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Ⅰ - 세계의 싱크탱크와 소프트파워, Ⅱ - 대한민국 국가정책연구의 역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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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용 가능성 고민은 국책연구자의 숙명
오랜 경륜과 지혜를 갖춘 선배 연구자, 열정과 포부 가득한 신입 연구자가 국책연구자로서의 연구철학을 소통하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이번 호에서는 농림경제 및 농촌사회를 종합적으로 조사·연구해 농업·농촌정책 수립 방향을 제시해 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박대식 명예선임연구위원, 김수린 부연구위원이 만났다.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이하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27년이 되었네요. 제 고향은 농촌인 경북 상주입니다. 농촌 출신으로 농사를 도우며 사회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대학은 사회학과에 진학했는데, 제 출신이 그래서인지 농촌사회학을 배우고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사회조사에 참여하면서 농촌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농촌 빈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4년 연구원에 입사했지요. 입사 후부터 명예선임연구위원이 된 지금까지 저는 농촌복지 증진 및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한 연구에 매진해왔습니다.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하 김수린) 대선배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요, 그중에서도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노인 개인의 삶에 사회와 환경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aging in place(내 집에서 나이 들기)’의 토대가 되는 고령 친화 환경을 비롯해 능동적인 노년을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 등을 연구해왔습니다. 박대식 국책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면 이론과 현장을 모두 잘 아는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거기에 저의 경우는 농촌 주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고,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가장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되었지요. 당시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이 타결되고, 1995년에는 WTO가 출범하며 무역자유화 및 농산물 시장 개방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구원은 새로운 농림수산 정책의 목표와 과제 등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며 농업 경쟁력 강화와 복지정책을 강조하던 상황이었지요. 제가 입사하던 때와 지금은 농촌을 둘러싼 환경이 사뭇 다릅니다. 김수린 저의 경우는 농촌을 정면에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국책연구기관에 소속된 만큼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는 농촌의 노인복지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은 농촌의 과소화, 노령화와 맞물려 국내 고령자 중에서도 열악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농촌의 노인복지를 연구하는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보다 취약하고, 소외된 계층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원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제 개인적 믿음과도 부합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전방위로 노력해오다 박대식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주로 농촌복지 증진 및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해 연구해왔습니다. 대표 연구는 농촌 다문화가정 연구와 농촌 노인 관련 분야입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농촌 다문화 연구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농촌 현장에 방문할 때마다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농촌의 다문화가정 실태와 정책 방향’이라는 연구를 처음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농촌 다문화가정이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농어촌 다문화가족의 사회 적응 실태와 정책과제’, 2018년에는 ‘농촌 다문화가족의 사회통합 실태’, 2020년에는 ‘결혼이민여성 농업교육 개선 방안 연구’ 등을 연구했습니다.또한 1996년 ‘농어촌의 노인복지 실태와 정책 방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농촌 노인복지 실태를 연구해 농촌 노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2000년에는 ‘ 노령 농업인의 영농 참여와 생산적 복지 대책’, 2006년에는 ‘농촌 노인의 사회안전망 실태와 개선 대책’, 2013년에는 ‘농촌 노인 일자리의 현황과 정책과제’, 그리고 2019년 정년퇴직을 하기 직전까지 농촌 노인의 사회보장 실태와 정책 개선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05년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 기본 계획’이 시작되어 지금 4차 계획까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농어촌에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목표 수준을 정하는 제도 등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제 연구 결과가 정책을 바꾸고, 기존 제도의 주요 문제점이 해결될 때 연구자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로서 앞으로도 할 일이 정말 많을 겁니다. 김수린 저는 이제 막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입사 전에는 관심 있는 연구 주제를 향후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이 어디일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입사를 준비하며 개별 국책연구기관의 특성과 지향점이 잘 드러나는 연구 보고서, 간행물 등을 열심히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본인의 강점이 무엇이고, 해당 기관에 입사할 경우 어떠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사실 입사 전에는 국책연구기관이라는 명칭이 주는 무게감에 ‘다소 무겁고 딱딱한 조직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조직문화가 유연하고, 연구자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연구자의 시간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박대식 그동안 연구원의 연구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는 연구의 자율성이 대체로 보장되었고, 연구과제의 제안이나 채택 과정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지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소수의 연구과제에 몰입해서 연구할 수 있고, 연구과제도 연구자가 선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수린 국책연구를 수행하는 체계나 절차가 지금과는 좀 달랐나요? 박대식 당시에는 농림부에서 정책 연구를 요구하기보다 우리 쪽에서 선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구과제도 우리가 제안하고 농림부에서 응하는 경우가 꽤 있었지요. 반면 지금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등 여러 기관이 관계하고 있다 보니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다부처적 시각이라든가 중장기적 과제를 발굴하는 면에서는 더 효과적으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끊임없이 관련 정책 변화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농촌 현장에도 자주 찾아갔습니다. 또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농림축산식품부나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의 위원회나 작업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농촌복지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팀워크를 맞춰 연구와 연구 성과 확산에 힘을 쏟을 수 있게 해준 동료가 곁에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린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연구원의 조직문화가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데 스스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매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KREI 이야기’라는 토론회는 저와 같은 신입 연구원들에게 농업·농촌의 현안을 쉽게 파악할 수 있 게 해준다는 점에서 감사한 기회입니다. 박대식 저의 신입 연구위원 시절에는 담당하는 연구과제나 연구 이외의 업무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연구 성과 확산, 활용성 제고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사실 최근 젊은 박사들은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이런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연구만큼이나 연구 성과 확산, 활용성 제고에도 노력과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좋은 연구가 어떤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출발은 알 것 같습니다.저는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나 현상이 있을 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고해결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실 적용, 국책연구자의 숙명이자 자부심 김수린 저는 국책연구는 일반연구에 비해 과제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책연구를 통해 재현하는 정책과제와 전략이 현실 적용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의 종합적 시각과 더불어 좀 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국책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부딪히는 주요한 어려움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대식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 만족도 향상이나 현실 적용을 위해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정책 회의, 전문가 회의, 집단심층면접(FGI)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에 반영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위원회라든가 작업팀, 대통령 자문기구의 전문위원으로도 참여해서 현안이나 쟁점을 해결해 연구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제 전공 분야가 우리 연구원의 주류 분야라 할 수 있는 경제학이나 농업경제학이 아니다 보니 엄청난 노력을 해야 연구과제가 통과되는 경향이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연구원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보람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연구 제안서가 신규 기본 과제로 선정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같은 부서원뿐 아니라 기획조정위원회 위원들과도 의사소통을 활발히 해야 합니다. 후배 연구인들이 농업·농촌 분야 최고의 싱크탱크 일원으로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해주면 좋겠습니다. 김수린 신입 박사이다 보니 앞으로의 연구원 생활이 어떻게 될까 관심이 많은데, 박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대식 한 가지 더 조언하자면 앞으로 우리 연구원이 사회 변화에 부응해 앞서가는 연구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행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는 농업의 산업적 특성이나 지역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복지 사각지대가 광범위한 실정인데, 농업·농촌에 적합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전문 영역에 한정해서 사회보장 전반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농촌복지를 담당하는 후배님들은 사회보장제도 전반을 어느 정도 포괄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 농어촌에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목표 수준을 정하는 제도 등 새로운정책을 도입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자부합니다. 제 연구 결과가 정책을바꾸고, 기존 제도의 주요 문제점이해결될 때 연구자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로서 앞으로도 할 일이 정말 많을 겁니다. "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좋은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천생 연구인들 박대식 저는 좋은 연구에 대한 원칙이 있습니다. 선행 연구와 본연구와의 차별성이 분명하고, 문제의식이나 연구 가설이 명확하며, 충분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정리해 농촌 주민의 복지 및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연구자는 선행 연구나 관련 연구를 철저히 검토하고, 양적·질적 분석을 조화시키며, 관련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검토하고 이론적 분석틀을 명확하게 정립하며,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김수린 좋은 연구가 어떤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출발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나 현상이 있을 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고 해결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마지막으로 선배님은 어떤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박대식 내년에는 연구원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는데요,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 농촌 사회복지 분야의 최고 전문가, 후배들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으로도 기억해주면 좋겠네요. 김수린 저는 ‘믿음직한’이라는 단어가 종합적 평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믿음직하다고 표현할 때는 신중하고 성실하며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믿음직한’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동료이자 연구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박대식, 김수린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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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위한 제언
2021년에 돌아보는 조선 건국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국가는 민(民)에 의존한다. 따라서 민은 국가의 근본이요,군주의 하늘이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흔히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고조선 건국 이후 3000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미국은 물론이고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서유럽 국가보다 역사가 훨씬 더 길다. 왕조의 수명 또한 길었다. 고려와 조선은 500년 안팎, 고구려·백제·신라는 100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한국사에서 왕조가 교체된 것은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간 두 번밖에 없었다. 또 외부 세력의 정복에 의한 왕조 교체가 없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수많은 외침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멸망에 이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조 교체는 철저하게 내부의 문제로 진행되었다. 즉 신라 사람들이 고려를 세웠고, 조선을 건국한 것 역시 고려 사람들이었다. 고려 사람들은 왜 자기 나라의 문을 닫고 새 왕조 조선을 개국했을까? 고려 말의 세 가지 위기 14세기 후반, 고려왕조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원-명 교체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동에서 비롯되었다. 고려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명의 철령위 설치와 고려의 요동 출병은 외교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위기는 불교-유교 교체에 따른 사상적 충격이었다. 고려후기에 수용된 성리학은 “불교는 이단이며, 이단은 배척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고려 불교계는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 실패가 성리학을 앞세운 새 왕조 개창의 빌미가 되었다. 세 번째는 폭정이었다. 무신정권, 몽골과의 전쟁, 원의 간섭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고려는 오랫동안 개혁의 기회를 갖지못했다. 각종 제도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고, 낡은 제도 위에서 집권 세력은 부패했으며, 그 피해는 오롯이 백성들의 몫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토지와 노비, 두 측면에서 나타났다. 특히 토지문제가 심각했다. 권력자들이 드넓은 농장을 만들면서 백성들의 땅을 빼앗은 것이다. 농장을 경작할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이번에는 양인을 억지로 노비로 만들었다. 모두가 불법행위였다. 경작할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떠돌거나 스스로 권력자의 노비가 되었고, 도적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 현실을 ‘국지불국(國之不國)’, 즉 “이게 나라냐!”며 개탄했다.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왕은 전격적으로 반원운동을 일으켜 원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곧바로 개혁에 착수했다. 개혁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공민왕이 반개혁세력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 뒤로 폭정은 공민왕 이전보다 더 심해졌고, 고려 왕조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도전의 등장 정도전(1342~1398)은 공민왕 때 20대의 신진 관료로서 개혁 과정을 목격했다. 공민왕 암살 후 반대파에 의해 개혁의 성과가 부정되는 것을 보고 동료들과 함께 저항했고, 그 때문에 나주 거평부곡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의 인생에서 이른바 ‘민의 발견’이라고 평가받는 대목이다. 유배에서 풀린 뒤 정도전은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성계는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며 명장으로 성가(聲價)를 올렸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서 건넨 첫마디는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였다. 만남 이후 이성계는 정치의 길로 들어섰고, 정도전은 이성계의 오른팔이 되었다. 1388년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개혁이 재개되었다. 토지개혁이 가장 먼저였다. 이때는 공민왕의 개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수조권의 불법 행사를 금지한 것이었다. 개혁세력은 제도를 고쳐 불법적인 수조권 행사를 근절하고자 했다. 그런데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비록 불법이지만 오랜 관행이라는 논리였다. 오랫동안,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었기에 불법행위에 대한 죄의식도 없었다. 이렇게 고려왕조의 위기는 모르는 사이에 누적되고 있었다. 민(民)이 근본인 나라를 만들자 토지개혁이 성공하고 새로운 토지제도로 과전법이 제정되었지만, 정도전은 그 개혁이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토지가 없어서 남의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더 근본적인 개혁을 구상했다. 즉, 국가의 모든 토지를 공전(公田)으로 만들어, 농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농민이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조세로 낸 나머지 10분의9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에는 토지 공개념과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정도전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민본(民本), 즉 민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생각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것을 연장해서 정도전은 ‘군주가 민심을 잃으면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민심을 잃은 고려왕조를 민이 버려야 한다는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러한 혁명론(革命論)을 바탕으로 조선이 건국되었다. 뒷날 정도전은 군주와 국가와 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국가는 민에 의존한다. 따라서 민은 국가의 근본이요, 군주의 하늘이다.” 조선은 14세기 후반 원-명 교체, 불교-유교 교체에 대응해서 친명(親明) 노선의 성리학 국가로 탄생했다. 또한 민본사상을 앞세워 고려 말의 폭정을 몰아내고 건국한 나라다. 고려 사람들은 나라를 바꾸는 거대한 혁신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 혁신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2021년에 조선 건국을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익주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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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미얀마 봄의 혁명,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미래를 향한 투쟁
“신식민주의자는 그들이 목표로 삼은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식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 탄 슈웨, 전 미얀마 군부 최고지도자 “실질적인 독립은 인권이 보장될 때에만 가능하다.” - 아웅 산 수 치, NLD 지도자 올해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 위기의 기원은 다름 아닌 1962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다. 당시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세력은 혁명평의회의 이름으로 ‘버마식 사회주의(Burmese way to socialism)’를 내걸었다. 이들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착취를 근절하고 정의에 기초한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수립해 버마 사회를 모든 사회악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독립 직후 버마족 중심의 중앙정부와 변방 소수민족 간 갈등에 따른 정정 불안과 내전이 미얀마 군부 땃마도가 정치에 개입하는 명분이 되었다. 쿠데타 군부 세력의 중심에는 과거 항영·항일 독립투쟁의 지도자이면서 버마 독립의 영웅 아웅 산의 동료인 네 윈 장군이 있었다. 1962년 이후 버마 사회는 버마족 중심의 사회, 지방 기초 행정단위까지 군이 지배하는 병영 사회, 그리고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배제하는 국영기업 중심 사회로 급격히 변화했다. 대표적인 동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으로서 압축 성장에 성공한 싱가포르로부터 적극적으로 개진된 바 있는 아시아적 가치는 ‘아시아식 민주주의 (Asian-style democracy)’를 옹호한다. 아시아식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은 ‘자유’보다 ‘규율’이라는 가치를 ‘아시아성(Asianess)’으로 간주한다.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 제3세계주의, ‘아시아적 가치’ 패러다임으로 수렴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은 제3세계주의(Third Worldism)는 국가 주권과 국민 통합에 대한 강조, 반식민 해방 투쟁을 이끈 영웅적 지도자에 대한 절대복종, 국가를 혼란으로 이끄는 의회주의에 대한 불신 등을 공통된 특징으로 한다. 제3세계주의는 개인보다는 집단, 다양성보다는 일치를 강조하는 비자유주의적(illiberal) 성향을 보였다. 이 외에도 자력갱생 모델(autarky model)의 추구, 외국 군사기지 폐쇄, 서구 자본 추방, 국유화,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 등과 같은 정치노선을 취했다. 구세주를 자처했던 가나의 은크루마, 교도민주주의(guided democracy)를 내세웠던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이 제3세계주의를 이끈 지도자였다. 여기에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진했던 네 윈을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제3세계주의의 혁명적 수사학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신식민주의를 비판하면서 수호자(guardian)를 자처하던 제3세계주의자들의 경제정책이 실패로 귀결되자 비자본주의적 사회주의 노선을 대신해 시장을 수용하는 개발주의로 눈을 돌렸다. 이 지점이 바로 가족, 전통, 집단, 주권, 반서구주의 등과 같은 덕목을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 패러다임으로 제3세계주의가 수렴되는 변곡점이다. 대표적인 동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으로서 압축 성장에 성공한 싱가포르로부터 적극적으로 개진된 바 있는 아시아적 가치는 ‘아시아식 민주주의(Asian-style democracy)’를 옹호한다. 아시아식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은 ‘자유’보다 ‘규율’이라는 가치를 ‘아시아성(Asianess)’ 으로 간주한다. 아시아식 민주주의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고 명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미?주의란 문화 구속적·역사 구속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현태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며, 그들을 민주주의를 세계표준이라고 주장하는 서구의 태도는 비서구 사회를 폄하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맛 수상은 유럽 정상들에게 “아시아적 가치가 보편적 가치이며, 유럽의 가치는 유럽의 가치”라고 말했으며,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는 “싱가포르인은 서구형 민주주의와 자유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반면 아시아적 가치 반대론자들은 아시아적 가치 그 자체를 독재(strongman politics)를 정당화하는 신가산제(neopa trimonialism) 국가 이데올로기이자 서구를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라고 역비판한다. 특히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는 정치지도자들의 경우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국제사회의 관여를 국가 주권 침해,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면서 억압적 통치체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아웅 산 수 치 민간 정부를 전복하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내정불간섭 원칙을 들먹이면서 사실상 군사평의회(junta)를 승인한 중국 정부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제3세계주의의 맥락에 있던 버마식 사회주의의 뒤를 이은 규율민주주의는 아시아식 민주주의의 미얀마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규율민주주의’라는 아시아적 가치를 넘어 미래를 향한 투쟁미얀마 옛수도 양곤에서 벌어진 반쿠데타 민주화 시위대 모습 항영·항일 독립투쟁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는 1990년대 이후 그들의 특권 유지를 위한 3개의 주요 방어선을 구축했다. 1차 방어선으로 군병력과 친군부 정당, 2차 방어선으로 군부 기업과 그 이해당사자, 그리고 마지막 3차 방어선으로 군의 특권을 보장한 2008년 헌법이 그것이다. 2008년 헌법은 ‘규율민주주의(discipline-flourishing dem ocracy)로의 7단계 로드맵’에 따라 제정되었다. 2008년 헌법은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고 내무부, 국방부, 국경수비부 장관직을 현역 고위급 장교가 수행하도록 했다. 또한 국가 비상사태 국면에서 군 총사령관이 정치권력을 접수하도록 함으로써 ‘합법적 쿠데타’의 길을 열어놓았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보통 기존 헌법이 군부에 의해 폐기되는데, 지난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이 주도한 쿠데타 이후 2008년헌법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3세계주의의 맥락에 있던 버마식 사회주의의 뒤를 이은 규율민주주의는 아시아식 민주주의의 미얀마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의 전임자이자 19년 동안 미얀마의 독재자로 군림한 탄 슈웨 장군은 2011년 1월 4일 미얀마 독립 63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신식민주의 세력들이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압력을 행사하면서 그들의 종이 되길 강요하고 있다”라며 당시 제재(sanction)를 가하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아시아적 가치와 일맥상통한 규율민주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한 2008년 헌법을 강행 처리한 탄 슈웨 미얀마 군부 최고지도자의 의식 속에서 제3세계주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더해 탄 슈웨 장군의 메시지를 기사화한 국영 신문 는 수도 네피도에 있는 3명의 전사왕(warrior kings) 동상 사진을 같이 게재하면서 과거 이들이 그들 각각의 왕국을 수호했듯이 강력한 군만이 현재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는 지도자들처럼 탄 슈웨로 대표되던 땃마도 지도자들이 전통을 소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탄 슈웨로부터 군 최고 권력을 이어받은 민 아웅 흘라잉은 1990년 5월 아웅 산 수 치의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한 총선 결과를 군부가 뒤엎고 ‘파괴적 안정 시기’를 구축했던 역사를 재현하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또 다른 식민주의자에 다름 아닌 군부를 국가의 수호자로 설정한 규율민주주의에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의 의지는 한층 더 확고하고, 시민불복종운동(CDM)은 연방군(federal army) 결성을 목표로 한 시민방위군(PDF)으로 분화·발전하고 있다. 이들은 1962년 땃마도의 정치 개입 명분이 되었던 소수민족과의 분쟁 종식과 명실상부한 연방민주주의 수립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이렇듯 미얀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봄의 혁명’은 군부의 수호자적 역할을 명문화한 2008년 헌법체제에 대한 거부이자 규율민주주의로 표현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를 넘어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지평을 넓히려는, 미래를 향한 범국민적 투쟁이다.
박은홍성공회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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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sive Korea 2021
문재인 정부 4년의 여정: 포용적 회복과 도약 문재인 정부 출범 4주년을 맞아 그간의 국정 운영 성과를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평가하기 위해 지난 7월 6일, 7일 이틀간 더케이호텔에서 ‘Inclusive Korea 2021’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정책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공동 주최하고, KDI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는 한국의 회복·포용·도약을 위한 정책적 노력의 성과와 다양한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전 세계적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K-방역의 위상과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 함께 누리는 ‘혁신적 포용 국가’를 위한 철학과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되었다. 콘퍼런스는 기조세션과 4개의 주요 세션으로 구성되었으며, 세션별 전문가 발표와 토론,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코로나19 대응과 위기에 강한 정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박능후 경기대학교 교수는 ‘포용과 혁신의 힘’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전 세계적이고 인류적인 재앙인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과학적 방역 대응, 적극적 경제정책, 통합적 사회정책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감염병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앨런 번스타인(Alan Bernstein) 캐나다고등연구소 소장은 두 번째 기조강연에서 ‘우리는 다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앞으로는 세계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 정부와 과학자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판 뉴딜과 ‘미래를 여는 정부’ 구자현 KDI 지식경제연구부장은 ‘한국판 뉴딜과 선도형 경제’라는 주제로 첫 번째 세션의 첫 발제를 진행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상흔과 고용 악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의 추진은 시의적절하다 평가하며 한국판 뉴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소· 중견 기업의 디지털 전환 노력과 사회안전망 강화, 탄소중립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교수(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는 ‘탄소중립 2050과 에너지 대전환’이란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아 탄소중립은 어느 국가도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자 시대적당위임을 강조하며, 수출의존도가 높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낮은 한국의 현 상황에서 에너지 대전환은 상당한 도전과제임을 직시하고 신속한 이행을 위한 제도와 법률 정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태영 경남연구원 미래전략본부장은 ‘초광역협력 균형발전전략과 신지역시대’ 주제의 세 번째 발제를 통해 수도권 집중 현상 가속화로 지역은 소멸 위기를 겪는 등 과밀로 인한 폐해가 극심해지고 있다며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초광역협력 균형발전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포용사회와 ‘복지를 확장한 정부’ 두 번째 세션의 첫 발제는 임준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가 ‘문재인 케어와 공공의료 강화’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그는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필수 의료 분야로 확장해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입원과 외래를 중심으로 의료기관의 기능을 정립하고 1~3차 의료기관 간 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 마련을 요구했다. ‘사회안전망과 포용적 복지의 확장’을 주제로 발표한 조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대,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의 단계적 급여 인상, 아동 수당 도입 등 소득지원 확대와 재정 투입이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률을 하락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언급했다. 세션의 마지막 발제는 김형용 동국대학교 교수가 ‘공공 돌봄: 지역사회 신뢰 구축’이란 주제로 진행, 급격한 인구사회구조 변화로 돌봄 수요가 폭증했고 정부는 이에 부합하는 공공부문 주도의 통합적 돌봄체계 구축을 시도한 점이 이전 정부와의 차별점이라 언급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신뢰 회복을 기반으로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 양성 및 돌봄 종사자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공정사회와 ‘권력을 개혁한 정부’ 세 번째 세션에서 이국운 한동대학교 교수는 ‘권력 기관 개혁의 성과와 과제’ 발제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검찰·경찰의 수사권 조정 등 형사사법 권력기관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며, 앞으로의 개혁과제로 수사권 다원화에 따른 형사사법 新거버넌스 구축, 형사사법 과정에서 시민자치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은 ‘부패 방지와 청렴사회 실현’ 발제에서 한국 사회의 청렴도가 지난 4년간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밝히며, 향후 공공부문 중심의 반부패 청렴정책을 경제부문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법제조사평가팀장은 ‘공정경제 질서와 시장의 민주화’ 발표를 통해 ‘공정경제’의 기반이 되는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개정 등을 발판으로 하여 시장의 민주화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평화를 유지한 정부’ ‘북핵 위기 대응과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주제로 네 번째 세션의 첫 발제를 맡은 김상기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 싱가포르 공동성명 발표 등의 합의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유지가 가능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주목할 주제로는 한미연합 훈련 진행 여부 및 남북합의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등을 꼽았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는 ‘국방력 강화와 책임국방의 실현’이란 주제로 발제해 문재인 정부가 첨단무기 체계로 전력을 강화하고 전작권전환 노력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달려왔으며 이를 통해 국방력 강화와 책임국방을 실현하고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한 국방 건설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홍석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포용적 국제협력과 국제외교의 다변화’ 발제를 통해 우리 정부가 협력적 균형외교를 통해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했다고 평가하며, K-방역, K-문화 등을 활용한 중견국 외교를 통해 국제협력 강화를 도모하고 포용적 스마트 외교전략을 구사해 국익 창출과 함께 세계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어젠다를 발굴해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포용·회복·도약을 위한 방향 콘퍼런스의 대미를 장식한 종합토론에서는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의 사회로 세션별 좌장 및 특별 연사의 국정과제 수행 전반에 대한 평가와 향후 국정 비전 제시를 위한 논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정해구 이사장은 코로나19에 대한 현명한 대처로 ‘회복’과 ‘도약’이 논의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로 ‘포용’을 언급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된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감싸 안는 ‘포용적 회복’과 ‘포용적 도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진한국개발연구원 성과확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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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심포지엄: 한일관계, 대전환을 논하다
“대전환 시대를 맞이한 한일관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2019년 여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한일관계가 급전직하로 경색되었을 때, 이에 대한 대응 모색을 위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하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기획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린 지 올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 이후 한국은 수출규제 조치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중견국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여러 사회 경제 지표들은 한일의 종합적 국력이 서로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적 수준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한일관계도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상황에 진입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올해 국제 심포지엄은 ‘한일관계의 대전환을 논하다’를 주제로 설정되었다. 올해는 한국법제연구원이 공동주관 기관으로 지원했으며, 지난 8월 26일(목)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서 온·오프라인 병행의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개최했다. 지역 질서 변환에 나서야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위로부터의 국익 관점 대신 아래로부터의 시민 생활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한일 양국이 차이는 차이대로 인식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가는 구존동이의 노력”을 당부했다. 김계홍 한국법제연구원장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과 일본은 만나서 논쟁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은 “지방, 젠더, 신세대에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에 주목하여,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과 전략을 함께 모색”하는 데 국제 심포지엄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훈 전 주일대사는 축사를 통해 대전환기의 특성이 ‘혼란’ 에 있으며, 한일관계가 삐걱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한일관계 대전환을 논하는 것으로써 한일관계가 건설적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질서 전체에 파급력을 갖는 쾌거가 될 것이라 전망하며 전문가들의 다양한 대화를 요청했다. 결단과 실천에 나설 때 이어서 기조강연에 나선 최상용 전 주일대사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오랜 우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일관계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는 비핵평화의 신념, 선진 민주주의의 경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라는 대전환의 귀중한 선례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 정부가, 레토릭에 구애받지 말고 결단과 실천으로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는 한일관계 악화가 오로지 정치적 문제이고, 그것이 정치문제인 이상, 한일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국적 관점을 가진다면 결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정치문제의 대부분이 식민지 시대의 문제와 전후 처리 문제이기에 일본은 무한책임론에 입각한 사과의 마음을 표시하고, 한국은 2015년 한일 합의를 바탕으로 한 외교적 해결에 노력을 기울여 한일관계를 파멸의 늪에서 구해 줄 것을 호소했다. 대전환의 전선: 지방, 젠더, 신세대 한일관계가 장기 저강도 복합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혐한류 현상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한일관계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전선은 지방, 젠더, 신세대다. 제1부에서는 이에 주목했다.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우려와 긴장 속에서 개최한 일본 지방 도시의 한국 관련 행사에 많은 지역 주민이 운집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K-pop과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소비하는 여성과 MZ세대 인구가 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한국을 ‘선망’하는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유튜브 등 SNS를 이용해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양상은 어떠하고, 그 의미는 무엇이며, 향후 전망은 어떤가? 이들은 한일 양국의 ‘주류’들이 이끌어가는 한일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이진원 서울시립대 교수, 하루키 이쿠미(春木育美) 와세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초빙연구원, 권용석 히토쓰바시대학교 교수 등이 각기 지방, 여성, 세대를 중심으로 발제했고, 정미애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후쿠시마 미노리(福島みのり)가쿠엔대학교 교수, 마쓰타니 모토카즈(松谷基和) 도호쿠학원대학교 교수 등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수평화와 대칭화 한일관계 악화가 구조화 장기화하는 배경에 한일관계의 수평화 현상이 있다. 과거 한일관계는 경제와 안보에서 위계적 분업구조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으며 협력은 상호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국력 수렴 현상은 한일관계의 수평화와 대칭화를 가져왔고, 협력 또한 선택지의 하나가 되었다. 경제와 안보 협력이 필수가 아닌 상황에서 과거사 또한 관리되지 않게 된 것이 장기적 한일관계 악화의 배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관계 악화가 표면적으로는 과거를 둘러싼 갈등으로 빚어지는 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미래를 둘러싼 인식 차와 그로 인한 갈등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한일관계의 구조 변화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러한 변화가 향후 이 지역의 국제질서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할지 전망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손열 연세대 교수,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학교 교수, 브래드 글로서먼(Brad Glosserman) 다마대학 룰형성전략연구소 부소장 등이 발제하고,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교수,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구마가이 나오코(熊谷奈?子)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교수 등이 활발한 토론을 전개했다. 한일관계 재정립을 위하여 한국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극복과 코로나19 방역에서 얻은 자신감, 그리고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 및 평가를 배경으로 중견국 멘털리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한국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의 글로벌한 위상이 확인되고, G7에 한국이 초청된 것을 배경으로 실질적인 중견국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한편 대국외교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외교가 실제로는 중견국 외교라는 지적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이 호주 및 인도등과 관계를 강화해온 궤적은 중견국 외교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동맹 복원, 다자주의 외교 부활은 중견국 외교의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동, 환경에너지, 감염증 방역 등의 영역에서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은 중견국 외교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중견국 협력을 통해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가? 국제법에 대한 존중을 기초로 하는 다자주의를 실천하고자 할 때, 역사 영토 문제의 국제법적 해결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에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학 명예교수, 이용일 전 아이보리코스트 대사 등이 발제하고, 이지원 한림대학교 교수, 엔도 겐(遠藤乾) 홋카이도대학교 교수, 리팅팅(李??) 베이징대학교 교수 등이 토론을 통해 논의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한일 협력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한일관계가 더 이상 양자관계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미중의 전략경쟁이라는 지구 정치 요소에 보다 민감하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 향방은 또한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보다 직접적으로, 보다 확대된 형태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지구정치가 혼돈과 위기 징후를 보이는 가운데, 한일 양국 정부가 큰 틀에서 보다 대국적 판단으로 관계 개선에 나설 시점이다. 한일관계 대전환이 평화와 번영의 지구 질서를 구축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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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휴먼 뉴딜과 평생학습사회 구현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과 함께 안전망 강화를 핵심으로 한다. 디지털 뉴딜이나 안전망 강화 요소였던 신산업인력 양성이나 사람 투자에 대한 것이 부각되면서 이를 휴먼 뉴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국판 뉴딜이 미래를 향한 대전환을 꾀하는 것이라면 휴먼 뉴딜은 다른 뉴딜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휴먼 뉴딜이 몇몇 정책에 중점을 두는 것을 넘어 평생학습 체제 구현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발전되기를 바란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은 ‘평생’이라는 생애 전반의 기간에만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 학습자 주도성을 기반으로 학습자가 속한 사회의 민주적 역동성을 중시하고, 직업 능력 향상을 통해 자립적인 삶을 돕는 역할을 해온 사회교육에서 발전하여 교육을 보는 관점이나 제도화를 위한 접근 방식을 내포하는 말이기도 하다. 평생교육은 학습자의 자발성과 주도성 존중을 중심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상호 연결적인 체제를 지향한다. 또한 아동·청소년기 교육과 마찬가지로 성인기 교육에서도 모든 이의 학습권 보장을 추구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평생학습 프로그램과 활동이 전개되면서 플랫폼을 형성하고, 더 큰 플랫폼과 연계되어 평생학습 플랫폼 방식으로 평생학습 체제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여기에서는 성인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학과를 ‘특정 주제 혹은 목표를 지향하는 학생과 교수 중심으로 조직된 지적 연결 단위’로 규정함으로써 종래 학과와 대학 조직을 재구조화한 대표적 혁신 사례로 꼽히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대학과 직업교육 혁신 대학은 작은 차이를 서열화해 입학생을 선별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학습할 수 있는 사전 역량을 갖추고, 의지가 있는 학습자에게 열린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성인 학습자들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교육의 상당 부분은 인프라와 자원을 갖춘 대학에서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학은 더 깊은 인문·교양을 원하거나 이직 후 전직을 원하는 성인들의 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비형식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체제로 거듭나야 한다. 학습자들이 자율적 설계를 통해 여러 대학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학점을 취득하고, 그 성과에 기초해 학위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학습활동이 유연하게 이루어지려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단과대학, 학과, 학점, 졸업 등 학사 운영 구조가변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애리조나주립대학교는 학과를 ‘특정 주제 혹은 목표를 지향하는 학생과 교수 중심으로 조직된 지적 연결 단위’로 규정함으로써 종래 학과와 대학 조직을 재구조화한 대표적 혁신 사례로 꼽힌다. 전문대학과 대학은 특히 직업교육 영역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학습자의 자립적인 삶,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역할은 평생교육의 중요한 축이다. 사회 변화 추세를 보면 전통적인 직업교육과 일반 교육의 경계가 완화되며 상호 융합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디지털 역량, 데이터 문해력 등이 중시되고 있다. 직업교육 및 훈련은 점차 후기 중등 이후 고등교육 수준의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해 거점이나 지역 수준에서 질 높은 재교육과 향상 교육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사립 비중이 절대다수인 전문대학은 전문계고등학교보다 여건이 열악한 곳도 많다.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구분하는 데 얽매이지 않고 상당수 전문계고등학교를 마이스터고등학교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전문대학과 결합한 새로운 학제로 만들어 양질의 직업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방안, 대학이 기업과 연계해 실습을 활성화하고 일과 학습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기업이 직능교육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는 방안, 지자체나 민간 직업훈련기관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프로그램 이수를 인정하는 방안 등 혁신적 개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부처 간 연계 통합 조정, 학위 중심성 완화성인 학습자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을 위한 평생학습을 보장하기 위해 재정 지원, 프로그램 제공, 유관 서비스의 복합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부는 직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노동부는 직업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데, 양질의 직업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원하는 학습자의 입장에서 보면 만족할 만한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직업교육과 훈련 체제는 학습자와 노동시장을 연결할 수 있도록 현장 실습의 질 제고와 이론과의 연결성 제고, 학습자의 요구와 산업 수요를 반영한 유연한 대응, 지역 중심의 교육훈련과 사업 요구 간 유기적 연계, 직업교육과 훈련의 공공성 제고가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물론, 직업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다른 부처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상위 조정 체제를 갖추어 부처 간의 연계 및 협력을 강화하고, 통합적 접근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참여정부 시기에 법제화했으나 정권이 바뀌며 사문화된 인적자원개발기본법을 사회 변화의흐름을 고려해 재편함으로써 조정 체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강력하게는 기능 조정이나 통합을 통해서라도 국가 수준과 지역 수준에서 체제 개선이 필요하다. 직업교육과 훈련 체제의 발전과 더불어 학위 중심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에서 학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학교를 통해 취득한 학위가 없어도 일을 통해 축적한 역량, 숙련도 등이 노동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일을 통한 학습, 숙련도 향상 의지를 북돋기 어렵다. 많은 선진국에서 학위 이외에 경력을 통해 성취한 숙련도나 자격 수준 향상을 노동시장에서 인정함으로써 학위 중심성을 완화하고, 현장에서의 학습을 고취하고 있다. 일을 통한 학습을 인정해주기 위해서는 학력과 자격이 호환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합의가 가능한 분야와 기능에 대해서라도 먼저 시도해보아야 한다. 학습권 보장을 위한 노동·복지 정책 연계 세계적으로 시행한 국제성인역량조사(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 PIAAC)나 국내의 평생학습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는 소득, 학력, 재직 직장 규모에 따른 비형식 프로그램 위주의 평생학습 격차가 매우 큰 편이다. 성인 학습자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을 위한 평생학습을 보장하기 위해 재정 지원, 프로그램 제공, 유관 서비스의 복합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기본소득의 취지를 학습에 적용한 학습 크레디트와 같은 정책 도입은 미래를 위한 사람 투자로서의 의미가 크다. 싱가포르에서는 이미 이를 시도해본 바 있다. 아울러 새로운 일을 찾는 중장년, 경력 보유 여성들에게 적절한 직업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학업 보조금 지급, 학자금 융자 등의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평생교육법에서 가능성을 열어둔 유급 학습휴가제나 학습 기간 중 대체 고용을 의무화해 주기적으로 재충전과 일자리 공유를 구조화하도록 한다. 학업 중단 후 학습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기초 역량이 부족한 사람, 니트족(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은둔자 등의 재도전을 위해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학습-문화-복지가 결합한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동 돌봄, 어르신 돌봄, 개인학습, 학습 공동체 참여, 교육 프로그램 참여 등이 한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서비스 복합센터 등이 그 예다. 이상은 중앙이나 지역 수준에서의 정책 설계를 염두에 두고 제안해보았다. 그러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급자 위주의 정책 입안과 추진에 의해 주어진 프로그램을 학습자가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습자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기반으로 하는 평생학습의 영역은 정책만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민간에서의 자발적 움직임, 기업의 풍토 변화 등도 수반되어야 한다.시민들이 생활권 내에서 삶의 문제, 교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하는 풀뿌리 운동 체계가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논의된 문제의식이 위 단계에 모여 국가 수준에서도 국민의 뜻에 맞는 교육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적 결정을 함께 해내는 과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여러 정책도 시민사회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며 추진해야 할 것이다.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한국 성인들의 문해력, 수리력, 문제해결력은 모두 연령이 증가할수록 우리가 주로 비교 대상으로 삼는 나라들에 비해 매우 가파른 추락 곡선을 보였으며, 상위 수준의 역량을 지닌 성인의 비율도 훨씬 낮았다. 이 결과는 평생학습 참여 기회 확대 요구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 사회 구성원의 역량은 프로그램화된 학습을 통해서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성인역량조사 결과를 보면 학습 의지, 과업 재량, 직장 내 학습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떨어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산업구조나 직무 특성에도 기인하겠지만, 직장의 조직문화나 풍토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학습사회는 프로그램화된 학습 방식을 넘어 사회 각 부문의 조직이 더 자율적이고 도전적인 향상 의지를 격려하고 협력하는 풍토를 내재화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류방란한국교육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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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수능의 논란, 수능의 개혁
“‘수능’을 손보지 않으면 어떤 교육정책(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능은 ‘대입’과 다름없는 말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나, 교육에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 결정이 대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선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수능에 반영되는 것이면 열심히 달려들고, 반영되지 않는 것이면 무시하게 된다. 이런 전략은 학생이나 학부모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공공연히 채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이든 그 취지를 관철시키려면, 취지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교육 행위를 수능에 걸어 유도할 도리밖에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들 주장한다.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이라면 수능 과목에 포함시켜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사가 수능의 필수 과목이 되고, 최근 ‘AI 과목’을 수능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의 일이다.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0일 앞둔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수험생들이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수능 논란 왜 모두 수능에 매달리는가? 우리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수능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수능 점수에 걸려 있는 인생의 몫은 어마어마하다. 어떤 대학에 다니게 될지 결정한다는 사실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 마저 결정한다고 얘기된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끼리도 수능 점수로 계급을 나눈다고 한다. 수능 커트라인이 낮았다면, 그 모집단위에 입학한 학우들을 ‘벌레’ 취급한다는(‘지균충’ ‘사배충’ 등으로 부른다는) 얘기는 보도까지 되었다. 어떤 고3 교실에는 ‘수능 점수가 배우자를 결정한다’는 식의 급훈이 걸려있다는 얘기도 있다. 수능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그만큼 수능의 구속은 우리에게 버겁다. 이런 현실에서 수능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안 나올 수 없다. 손봐야 할 이유는 많다. 수능 때문에 피폐해지는 학생들을 거론하고, 수능에 맞춰가지 않을 수 없어서 비틀리는 학교교육도 거론한다. 자녀의 수능 전략을 뒷받침해야 하는 가계의 부담도 수능을 바꾸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된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든,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서든, 수능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우리 모두 쉽게 수긍한다. 수능을 개혁하려는 과제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결정하는 대목에서이다. 수능을 바꾸자는 데는 마음을 모으지만, 개혁 대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뜻을 모으지 못한다. 수능을 개혁하라는 사회의 요구는 종종 모순적이고, 그래서 수능을 개혁하기 위한 논의는 늘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이다. 수능 논란에 함축된 갈등2022학년도 9월 수능모의평가가 치러진 한 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수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개혁 요구들이 서로 어떻게 부딪치는지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우선, 수능의 영향력이 너무 크고 부작용도 따라서 막대하니, 수능의 결정력을 약화하거나 아예 없애자는 요구가 있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바꾸자거나, 수능 성적을 점수가 아닌 등급으로만 표시하자는 주장들도 이런 요구에 해당한다. 이런 주장이 널리 지지 받지만 반박도 만만찮다. 수능 폐지나 약화 시도는 ‘풍선효과’를 낼 뿐이라거나 ‘객관적인’ 선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반박이 바로 나온다. 수능 점수로 등락을 결정짓지 않으면 최종 결정력이 다른 전형요소로 옮겨갈 뿐이고, 그렇게 결정력을 얻게 될 요소는 학교생활기록과 같이 ‘정성적인’ 것이기 십상이어서, 대입전형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외부 요인’에 휘둘릴 여지가 있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이와 연결되는 맥락에서, 수능이 공정하려면 객관적이고 변별력이 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학생들이 경쟁하는 경우에도 동점자가 나오지 않도록 변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의 영역별로 9단계 점수 등급이 정해진 비율로 엄밀하게 나뉘지 않을 경우, 수능 출제에 대한 비난은 매우 거세다. 그래도 이에 대한 반박 역시 만만찮다. 이를테면, 1~2점 차이더라도 수험생들을 변별하려 드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한다. 교육적으로 의미 없는 점수 차이에 연연하도록 수험생들을 옭아매어, 문제풀이 연습을 무한 반복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이 다양하고 교육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더이상 옥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방은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한편에서는 동점자가 안 나올 만큼 서열을 겹치지 않게 매기는 시험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반대편에서는, 서열이 겹치건 말건(동점자가 얼마나 생기건), 수능은 학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는지 평가하는 데만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논란과 갈등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논란에서도 수능이 어떤 궁지에 몰려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소위 “문과가 불리해졌다” 는 주장을 들여다보자. 올해 시행되는 수능에서는 수학 영역의 과목이 통합되었다. 작년까지 ‘가’형과 ‘나’형으로 구분했었는데 그 분리를 없앤 것이다. 작년까지는 소위 ‘이과생’이 가형에 응시했고 ‘문과생’은 나형에 응시했었다. 그래서 수학에 상대적으로 약한 학생(흔히 ‘문과생’으로 간주된다)은 나형을 선택해서, 수학에 강한 학생(흔히 ‘이과생’으로 간주된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이런 우회로가 없어진 셈이다. 모든 수험생이 하나의 풀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문과생 불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과생들이 점수의 상층을 형성하게 될 터라, 밑으로 ‘깔리게’ 될 문과생들이 여러모로 불리해졌다고 주장한다. 문과생들이 수시에서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졌고, 정시에서는 이과생들이 문과 분야로 ‘교차지원’해서 문과생의 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도 말한다. 수능이 불공정해졌다고 역설하면서, 제도를 과거로 돌려놓아야 할 것처럼 주장한다. 수능의 표준점수제나 점수 보정이 문제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금년의 수능 체제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 마련되었다. 2015년 교육과정 개정 때, 정책 당국은 미래가 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통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중시했다. 국가교육과정은 이미 통합적이었는데도 학생들은 여전히 문과-이과로 분리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수능 체제를 바꾸어서 구태를 실질적으로 깨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능의 ‘개혁’ 이이루어졌지만, 고등학교의 수업 운영은 상응하게 변화하지 않았고, 대학들도 새로운 수능 체제에 조응하는 전형제도를 마련해놓지 않았다. 변혁의 부조화는 결국 ‘문과 불리’라고 일컫는 사태를 낳았고, 이 ‘문제’는 지난 6월 수능 모의평가가 시행된 후에야 실감하게 되었다. 이해당사자들과 언론에서 비로소 소리 높여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통합된 수능 체제를 채택한 게 잘못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보더라도, AI 교육이 필요하고 그만큼 수학 교육이 중요해졌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시대 변화를 감안해서 수능이 통합적으로 개혁되었던 것이지만, 득점상의 이해관계가 바뀌자 마치 수능이 그릇된 방향으로 바뀐 것처럼 주장되고있다. 수능 유·불리 논란과 관련해서 이해를 달리하는 주장이 없지 않다. 이번 수능에 와서야 비로소 수학 우수자들의 실력이 바르게 인정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우수한 학생들끼리 경쟁하도록 강제되었었기에 실력자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수능을 발전시키려면 수능에 대해서는 이해를 달리하는 요구가 매년 쏟아지게 마련이다. 수능 점수에 대한 ‘배당 몫’이 막대한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까지 수능 개혁은 그런 요구에 흔들리며 우왕좌왕해왔다. ‘물수능-불수능’, ‘상대평가-절대평가’, ‘수능-학생부’(또는, ‘정시-수시’) 등,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이었던 대입 논란의 용어들이 그동안 수능 개혁이 왜 근본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는지 보여준다. 수능 개혁은 사회의 요구(여론 또는 민원) 충족보다 교육 앞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우선 추구해야 할 것이다. 수능(대입)이 평생을 좌우할 만큼 막대한 힘을 지니도록 놔두어야 할지, 학교 수업이 수능 문제풀이에 매달려도 괜찮은지 먼저 토의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대안을 만들고, 개혁에 대한 학교와 대학 등의 조응도 확보해야 비로소 개혁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 최선은 현행 수능의 안정된 운영을 도모하는 일일 것이다.
강태중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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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부상과 지식재산권법의 새로운 도전 과제
최근 현실과 가상 세계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로 메타버스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초월을 의미하는 ‘Meta’와 세계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는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에서 시청각 출력장치를 사용해 접근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이용자가 단순히 콘텐츠를 제공받는 위치에 머무른 반면, 현재의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5G 네트워크, 3D 그래픽 기술, VR·AR 기술 등 기반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주체가 양방향 소통하는 등 동시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이용자는 단순히 가상의 행위를 체험하거나 경험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콘텐츠를 제작·유통하거나 디지털 공간 내 경제활동까지 영위하고 있다. 이른바 ‘프로슈머(prosumer)’로서 지위를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국내 대표적인 메타버스 모델 제페토와 명품 브랜드 구찌의 협업 프로젝트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법적 쟁점 대두 메타버스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 창작이 가능한 공간으로 새롭게 부각하면서 기존 법해석과 법이론을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지식재산권 관련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메타버스 환경에서 제기되는 법적 쟁점은 저작물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가상공간에서 제작한 창작물에 대한 권리 보호와 권리 침해 여부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여러 창작 툴을 제공함으로써 이용자가 직접 자신만의 2차 창작물을 만들고 판매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국내의 대표적 메타버스 모델로 언급되는 제페토를 예로 들면, 이곳에서는 아바타가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제작하는 ‘제페토 스튜디오’나 가상의 장소를 구축할 수 있는 ‘빌드잇’을 제공한다. 여기서 만든 창작물을 과연 현실 세계의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 혹은 이러한 창작 행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침해 주장이 가능한지 등이 문제가 된다. 다음으로는 현실 세계에 있는 건축물이나 공간 등을 가상 세계에 유사하게 구현하고자 할 때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다툴 수 있다. 국내에서는 골프장 코스를 재현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한 업체에 대해 골프코스의 건축 저작물성을 인정하는 판결로 논란을 불러온 바 있으며, 미국에서는 메타버스 기반의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가 음악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전미음악출판협회(NMPA)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의 저작물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우 저작권 침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게 될 것이므로 메타버스 환경에서확대·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면책 법리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와 디자인보호법미국 메타버스 기반의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는 음악저작권 침해 문제로 전미음악출판협회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행 디자인보호법은 유형의 물품에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물품성’을 요건으로 하는데, 디지털 출력물에 불과한 메타버스 창작물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래픽디자인은 디자인보호법상 ‘화상디자인’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특허청 디자인 심사 기준에 따르면 화상디자인은 “물품의 액정 화면 등 표시부에 표시되는 도형 등”으로 해석한다. 가령 화면에 표현되는 아바타나 공간디자인 등의 특정 도형이 형태적 관련성을 띠고 일정한 변화가 있다면 이를 동적 디자인으로 등록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경우 부분 디자인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디스플레이 장치와 독립된 추상적 디자인 자체로서 보호하는 것은 아니므로 결국 물품성이 부정되거나 디스플레이 장치를 변경해 실시하는 등의 우회 행위를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10월 6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블록체인 서울'에서 참가업체 관계자가 VR훈련 시뮬레이터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 메타버스와 상표법 메타버스 공간에서 각종 인앱 서비스를 통해 창작한 의류, 가방, 장신구 등(이하 ‘의류 등’이라 함)을 상표로 등록할 수 있는지와 타인의 상표권 침해를 인정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상표법 제2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상표의 표장은 “기호, 문자, 도형, 소리, 냄새, 입체적 형상, 홀로그램·동작 및 색채 등으로서 그 구성이나 표현 방식에 상관없이 상품의 출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모든 표지”를 뜻하므로, 메타버스 공간에서도 출처 표시 기능을 지닌 대상은 상표법상 식별표지에 포섭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표출원 시 지정 상품에 속하는 상품류를 지정해야 하는데, 메타버스에서의 의류 등은 실질적으로는 화상 이미지에 해당하므로 의료 등과 같은 기존 분류 체계에 속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오히려 상품 분류 제9류에 해당하는 ‘내려받기 가능한 이미지 파일(downloadable image files)’을 지정 상품으로 지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사례별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현실 세계의 브랜드 상표나 디자인을 모방해 메타버스 공간 내 아바타가 사용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로블록스 이용자는 브랜드 상표권자로부터 허락받지 않은 유사 디지털 상품을 제작·판매하고, ‘로벅스’라는 가상화폐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경우 상표법상 상품에 대한 침해가 인정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판례에 따르면 상표법상 상품은 “그 자체로서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 행위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와 저작권법 저작권법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상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가상공간의 ‘공중’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아바타 자체가 캐릭터로서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의류 등을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저작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의 해석을 비롯해 배경 저작물 구현 시 저작권 침해 인정 기준과 플랫폼 사업자(저작권법상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면책 법리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미국에서는 ‘포트나이트 게임’에서 아바타가 춤을 추게 하는 이모트 기능 중 일부분이 실연자의 댄스를 모방한 것이어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퍼블리시티권의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에 따른 성과모방행위로 인정되거나 관련 근거 규정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저작권법 전면 개정안에 포함되므로 향후 적용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의 저작물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메타버스 환경에서 확대·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면책 법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저작권법은 파노라마의 자유(제35조), 부수적 이용(제35조의3), 일반 공정이용(제35조의5) 등의 저작권 제한 사유를 일정한 요건하에 인정하고 있으나, 자유 창작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메타버스 내 지식재산 창출 지원 앞으로 도래할 메타버스 시대에는 어떠한 원칙과 법리를 적용해야 할 것인가? 현재 대부분의 메타버스 사업자는 서비스 약관을 통해 메타버스에서 생성된 창작물의 권리가 원칙적으로 이용자에게 귀속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계약 관계상 권리 성립에 대해서만 작용할 뿐이므로 침해 주장과 권리 분쟁에서 종국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특히 그간 지식재산권법의 영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창작자의 보호 원칙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온 경향이 있다. 메타버스의 산업적·경제적 파급력을 감안할 때 합법적으로 구현 가능한 서비스 범주, 사업자의 책임 범위 및 면책 요건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해석 기준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메타버스 내 활발한 지식재산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준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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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의향과 출산 계획의현황과 정책과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하락했지만, 국민 대부분은 여전히 자녀 2명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낳기로 계획한 자녀 수도 2명에 가깝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전체 가임 기간에 낳는 평균적인 자녀 수다. 따라서 합계출산율이 1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거나 계획한 수만큼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현상은 급속한 인구 감소를 초래할 것으로 보여 국가적으로 크게 우려되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도 원하는 만큼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으니 이와 관련한 국가적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는 개인의 출산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합계출산율을 회복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출산율은 계속 하락해왔다. 최근 들어 정부는 기존 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녀 출산에 대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여성의 출산 의향과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은 무엇이며, 계획했던 출산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계획한 출산을 실현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자녀 출산에 대해 국민이 가지고 있는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 제언하고자 한다.주: 30~34세 기혼 여성의 이상 자녀 수/기대 자녀 수 자료: 이상 자녀 수와 기대 자녀 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1974~2018년), 기간 합계출산율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자료, 신윤정 외(2020) 191쪽에서 재인용. 출산과 자녀 양육에 우호적 환경 조성 필요 과거 연구에서는 개인이 출산을 결정하는 데 소득수준 혹은 자녀를 출산하면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과 같은 경제적 요인이 출산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 요인보다 자녀 출산에 대한 개인의 ‘선호’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자녀를 낳으면 개인적으로 어떠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가 따를지, 자녀를 낳지 않으면 부모·친구·친척 등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자녀를 낳으면 국가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이 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5~39세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2020년 6월 18~28일 시행한 온라인 조사 자료(‘출산 의향의 실현 분석과 출산율 예측에 관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여성의 출산 계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자녀 출산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받는 압력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녀를 낳지 않으면 부모·친구·친척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자녀 출산을 계획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면, 자녀 출산에 대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는 자녀 출산 의향을 좌우하는 큰 요인이 아니었다. 자녀를 낳을 경우 받게 될 정부 지원도 자녀 출산을 계획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우리나라에서 출산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녀 출산에 대한 평가보다 주변으로부터 받는 출산에 대한 압력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두 자녀 이상을 낳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한 자녀 혹은 무자녀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도래할 경우,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더욱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지금까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힘써왔음에도 한국의 사회경제적 여건과 정책적 환경이 여성의 출산 의향과 계획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은 변화된 사회환경에 맞춰 출산과 자녀 양육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녀를 낳으면 어떠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가 따르게 된다고 생각하는지,자녀를 낳지 않으면 부모·친구·친척 등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자녀를 낳으면 국가에서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이 주요한 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대상의 저출산 대응 정책 강화주: 경로 위에서 표준화 계수가 제시됨. 자료: ‘출산 의향의 실현 분석과 출산율 예측에 관한 설문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윤정 외(2020), 98쪽, 106쪽에서 재인용. ‘여성가족패널’ 2~8차(2008~2018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년 이내 출산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 중 약 70%가 2년 이내 이를 실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을 실현하지 못한 여성 중 약 30%는 여전히 출산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약 38%는 출산을 포기했고, 23%는 출산 여부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출산을 포기할 확률이 높아지고, 출산을 실현하거나 연기할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출산을 지속적으로 연기하는 여성은 특정 연령 시점이 지나면 출산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보다 출산을 연기할 가능성이 더 높고, 출산을 실현할 가능성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 여성이 고졸 이하 학력의 여성에 비해 출산을 실현할 가능성이 더 크고, 출산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학력 여성은 저학력 여성보다 일반적으로 출산수준이 낮지만, 절대적 출산 수준과는 별개로 본인이 계획한 출산을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고학력 여성이 저학력 여성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고학력 여성이 저학력 여성보다 계획한 출산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중산층 혹은 중하층 집단은 저소득층보다 출산을 실현할 가능성이 더 적었으며, 출산을 실현하지 못한경우에 출산을 포기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하층 혹은 중산층 집단도 계획한 자녀를 출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중산층까지 포함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집단을 대상으로 저출산 대응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자녀가 있는 여성이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출산 실현 혹은 포기에대해 확실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자녀가 없는 여성이 자녀가 있는 여성보다 출산 연기나 출산 미결정과 같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더 높았다. 자녀를 낳아본 경험이 있는 여성은 자녀 출산이 가져다주는 행복감 혹은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출산 여부를 쉽게 결정하는 반면, 자녀를 낳아본 경험이 없는 여성은 자녀 출산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지 확신할 수 없어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첫째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자녀 출산에 부정적 경험을 갖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을 모색해봐야 한다. 또 자녀가 없는 여성이 자녀 출산과 양육에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래 인구 모습 예측을 위한 노력 우리나라는 과거 여성들이 보여온 출산 실적치 자료를 활용해 미래 출산율을 전망하고 있다. 최근 여성들이 과거 여성과 유사한 출산 행태를 보인다면 이와 같은 자료는 미래 출산율을 전망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현세대 여성은 과거 세대 여성과 매우 다른 결혼 및 출산 행태를 나타낸다. 과거에는 20대 후반에 자녀를 많이 출산한 반면, 최근에는 여성들이 30대에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가 더 늘어났다. 따라서 과거여성들이 보여주는 출산 행태 자료에 근거해 미래 출산율을 전망하게 되면 미래에 실제 나타나는 출산율보다 높은 수준으로 출산율을 예측할 우려가 있다. 과거 여성들이 보여온 출산 자료를 토대로 미래 출산율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현재 여성들의 출산 의향과 계획에 근거해 미래 출산율을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출산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1974~2018)와 ‘인구센서스’(2005, 2010, 2015) 자료를 활용해 50세까지 무자녀로 남아 있는 여성을 제외한 비중을 적용하여 ‘실효적 기대 자녀 수’를 산출하고 통계청 ‘인구동태통계/장래인구추계’의 코호트별 완결 가족 크기를 비교한 결과, 두 자료의 수치가 매우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최근 여성들의 이상 자녀 수 및 기대 자녀 수를 기반으로 미래 출산율을 전망하고 장래 인구 모습을 예측하는 일은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 자녀 수/기대 자녀 수와 실제 출산아 수의 차이를 보정하는 작업을 통해 출산율 예측 정도를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혼인 의향에 대한 자료도 함께 축적함으로써 장래 인구 추계에 응답자의 출산 의향 및 의도를 고려하는 추계 방법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신윤정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공감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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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공소통
꾸준한 콘텐츠 제공으로 행동을 변화하는 디지털 캠페인
지난 십수 년 동안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서 비롯된 디지털화의 가속은 기업에는 새로운 제품(서비스)에 대한 압박을,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소비 환경에의 적응을 가져왔다. 디지털 시대 이전 고객 경험의 개념이 브랜드와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구축된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인식을 의미한다면, 디지털 고객 경험은 고객이 브랜드와 경험하는 디지털 상호작용의 총합으로 형성된 고객의 인식을 의미한다. 고객의 디지털 경험 범위는 온라인 웹사이트는 물론이고 모바일 앱, 채팅 봇, 소셜미디어, 그 외 모든 디지털 채널을 포함한다. 기업의 디지털 고객 경험 접근 범위가 고객과 많은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공공의 그것은 당연히 상이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디지털 혁신을 지향하지 않는 기업이나 조직을 찾기는 어려우며, 공공 역시 긍정적 디지털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예외일 수 없다. 디지털 공공소통의 관점에서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고객 경험의 방향은 첫째, 공공의제에 관한 기관 고유의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 둘째, 기관 보유 매체의 디지털 이용 편의성을 높이도록 개선하는 것, 셋째, 국민이 혁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양방향 소통체계를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인식 개선을 넘어 행동을 변화하는 디지털 캠페인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8시간 동안 널어둔 빨래를 말리기 위해 보급된 빨래집게에 충분한 에너지를 모아 LED 램프에 밤새 전원을 공급한 라이트핀(Light Pin Project) 프로젝트.(사진제공: ‘Light Pin Project’ 유튜브) 기관 고유의 디지털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 정부 부처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담당하고 있는 환경, 교통, 안전, 해양, 농수산, 외교 등에 관한 고유한 역할은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더 나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혁신하는 정부의 노력은 정책이라는 상품을 통해 제공되며 소통을 통해 설명된다. 디지털 중심의 흐름에 맞춰 정부의 소통 역시 여러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로 제공되는데, 문제는 정책 고객인 국민의 콘텐츠 이용이 공공과 비공공으로 구분되어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의 사용량이 높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공공 콘텐츠는 모든 비공공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소재의 선택, 크리에이티브의 표현 범위, 제작 비용 등 콘텐츠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많은 요소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는 공공 콘텐츠가 시선을 끌기란 쉽지 않다. 공공영역의 경쟁우위는 생명, 환경, 안전과 같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의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기관이 가진 고유한 공공의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공공만이 지닌 콘텐츠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한정된 이벤트의 개념이 아니라 꾸준하게 지속해서 제작해야 한다. 몇 가지 콘텐츠를 소개한다. 레바논 난민 수용 캠프에서는 가족 단위로 텐트 생활을 하는데,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밤에는 등유 램프, 양초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화재 위험도 크고, 어린이들이 등유 램프에서 나오는 가스에 고통을 호소하는 등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아이디어는 태양광 집열판이 있는 빨래집게다. 낮 동안 빨래를 건조하는 도구로 쓰였다가, 전기를 저장해 조명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배터리로 이용한 것이다. 공공의제의 문제와 해결 과정 모두가 감동적인 콘텐츠로 제작된 사례다.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많은 나라가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도 쉽게 졸음운전의 위험성을 소구하고, 휴식을 권유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흔히 볼 수 있다. 기관 보유 매체의 디지털 이용 편의성을 높이도록 개선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도로의 싱크홀, 깨진 가로등과 같이 타인의 주의가 필요한 문제를 지역정부에 알려주도록 만든 지도 기반 웹사이트 픽스마이스트리트(FixMyStreet). (사진 제공: www.fixmystreet 홈페이지) 기관 보유 매체의 디지털 이용 편의성을 높이도록 개선디지털 고객 경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업이 운영하는 자체 플랫폼의 이용 편의성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미 소비자의 디지털 경험에 대한 눈높이가 매우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최근 소비자들은 세계 최고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의 이용 편의성(제품 검색-정보 확인-결제-배송-환불 등)을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자하는 기업은 상품의 가격경쟁력, 물류시스템 등과 더불어소비자의 디지털 이용 편의성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고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내기 어렵다. 디지털 매체 이용의 눈높이가 높아진 국민을 고려할 때, 공공기관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매체의 편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물론 민간기업의 인적, 물적 자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보 제공의 역할을 고려하면 개선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홈페이지다.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통한 정보 찾기의 경험은 민간 수준과 비교할 때 많은 부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유타주의 사례를 보면 첫 페이지부터 검색창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검색 과정의 편의성이 국내 기관의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진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검색된 정보도 사용자 관점에서 유용성을 높였다. 특정 문제에 대해 국민의 신고를 받고, 처리하는 기능을 갖춘 홈페이지(혹은 마이크로페이지)를 기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 신고 내용은 비밀글로 폐쇄되어 있고, 처리 과정도 ‘기관-신고 당사자’만의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소통의 중요 가치인 ‘개방성’, ‘양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꽤 알려진 ‘Fix My Street’이다.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프로젝트로, 도로의 싱크홀, 깨진 가로등과 같이 타인의 주의가 필요한 문제를 지역 정부에 알려주도록 만든 지도 기반 웹사이트다. 신고자가 특정 위치에서 특정 유형의 문제에 대해 사진을 찍어 신고하면 해당 지역 정부로 정보가 제공되고, 이를 처리한 사진을 업로드해 신고자 외 모든 사람이 해당 지역의 문제와 처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시민들에게 위험지역의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위험요소를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지역 정부의 역할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 이미지, 호감 등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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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어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하는’ 메타버스(Metaverse)
“메타버스가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한다고? 새로 개발한 최첨단 버스예요?” - 할아버지가 펼쳐 든 신문을 어깨너머로 얼핏 보고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다. 가상과 현실이 융복합된 디지털 세계 메타버스(Metaverse)란 ‘가상, 추상, 초월’ 등을 뜻하는 'Meta( 메타)’와 ‘공간,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유니버스)’를 합친 말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현실이 실재감 있게 실현되는 3차원 가상 세계를 가리킨다. 이 용어는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내놓은 소설 에 처음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나의 초월적 가상공간에 수많은 사람과 콘텐츠가 모이고 그 안에서 현실세계와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연결성, 존재감, 상호운용성, 동시성 그리고 경제 흐름 측면에서 일반적 인터넷 서비스나 모바일 플랫폼보다 탁월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게임·엔터테인먼트·소셜네트워킹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메타버스 관련 산업은 크게 접속을 위한 매개체인 디바이스, 콘텐츠, 콘텐츠가 구현되고 사회경제적 활동이 발생하는 플랫폼, 기술적 기반이 되는 인프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디바이스와 플랫폼 분야는 대기업이, 콘텐츠 분야는 중소기업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이 2019년 455억 달러에서 앞으로도 크게 성장 확대될 전망이어서 선진국들은 서둘러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모바일에서 가상세계로 이동하는 추세 정부는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 7월에는 한국판 뉴딜 2.0 정책을 발표하면서 핵심 과제로 메타버스 등 초연결 신산업 육성을 새롭게 추가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시대 대응 전략으로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범용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 및 기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메타버스 내에서도 현실세계의 법·제도·사회규범을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제조·서비스업 등 전 산업 분야로 메타버스가 진행되는 만큼 데이터·인공지능 활용 기반 조성을 위한 데이터 구축과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것, 콘텐츠 관련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 발굴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메타버스의 발전과 더불어 몇 가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먼저, 린든 랩(Linden Lab) 사가 2003년 출시한 〈세컨드 라이프〉 게임의 예에서 보듯이 가상세계에서 도박·사기·매춘 등 범죄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측면이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는 합법적 자금과 불법적 자금이 확연히 구분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또한 기존 온라인 게임과 달리 메타버스에서는 일상생활과 구분이 어려워 지나치게 몰입하면 가상세계에 중독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해결 또는 최소화돼서 메타버스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으로 승객들을 태우고 가는 안락하고 편리한 ‘버스’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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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야 놀자
똑똑한데 눈치 없는 친구, AI
“할매요. 네 시에 병원 가야 합니데이. 외출 준비할 동안 트로트 메들리 틀어줄게요.” 경남에 사는 A씨에게 친절한 손주가 생겼다. AI 음성합성, 음성인식으로 통영 사투리를 지원하는 스마트 토이 ‘자루’다. 추석 연휴에 집콕을 선택한 B씨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자기가 좋아할 콘텐츠를 줄줄이 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 C씨는 요즘 새로운 집필 비서를 둘까 고민이다. 자신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만 내고 따분한 글쓰기는 AI에게 맡길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알파고에 놀라며 AI가 ‘터미네이터’처럼 인류를 지배할까 걱정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AI 집사, AI 앵커, AI 운전사 등 생활 곳곳에서 이들을 경험하면서, 잘하면 정말 유능한 동료나 동거인이 될 수 있겠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AI가 도전하는 영역은 점점 늘어나서 최근에는 창의적 예술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챗봇처럼 단순히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비유와 감성과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문학까지 가능하겠어? 이런 회의에도 불구하고 AI를 문학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16년 일본에서 AI가 쓴 단편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고, 2018년 에는 국내에서 초단편소설에 도전하 는 AI 문학상이 신설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 8월에는 AI 비람풍이 소설 감독 김태연과 함께 썼다는 560쪽짜리 장편소설 가 출간되기도 했다. 무용수의 춤 동작을 딥 러닝기술로 익힌 뒤 안무 창작에 활용하고, AI로 작곡을 한 뒤 플로 머신 알고리즘을 통해 곡을 발표하고 홍보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똑똑한 녀석은 꾸준히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흔히 AI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 스트라이크 존 판정을 로봇 심판에서 맡기는 것과 비슷한 일에 적용하기가 쉽다. 하지만 AI 면접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아마존은 남성 지원자가 많았던 데이터에 기반해 여성 지원자를 차별하는 결과를 빚었다. 챗봇 ‘이루다’를 20대 여성으로 설정하고 사용자와의 대화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판단하게 했더니, 특정 사용자집단이 의도적으로 편견을 심어주는 상황도 발생했다. 구글 포토가 몇 년 전 흑인을 고릴라로 분류하더니 최근엔 페이스북 AI가 흑인을 영장류로 소개해 곤욕을 치루었다. AI의 핵심기술인 딥 러닝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료를 통해 학습하는데, 결국 그 속에 담긴 편견까지 배우고 있는 것이다.똑똑한 건 알겠는데, 과연 믿을 만한 친구인가? 이것이 AI를 앞에 두고 우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다. 유튜브에서 평소 보지 않던 주제를 검색했다가 가짜 뉴스나 홍보성 영상으로 알고 리즘이 오염되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일은 우리가 AI에게 쇼핑, 여행, 학습, 운동 등의 코치를 맡겼을 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인간 지능의 핵심이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아닌 감성과 공감 능력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아직 인공지능은 똑똑하지만 눈치 없는 녀석이다. 우리가 어떤 윤리와 감성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진짜 친구로 만들 수도 있고, 더 큰 말썽꾼으로 키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