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래 세대를 위한 3대 개혁

서구 모범 사례에서 연금개혁 실마리 찾기

이다미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연금연구센터장 2023 봄호

2023년은 제5차 국민연금 재정 계산이 이루어지는 해다. 추계 결과, 기금 소진 시점이 2055년으로 2년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와 정부는 국회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금개혁 논의 거버넌스를 구성, 운영 중이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초 발족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금개혁 TF’는 국회 소속기관들과 공동으로 ‘공적연금개혁과 재정전망’ 연구에 참여했고, 그중 「공적연금개혁과 재정전망Ⅱ: 연금개혁 해외사례 분석」을 맡아 보고서를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연금제도가 가진 난제들은 이미 해외 주요 국가에서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한 국가와 사례도 있다. 우리보다 먼저 연금개혁을 시행한 해외 주요국(독일, 캐나다, 일본, 스웨덴, 영국)의 연금개혁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연금개혁의 방향성을 살펴보았다.

상황에 대한 진단과 연금개혁을 위한 논의의 출발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30여 년간 서구 복지국가가 안고 있던 주요한 숙제 중 하나는 연금 재정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공적연금의 장기적 재정 안정화를 목표로 연금개혁이 실시되었고, 그 결과 이제는 다수의 국가에서 미래 연금 지출 수준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두 차례 개혁을 거치며 소득대체율이 70%에서 40%로 낮아지는 큰 폭의 급여 삭감이 이루어졌음에도 재정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고, 여전히 OECD 노인빈곤율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민간전문가자문위원회를 중심으로 개혁안 마련을 위한 논의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현재 개혁의 논의 범위는 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모수 개혁에 그치지 않고 노후소득보장체계 전반의 재구성, 즉 구조 개혁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비교적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모수 개혁안을 당장 도출하는 것과 비교할 때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길게 보면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청사진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성공적인 연금개혁을 위한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

성공적인 연금개혁을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연금개혁을 통한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그 예로 스웨덴은 1998년 연금개혁 당시 재정적으로 안정적이고 강력한 동기를 가진 공평한 제도 설계 및 국가 저축의 증대를, 캐나다는 2016년 개혁에서 중산층의 급여 적정성 강화를 주요 목표로 삼았다. 한편 영국은 모든 세대에게 공평(fair)하고, 개인의 책임성(personal responsibility)에 기초하며, 단순화(simplify)한 연금체계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았다. 이와 달리, 한국은 연금개혁을 통해 달성해야 할 본연의 목표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다. 둘째, 사회적 상황과 정치체제에 적합한 연금개혁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효과적으로 합의안 도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 예로 스웨덴은 의회 내 의원회를 구성해 개혁에 찬성하는 정당 중심으로 논의를 빠르게 진전시켰다. 영국은 소수의 전문가(3명)로 구성된 연금위원회가 비교적 긴 시간을 갖고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정하면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캐나다는 1990년대 재정 안정화 개혁을 단행하던 당시 국민 대상으로 총 33회에 걸친 공공 협의(public consultation)를 통해 캐나다 국민에게 당시 공적연금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개혁 방향에 대한 선호를 나타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지난 3월 29일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서구의 모범 사례를 분석하면서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마지막으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제도 간 역할 분담이 명확해야 한다. 서구 국가들의 사례는 공통으로 ‘빈곤 예방’과 ‘은퇴 후 적절한 소득 유지’라는 연금제도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 간 역할이 합리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개혁을 통해 공적연금의 보험과 재분배 성격을 각각 분리했고, 영국은 신국가연금(nSP) 도입 당시 제도 간 기능 중복과 복잡성을 없애 제도 구성상의 단순성을 확보했다. 각 제도들의 합목적성이 결여된 채로 급여 적정성과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둘 다 달성하지 못한 한국에서 이 같은 제도 간 역할 분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연금개혁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매우 긴 이행 기간을 두고 진행되는 정책 과업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서구 국가들이 연금개혁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던 이유를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번 연금개혁은 단편적 대안 제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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