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축소사회’ 대한민국 - 세종정책포럼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글로벌 메가트렌드

서용석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2023 여름호

제29차 세종정책포럼 ‘초저출생 시대의 인구 전략과 과제’

정부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저출생 대책을 시행해 왔다. 감사원과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3차례의 기본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총 334조 2,000억 원 규모의 예산 투입과 3,038개의 정책 과제를 추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예산과 정책적 노력에도 지난 20여 년간의 합계출산율은 1.13 수준으로, 초저출생 상태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0.78로 초저출생 현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록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글로벌 메가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UN World Population Prospect에 따르면 지난 50여 년 동안 전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현재 전 세계 합계출산율은 2.3 정도이다. 그동안 전 세계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이 최저개발국들이었으나 지난 40여 년간 이들 국가의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2090년대 전 세계 합계출산율이 2.0 정도에 수렴할 것으로 UN은 예측하고 있다. 고령화도 전 세계적인 추세로, 현재 개도국에서 선진국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80% 정도가 개도국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의 인정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이 과도하기는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100여 년 앞서 이미 저출산 현상을 경험했으며, 출산율 제고와 관련한 많은 정책이 실행되었음에도 그 어떤 정책도 획기적인 출산율 증가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이는 인구구조 변화가 갖는 불가역적 특성 때문이다. 일단 인구감소가 시작하면 최소 수십년 이상 계속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며, 출산율이 이전으로 회복되었다 해도 인구증가로의 기여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올해 당장 출산율이 2배로 반등한다고 하더라도 올해 출생자가 대학에 들어가거나 생산연령인구에 편입되기까지는 적어도 20여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출산은 향후 정부의 의지와 정책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완화될 가능성은 있지만 저출산 추세 자체가 바뀌기는 어렵다. 고령화 또한 의료기술의 발전과 기대수명의 연장 추이로 볼 때 그 추세가 완화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따라서 정책 당국자들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피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완화’와 ‘적응’으로 상정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를 완화하면서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확보해 나가는 전략이다.

장생(長生)시대의 도래

인류 역사에 있어서 한 국가의 인구가감소한 사례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인구가 감소하면서 고령화된 적은인류가 처음 겪어 보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인구의 고령화라고 할 수 있다. 고령자가 많을수록 생산성은 저하되고 부양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사회의 활력은 떨어지고 보수화될 수 있다. ‘노화(老化)’라는 단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체적 기능과 활동 능력이 쇠퇴하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의학 기술의 도움으로 젊을 때의 정신과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는 ‘신인류’가 많아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활동 범위를 나이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신고령층에게 ‘노령(老齡)’ 대신 ‘장생(長生)’이라는 긍정적 개념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활동적이고 다양한 경륜(經綸)을 가진 많은 장생자들이 경제, 사회활동에 참여한다면 고령화는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기회가 될 수 있다.

축소사회로의 적응

저출생 추세 자체를 돌릴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추세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인구감소 고령화라고 하는 ‘불편한 진실’의 인정이며, 새로운 환경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의 재설계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전제나 경제사회시스템, 인프라 등은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하는 추세에 맞추어 경제사회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인구의 ‘양(量)’을 늘리는 기조에서 인구의 ‘질(質)’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인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의 질’을 높여서 많은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가려버리는,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하면 낙오자로 만들어 버리는 교육 시스템으로는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없다. 이제는 뛰어난 학습 역량이 있는 아이들을 키우고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리고 뒤처지는 아이들에 관한 관심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들이자랄 때 걸음마를 늦게 떼는 아이가있고 말이 늦게 트이는 아이도 있다. 학습 과정도 마찬가지로 학습이 빠른 아이가 있고 느린 아이가 있다. 학습이 느리다고 해서 그 아이의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학습 의지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느리고 뒤처진 아이들을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아이들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소중한 인재가 될 수 있으며 이들을 포기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느리고 뒤처지더라도 인내하면서 기다려주고, 그 아이가 자신의 속도를 내고 숨겨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앞으로는 아이한 명 한 명이 그야말로 소중한 시대가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각자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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