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칼럼
지정학 리스크 시대, 한국사회가 직면한 도전과 ..
세계는 지금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와 마주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약 30년간 지속되어 온 세계화와 자유무역, 기술 개방의 질서 가 해체되고, 자국 우선주의와 경제안보가 우선시되는 새로운 경제질서로의 변곡점에 서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장기화, 러시아-우 크라이나 전쟁 및 이란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의 파편화는 에너지와 자원, 물류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내며 글로벌 불확실성을 가중 시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드론, 핵심 광물이 결합된 ‘신(新)전쟁 패러다임’의 등장은 안보의 개념을 전통적 군사 영역에서 경 제·산업·기술 전반으로 확장하며 이른바 ‘복합 위기(Polycrisis)’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경제 구조를 지닌 대한민국에 있어 이러한 외부 리스크는 국가 존립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우리는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의 격변, 지역 소멸의 위기, 에너지 전환의 압박, 그리고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다층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 제 단절된 부처별 대응이나 단기적인 처방만으로는 이 거센 파고를 넘을 수 없다. 경제정책이 곧 안보전략이 되고, 복지정책이 성장동 력이 되며, 지역정책이 국가의 생존전략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복합 전환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국가 지식 생태계의 중심인 경 제·인문·사회 분야 국책연구기관들이 ‘통합 지성의 허브’로서 수행해야 할 새로운 책무를 제언하고자 한다.
경제안보 국가전략의 핵심: K-방산과 에너지 전환의 융합
첫째, 경제안보를 단순한 현안 대응이 아닌 국가 최상위 전략의 중심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원전 등 전략 자산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강 점인 제조 역량과 ICT 기술을 결합하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안보 불 안 속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K-방산은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AI와 무인체계가 결합된 첨단 제조업 혁신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 역시 안보적 관점에서 재설계가 시급하다. 특정 국가의 자원 무기화에 대비하 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을 보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전과 수소, 재 생에너지를 아우르는 탄력적인 에너지 믹스를 구축하고, 탄소중립 선언을 넘어 무탄소 에 너지(CFE) 이니셔티브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등 글로벌 규범 형성을 주도함으로써 산 업 경쟁력과 에너지 주권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기본사회로의 전환: 지속 가능한 미래 복지국가 모델의 설계
둘째, 사회 내부의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기본사회’로의 전환과 새로운 복지국가 모델을 정 립해야 한다. 합계출산율 0.72라는 절박한 인구 위기와 비정형 노동의 확산은 기존의 선별 적 복지 체계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이제 소득과 주거, 교육, 돌봄은 물론 디지털 접근권까지 포함한 필수 생활 영역에서 보편적 보장 체계를 강화하여 국민 누구나 최소한의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기본사회는 단순한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경제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안보 전략이 다. 국책연구기관들은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중앙-지방 간의 합리적 역할 분담을 정교하게 설계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지역 단위의 선도적 실험을 통해 사회서 비스 전달체계를 혁신함으로써, 기본사회 정책이 지역 활력 회복과 미래 성장의 마중물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행정통합과 거버넌스 혁신: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
셋째, 광역자치단체 간 행정통합을 통한 지역 거버넌스의 근본적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인 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은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위험 요소다. 이제 단 순히 행정 구역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차원을 넘어, 실제 경제 생활권에 부합하는 메가시티 전략과 광역 발전 전략이 결합된 거버넌스 모델을 도출해야 한다.
행정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갈등과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 터 기반의 정교한 재원 배분 메커니즘과 공공서비스 접근성 보장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은 지역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 전체의 공간 전략과 지역의 특수성을 연 결하는 중립적 설계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신(新)전쟁 패러다임과 복합 안보 전략의 구축
넷째, AI·드론·자원이 무기화되는 신전쟁 양상에 대비한 지능형 보안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과거의 전쟁이 병력과 화력 중심이었다면, 미래의 전장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대결이 될 것이다. 저비용 고효율 무인 체계와 AI 기반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비 대칭 전력 우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사이버 안보와 공급망 정보 분석을 통합적으로 수행하 는 복합 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책임성과 안전성, 그리고 윤리적 규범에 대 한 논의도 병행되어야 한다. 미래 안보 전략은 국방의 영역을 넘어 산업, 외교, 과학기술, 법 제가 융합된 종합 과제로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은 통합 지성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
이제 국책연구기관은 개별 분야의 전문성을 넘어 칸막이를 허무는 ‘통섭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경제안보와 기본사회, 지역 혁신과 AI 안보는 어느 한 기관의 지혜만으로는 풀 수 없 는 얽히고설킨 난제들이기 때문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소관 연구기관들이 단기 현안 대응을 넘어 중장기 국가 설계의 중심축이 되어 주기를 당부드린다.
또한, 글로벌 싱크탱크와의 공동 연구와 전문가 교류를 활성화하여 한국의 시각을 세계에 전파하고 우리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정책 외교’의 전초 기지가 되어야 한다. 지정 학 리스크가 일상이 된 시대, 위기를 해석하고 준비하는 국가만이 도약할 수 있다. 국책연구 기관이 제시하는 통합적 지혜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뒷받침하는 가장 견고한 지 적 인프라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원태국민대학교 (정보보호·AI정책) 특임교수
2026.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