서 ‘EU’ 또는 ‘유럽’이라는 문제는 어떤 점에서 ‘기회’이고, 또 ‘도전’ 인 셈인가?

신광영

통일 유럽은 칸트 이래 유럽 지식인들이 꿈꿔왔던 것인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철강 공동체에서부터 진화한 유럽연합은 시장통합이고, 경제적인 이슈에서 출발한 ‘세계화(Globalization)의 유럽판’이다. 유럽의 이른바 경제 대국들이 주도했지만 아직 참여하지 않는 유럽 국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과 자본, 노동력이 이동할 수 있게끔 시장통합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 통합은 사회 제도, 법률, 정부의 사회 정책들과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있다는 사실, 즉 시장은 시장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면서 동유럽 노동자들이 영국으로 이주했다. 노동 집약적인 일자리들이 동유럽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대표적인 것이 호텔 객실 청소부, 길거리 청소부, 건설업의 막노동 등이다. 그러면서 학력이 낮고 기술 수준이 낮은 영국 노동자들이 값싼 인건비의 동유럽 노동자들에게 밀리게 되었다. 또한 신자유주의 원칙이 규제 완화를 불러오며 노동 관련 규제를 허물게 되었는데, 이때 동유럽 기업들이 값싼 인건비를 기반으로 건설 용역 입찰을 따오게 되었다. 더욱이 동유럽 노동자들은 노조에도 잘 가입하지 않는다. 그러자 영국이나 독일, 스웨덴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크게 반발했고, 파업과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때 EU 법원은 노동조합의 손이 아닌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 외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었다. 노동시장 규제 완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고용 문제가 커다란 갈등으로 계속 이어지며, 반EU 분위기가생겨났다. 극우세력이 등장했고, 그것이 확산될 수 있는 경제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사회적·제도적 변화는 없었다.
북유럽 같은 경우 모든 임금은 노조와 경영자 조직 간 노사 합의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최저임금 제도는 없지만 저임금을 줄 수 없다. 그런데 동유럽 기업들이 들어오며 저임금을 주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한 노동시장의 급변이 유럽 통합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이민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극우적 주장이 가능해졌다.

홍일표

EU 또는 유럽 차원의 접근과 전통적인 일국적 차원 사이에서 어느 쪽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것 같다. 또한,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에 관한 고민도 깊은 듯하다. 이러한 “2 by 2” 차원에서 이뤄지는 유럽의 정책지식 생태계의 고민과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공론장이나 연구 생태계의 변화는 어떠한가?

신광영

홍일표 사무총장(왼쪽)과 신광영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오른쪽)

계몽주의 시기, 프랑스혁명,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지향해왔다. 동유럽 빈곤국가들에서 온 집시나 걸인들이 스웨덴의 스톡홀름 백화점 앞에 등장하여 백화점에 온 고객들이 불편해 하는 사건이 생겼다. 하지만 모든 정당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여러 복지를 제공하는 것에 합의했기 때문에 특별한 대책을 내세우지 않았다. 사람들의 일상적 불편함에도 정치권이 이를 해결해주지 않으니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세계화, 반EU,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극우세력 등이 약진하게 되었다. 독일의 보수 정당 등도 ‘시장자유주의’가 아닌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에서 가장 먼저 복지제도를 내세운 정당은 사민당이 아니라 기민당이었다. 유럽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은 이미 이룩한 복지제도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이다. 경제 성장보다는 유럽연합 이후 생겨난 새로운 문제들이 도전과제이다.
이러한 유럽 차원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셜 유럽’이라는 공론장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하버마스와 같은 유럽의 1급 학자들이 전문적이면서 대중적인 형태의 짧은 글을 통해 유럽 차원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정책 대안을 공유한다. 현안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이해를 도와주는 ‘소셜 유럽’이라는 인터넷 매체 형태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탄소중립, 기후변화 등 유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유럽 각국의 전문적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글을 썼던 스티글리츠와 같은 미국 지식인도 여러 차례 기고하고 있다.독일의 연구기관들도 예전에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이메일을 통해 연구보고서를 전 세계에 배포한다. 외국의 방문학자들도 적극 유치하는 등 과거 미국 연구소 들이 했던 역할을 독일 연구소들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독일 에버트 재단과 같은 정당 연구소들도 국제적 유통과 공유에 활발하다. 더욱이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거나 우편으로 주문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연구 결과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므로 지식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지식을 골라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깊이 뿌리내린 과학적 증거 기반 연구와 데이터 활용

홍일표

최근 유럽에서도 지식(인)에 대한 불신과 극우 포퓰리즘, 가짜뉴스와 연계된 반지성주의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지적 대응의 일환으로 증거 기반의 사회정책 연구가 활발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사례와 변화는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린다.

신광영

홍일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그 부분은 ‘데이터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복지국가는 데이터 국가다”라는 말처럼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일찍부터 행정데이터를 통합하고, 이를 연구와 정책 입안에 활용하며 데이터 혁명을 주도해왔다. 이제는 센서스 조사를 하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행정기관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모아서 교육, 의료, 고용, 조세 부문까지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인 데이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통합된 행정데이터로 정책을 결정하고 미래를 예측해 인구변화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행정데이터는 전수조사 시스템이라는 특성 때문에 통계학이 갖는 오차 범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주먹구구식의 정책이나 특정한 주장, 신념에 기반한 내세우기식 정책을 강요할 수 없다. 유럽은 엄격한 데이터에 기초해 과학적인 분석, 예측이 이루어지는 데이터 혁명 단계에 들어섰다. EU에서도 범EU 행정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컴퓨터 메모리 CPU 등 많은 인프라가 이미 구축되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데이터 인프라가 발전된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국가가 있는 반면 데이터와 관련해 상대적으로 좀 뒤처진 국가들도 있다. EU는 동유럽처럼 디지털화 수준이 낮은 국가에 대해 앞선 사례를 보급하고 확산하는 등 지원과 협력을 통해 개입하고 있다. 동시에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법제화, 블록체인을 활용한 기술적 차원의 비식별화 작업을 위한 지원과 컨설팅도 하고 있다.

홍일표

정책 연구나 정책 제안과 관련해 유럽의 데이터 기반 행정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례라고 볼 수 있는가? 한국 또한 ‘데이터 플랫폼 2.0’, 공공데이터의 개방 및 활용 등 이러한 방향으로의 노력이 계속 되고 있지 않나. 미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신광영

미국에서도 행정데이터 통합과 이를 활용한 정책 결정, 정책 연구가 상당히 진전되었다. 연방정부보다 주 정부 수준에서 활성화되어 앞서 나가는 주들이 있다. 피케티의 연구처럼 50년 이상 된 데이터를 활용해 대학과 연구 협력을 진행함으로써 놀랄 만한 수준의 연구성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마이크로 데이터를 통합해 연구를 진행하는 캘리포니아 주와 스탠포드대학의 사례도 있다. 스웨덴 같은 경우 1968년부터 데이터를 통합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행정데이터 통합은 매우 뒤처진 실정이다.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의료정보 통합을 예로 들면 의료 기록이 분산되어 병원을 여기저기 옮길 때마다 엑스레이를 여러 번 촬영해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앞에서 센서스 조사를 예로 들었는데 사회적 차원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데이터 통합을 통해 줄일 수 있다. 행정데이터 통합과 사회 내에서 활용 가능한 정보를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데이터 혁명의 중요한 방향이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이 그런 부분에서 많이 앞서고 있다.

정책 형성 과정의 개방성 확대해야

홍일표

유럽과 우리나라는 정책지식 생태계 내 차이점이나 역할뿐만 아니라 데이터 정보 기반 연구와 정책형성 프로세스 등 정책 생산과 활용 구조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벤치마킹’을 넘어서 ‘벤치 메이킹’을 하기 위해 우리가 개선해나갈 부분은 무엇인가?

신광영

EU 단위에서의 논의와 개별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조금 차이가 있다. 나라마다 정책과 관련된 논의의 틀이나 주체, 수준과 맥락이 다르다. 우리는 주로 ‘관(官)’이 오랫동안 주도해왔다. 발전국가 모형이라는 틀에서, 정책을 구상하고, 논의를 통해 정책을 형성하고, 정책이 집행되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관이 주도해왔다면 유럽은 정당이 경쟁을 통해 주도해왔다. 유럽의 경우 집권을 하지 못한 정당들도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형태로 정책대안을 마련해 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책들은 여러 주체 간의 상호작용, 교류, 논쟁을 통해 변하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정책, 복지정책 등은 노동자와 일반 시민 등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만큼 사회에 개방되어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정당 조직, 지역 조직, 미디어를 통해 정책의 인풋(input)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본다면 한국은 시스템이 미흡하다. 정책형성과 집행 과정에서 개방성이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주로 미디어를 통해 담론이 형성되는데 한국의 미디어들은 전문성이 미흡해 이슈를 일반 독자에게 깊이 있게 전달하는 기능이 상당히 취약하다. 독자적인 식견을 가지고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취재를 하며, 전문성을 쌓아 대중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기 쉽게 기사화하는 것이 취약하다. 유럽의 경우 일반 독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사람들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이해·판단하는 역량 향상에 미디어가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미디어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홍일표

오늘 말씀처럼 유럽의 싱크탱크와 정책지식 생태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그간 상대적으로 미국과 중국에 가려 덜 주목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책연구기관들이 앞으로 유럽의 싱크탱크와 정책지식 생태계와 적극 협력하고 교류하는 장을 마련해나가는 것도 큰 의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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