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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와 금융혁신이 이끄는 디지털 자산 시대

박동욱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플랫폼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 2024 겨울호

블록체인 기술로 촉발된 화폐와 자산의 디지털화, 빅테크와 핀테크 기업의 금융권 진입 등 금융 부문에 디지털 혁신이 예고되고 있다. 각국은 디지털 화폐 혁신의 앵커로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화폐의 디지털화와 CBDC가 가지는 의미와 정책과제를 살펴본다.

화폐와 자산의 디지털화가 가져올 금융혁신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화폐와 지급결제가 금융 부문을 넘어 일상 경제활동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현금 사용 비중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은행과 금융기관의 창구는 더 이상 금융 거래의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핀테크와 빅테크 같은 비금융기관들이 금융부문에 진입하여 SNS, 전자상거래 등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과 페이먼트 서비스를 결합해 다양하고 편리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드 보급률이 낮은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지급결제 기술을 도입했다. 중국의 앤트그룹과 텐센트는 QR코드를 이용한 간편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Alipay)와 위챗페이(Wechat pay)를 통해 중국 최대의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인도는 사용자가 손쉽게 결제할 수 있도록 통합결제인터페이스(UPI)를 설계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신속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케냐에서는 모바일폰의 선불충전을 이용한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 송금시스템을 통해 케냐 GDP의 50% 가까운 거래를 처리한다.

암호화폐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금융 혁신을 한 차원 더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화폐와 자산을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플랫폼에 토큰화(원장에 디지털형태로 기록)하면 지급결제와 금융자산 거래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혁신적인 상품서비스가 출연할 수 있다. 화폐든 채권이든 일단 토큰화되면 기능적·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자산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원장에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금융인프라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혁신적인 거래가 가능하다. 화폐나 자산에 코드를 내장하면 계약 조건이 충족되는 즉시 중개기관 없이도 특정 대상에게 원하는 시점에 자동으로 지불이 이루어지고 전달과 정산이 동시에 처리될 수 있다. 또한 부동산이나 예술품과 같은 자산을 토큰화하면 조각 투자가 가능해져 자산의 유동성이 높아지고 자산의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토큰화된 증권의 거래가 2030년에는 글로벌 금융거래의 8~1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디지털화로 인한 통화의 파편화와 독점의 위험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통화는 은행 계좌에 존재하며 대부분의 거래 또한 카드나 계좌이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화폐가 디지털로 표현된다는 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화폐 디지털화의 효과는 화폐가 데이터와 프로그램에 결합되어 혁신적인 서비스가 출현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렇지만 디지털화는 혁신의 계기가 되는 동시에 화폐의 차별화를 불러와서 화폐 체계의 안정성을 손상시킬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빅테크와 암호화폐가 제공하는 화폐는 더 이상 동질적인 화폐가 아니다. 이용 목적에 맞춰 설계되고 추천되는 차별화된 화폐이다. 빅테크는 서비스와 사용자 데이터를 결합하여 지급결제나 화폐를 차별화시킬 수 있으며, 플랫폼을 폐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차별화된 독점적인 통화권을 만들어낼 수 있다. 2019년, 글로벌 가입자 기반을 가진 페이스북이 스테이블코인인 리브라(Libra) 출시를 발표했을 때, 전 세계 중앙은행은 강력히 반대하며 긴장하였다. 독립적인 통화권의 등장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도전받고 빅테크 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우려 때문이었다. 암호화폐는 프로그램 가능성을 통해 무한히 차별화된 화폐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복지 지원금은 수령 대상, 지출 기한, 지출 범위 등을 프로그램으로 설정하여 지급되는데 동일한 액면의 현금과 본질적으로 다른 형태의 화폐이다.

통화의 파편화·독점화는 중앙은행이 공적 화폐를 통해 구축해온 화폐의 신뢰성·효율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데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신뢰성을 상실하게 되면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법정 화폐가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은행 예금과 같은 모든 민간 화폐는 법정 화폐로 일대일 교환이 가능하다.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화폐가 의심 없이 동일한 화폐로 통용되고 경제활동의 안정성이 담보된다. 디지털 시대에 화폐가 차별화되고 혁신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공적 화폐가 디지털 형태의 안전 자산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화폐의 동일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디지털 통화체계 신뢰성 확보의 앵커 CBDC

중앙은행이 디지털 시대에도 화폐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시하는 것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화폐로, 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진다. 전 세계 약 130개국이 CBDC 도입을 고려 중이며, 이들 국가의 GDP는 전 세계 98%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G20 국가 중 19개국은 이미 상당한 개발을 진행 중이며 한국은행은 선도적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BDC의 초기 도입 논의는 지급결제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와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미래 지급결제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았다. 그렇지만 금융 선진국에서는 이미 민간 부문의 지급결제 서비스가 고도화되어 있어 CBDC의 추가적인 효율성 개선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CBDC 도입의 핵심 목적은 지급결제의 효율성보다는 현금과 같은 안전 자산으로서 디지털 시대의 통화 단일성 보장과 통화 체계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앵커 역할 수행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CBDC가 안전자산으로서 예금을 대체하면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CBDC의 거래 기록이 모두 중앙은행 원장에 기록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CBDC가 성공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교한 설계와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각국이 CBDC 도입을 준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시대의 통화주권 확보에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CBDC의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고 이로 인해 글로벌 기축통화 경쟁이 촉발되었다. 미국은 미래의 디지털 자산 글로벌 생태계를 겨냥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이들로부터 유로화 통화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CBDC 개발을 가속화 중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유럽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주요국의 CBDC 개발 동향을 살펴보면서 글로벌 통화경쟁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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