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99년 연구회 체제”를 넘어-지역 시민사회 관점의 지역 협업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현장 지향적 싱크탱크의 필요성

유정규행복의성지원센터장  2023 봄호

우문현답은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변’이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하지만 ‘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를 줄여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분야별 다양한 국책연구기관이 있고, 지자체(광역, 기초)마다 수많은 정책연구기관을 두고 있다.

연구기관은 저마다의 연구 미션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기관에서 생산하는 연구 결과물들이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얼마나 실천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 즉 ‘우문현답’의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고매한 이론과 논리를 갖춘 연구일지라도 그것이 현장의 구체적인 사정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연구 결과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정책 여건과 실천 주체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이는 한낱 탁상공론에 그치거나 연구자의 현학적인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장 상황을 반영한 연구가 되어야

현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국책연구기관만 해도 26개에 달하며, 연구기관마다 매년 엄청난 연구 결과물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중 많은 연구가 ‘맨발로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 머무는 것이 사실이다. 맨발로 물 위를 걷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왼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발을 빨리 옮기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러한 연구에 기반한 정책 역시 현실 속에서는 작동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책 당국은 왜 왼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발을 움직이지 않느냐고 되레 큰소리를 친다. 연구나 정책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개선책을 찾기보다는 현실의 여건을 책망하는 것이다.

현실에 충실한 연구와 정책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실천 주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천 주체의 유무와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활동 주체와 협업하려는 연구자의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정책연구기관 연구자라면 이러한 접근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국책연구기관과 지방연구원 등 연구기관 연구자와 현장 실천 주체 즉,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이 요구되는 이유다.

시민사회와 전문연구기관과의 협업 방안 마련

2000년 이후, 시민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발전했다. 사회민주화의 진전과 정보·통신 분야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시민사회 자체의 역량도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진영의 고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 영역은 물론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 등의 분야에서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관련 분야의 개별적인 우수사례 창출은 물론 조직화를 통해 전국적인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한국사회적기업협의회나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등의 이해당사자 조직은 물론 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 읍면단위 활동가네트워크 등의 조직도 등장하여 활동 중이다. 이러한 연대 조직들은 구체적인 지역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진영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국책연구기관이나 지방연구원이 보다 실천적인 연구 활동이나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민사회 진영과의 적극적 연대활동과 구체적인 협업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계적으로 보면 첫 번째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연구기관(국책연구기관, 지방연구원)이 시민사회와 적극적인 교류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연구기관에서 시민사회(진영)의 지역 실천 활동을 지원하는 연구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연구기관에서는 시민사회와의 공동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시민사회에서 생산한 연구 결과의 출판과 홍보를 지원하는 역할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행정(중앙정부, 지자체)과 연구기관이 시민사회와 함께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고 추진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행정과 연구기관에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파트너로서 시민사회를 인정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사회를 지도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시민사회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연구기관의 생산적이고 실천적인 연구 활동에도 해가 될 것이다.

<그림>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 간 협업체계 구축 방안

지방의 지속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협업 활동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낮다. 그래서 지방의 소멸을 우려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고, 대통령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매년 출산율 증대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출산율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많은 예산과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이나 지방연구원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광역 단위로 보면 소멸 위험성이 가장 크다고 알려진 전남(0.97명)과 경북(0.93명)의 출산율이 가장 높다. 이는 지방의 인구 감소를 출산율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방으로서는 출산율 문제보다 출산할 사람을 확보하는 문제가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각종 연구보고서와 정책들은 여전히 지방의 인구 감소 해결을 출산율 제고에 맞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나 정책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접근이 아닌 구체적 접근 즉, 디테일이 중요하다. 국가적인 측면에서는 출산율 제고가 중요한 과제지만,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으로서는 출산율을 높이는 일보다는 출산할 사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연구와 정책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긴급한 과제 중 하나가 지방의 소멸을 막고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연구를 위한 연구기관과 시민사회의 협업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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