硏究IN
한계를 뛰어넘는 모빌리티 전환과 함께 달리는 정책연구자
갈수록 복잡해지는 교통 환경과 급격한 기술 변화 속에서 더 나은 내일과 교통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자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며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두 연구자의 이야기를 통해 모빌리티 전환과 자율주행 등 다양한 교통정책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았다.왼쪽부터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미래차연구센터장
이종덕 한국교통연구원 광역·도시교통연구본부 부연구위원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미래차연구센터장(이하 김규옥)
다양한 연구 주제를 수행하고 있지만, 결국 자동차 기술과 정책으로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한국교통연구원에 입사하여 교통시스템 개발과 계획 연구를 해오다 최근에는 주로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자동차가 이끄는 모빌리티 전환과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2010년 갑작스럽게 전기차 연구센터로 발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요. 당시 원장님께서 전기차 분야가 생소하니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제가 적합하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자동차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종덕 한국교통연구원 광역·도시교통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이하 이종덕)
석사 과정에서 보행자 내비게이션 관련 연구를 하며 교통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한국교통연구원에서 근무하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다시 연구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 주 전공은 자율주행으로 가장 처음 수행한 연구 주제도 자율주행입니다. 그 당시 최초의 국토교통부 자율주행 R&D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과제책임자가 김규옥 박사님이셨습니다. 이후 자율주행을 계속 연구하다가 작년부터 대중교통과 모빌리티가 접목된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모빌리티 전환 속 마주하는 새로운 과제
김규옥
현재 연구의 큰 흐름은 ‘모빌리티 전환’이라고 생각되는데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의 윤리적 측면과 사회적 수용성에 관한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자율주행이 도입될 당시, 새로운 기술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이외에도 법과 제도, 문화, 도로 시스템 등 여러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연구 주제였다고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벽에 출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른 아침 연구원에 도착해 책상에 앉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에 걸어서 출근하는데 갑자기 내리는 비로 온몸이 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고민이 빗물에 씻기듯 풀리는 기분 좋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종덕
저는 주로 R&D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는 앞서 말씀드린 국토교통부의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부에서는 명확한 결과물을 요구했지만 당시 자율주행으로는 첫 번째 연구였기 때문에 연구 주제의 생소함도 있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법, 제도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했고, 제가 사용하는 용어 하나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례로 그 당시 작성한 한 줄의 문구를 인제 와서 수정하려고 하니 너무나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분한 고민 없이 작성된 문구가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통해 선배 박사님들이 왜 그렇게 꼼꼼하게 검토했는지를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규옥
정책연구자는 우리나라의 기술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외국 사례를 살펴 우리나라에 맞는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최신 기술 변화와 정책적 동향을 파악하고 과거의 정책 틀로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는 개척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신호제어 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데, 기술이 있다고 바로 시스템이 구축되지는 않더라고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하고 시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정책을 외국, 특히 아시아권 국가들이 벤치마킹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책도 기술처럼 수출할 수 있고 글로벌화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정책을 잘 가다듬고 모르는 것은 배우면서 정책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자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종덕
선배님들이 닦아온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책연구에 대한 특별한 철학보다는 그 길을 따라 배우며 제 나름의 생각을 함께 가져가고 있습니다. 정책연구기관에서 일을 하다 보니 4차 산업혁명이나 ICT 기술의 융합과 같은 주제를 많이 다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교통 분야는 사람들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 기술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나 기준을 마련하고 가이드를 제공하는 역할에 보람을 느낍니다. 예전에 한 선배님께서 “내가 이걸 만들었다, 내가 이걸 했다”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도 나중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책의 앞선 발전을 위한 골든 타이밍
김규옥
연구가 결과를 통해 인정받았을 때 즐겁고 행복합니다. 자율주행버스 관련 국제 표준을 몇 년간 추진했는데 그 표준이 발행되고 공식화되는 과정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자동차 정책 기본계획과 자율주행 교통물류 기본계획을 세울 때 그 계획이 실제로 정책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기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이건 꼭 해야 한다”라고 고민했던 주제들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과제로 발굴되고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제가 당시 했던 고민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찼습니다.
이종덕
저는 아직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제가 작성한 보고서나 논문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관련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거나 그 글이 활용되는 것을 보면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는 일이 많아 바쁘고 고생할 때였어요. 그때는 정말 일만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한 선배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에게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시기에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타이밍이었기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김규옥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항상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고, 뒤처진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정책은 앞서 나갈 수 없습니다. 국책연구자는 일선에 서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의 연구는 고통스럽고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지만, 고민하지 않는 자는 연구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 분야와의 융합을 고민하며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종덕
연구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 선배들의 조언이 때로는 꼰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말씀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전하고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연구자라면 도전해야 하고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많지만, 그것이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김규옥
요즘에는 혜택을 받는 사람, 즉 수요자들의 권익을 중심으로 정책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도로가 막히면 도로를 많이 건설하는 등 공급자 중심의 정책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균형을 맞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정부가 절대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만, 수요자들을 설득하면서 정책을 펼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빠르게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과거의 기술에 의존해서는 변화의 속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발굴하기 어렵습니다. 범위가 넓어지면서 모든 분야를 다 알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주 자문을 구하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다른 분야의 정책 연구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연구자라면 도전해야 하고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많지만, 그것이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종덕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 홍익대학교 도시계획학 박사 前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PO(Planning Officer)
“새로운 분야의 연구는 고통스럽고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지만, 고민하지 않는 자는 연구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 분야와의 융합을 고민하며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텍사스A&M대학교 공학 박사(교통공학 전공) ISO/TC 204 대표 단장
이종덕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저도 공감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첫 번째로 다른 기관의 연구자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고 두 번째는 과제가 많아 너무 바쁘다 보니 여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율적 학습조직 등 관련 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알지만 현업에 쫓기다 보니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데 주저하는 경향도 협동연구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김규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율적 학습 조직을 통해 협동 과제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이정미 선임연구원과 함께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화두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탄소 배출 등 여러 문제가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협동연구를 수행하며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환경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등 여러 연구기관과 함께 협력할 수 있었던 점이 매우 고마웠습니다. 물론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가지고 만나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선 과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 필요
이종덕
과제 제안 절차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과제도 있고, 시민들이나 타 기관에서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과제들도 있습니다. 이런 절차를 통해 저희에게 연구 아이템이나 주제가 주어지면 저희는 그 과제가 연구원에서 지향하는 바와 부합하는지, 시대적으로 시급하거나 중요한지 판단하여 수행하게 됩니다. 과제 기획을 하다 보면 시급성과 중요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자주 나옵니다. 시급성을 위해 수시 과제 같은 것들이 제한된 절차를 통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현재 제가 진행하고 있는 수요응답형 과제처럼 기술을 보급하고 서비스를 빠르게 정착시키고자 하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연구는 이해관계자가 많아 갈등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큰 문제인데 저희가 제안한 모든 과제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김규옥
과제를 수행하는 절차가 연 단위로 이루어지다 보니, 때로는 시대보다 조금 더 앞선 제안을 하면 그 제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제안들이 채택되지 않고 2~3년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국제적인 흐름에 뒤처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1년을 기다려 다시 제안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답답함을 느낍니다. 현시대에서 약간 과도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과제라 하더라도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면 채택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채택될 수 있도록 수시로 채택할 수 있는 유연한 절차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이종덕
국책연구기관에 있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좋은 연구자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책연구기관에 있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정책을 제안하고, 자신의 주관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이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시기적으로 필요한 연구를 하면서 그 연구가 실제로 제도화되거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무원들과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옥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은 좋은 아빠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책임질 수 있는 연구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정책연구에서는 정책이 펼쳐졌을 때 그 결과를 미리 통찰하고 제안해야 합니다. 잘된 정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책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잘 진행되도록 노력하고, 되지 않은 정책이 있다면 빨리 수정하고 개선하는 책임감을 가진 연구자가 좋은 연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료 연구자들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자료를 공유하고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연구자가 좋은 연구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욕심때문에 쉽게 실현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정보나 자료를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김규옥, 이종덕한국교통연구원 미래차연구센터장, 한국교통연구원 광역·도시교통연구본부 부연구위원
2024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