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생각  

싱크탱크의 처음과 끝은 결국 ‘사람’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2023 가을호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대학부터 서울에서 살았는데 여전히 사투리와 사고방식에 ‘대구사람’의 그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본적지인 경북 군위군 대율동 ‘한밤마을’이라 답하곤 했습니다. 선친과 윗대 어른들의 산소가 그곳에 모셔져 있고, 옛날 집도 그대로 있어 가끔 가곤 하지만 막상 살아본 적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아름다운 돌담길’이 멋진 한밤마을은 요즘 예능과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 꽤 유명해졌습니다. 올여름 군위가 대구시로 편입되면서 고향 혼선은 최소한 ‘행정적’으로는 정리되었습니다(이제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밤마을까지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위는 전국에서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하고, 노인인구 비율이 제일 높고, 지역소멸 1, 2위를 다투는 곳인데 대구시 편입과 신공항 유치 등으로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군위가 소재했던 경상북도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누구나 아는 안동의 ‘하회마을’이 아니라 ‘하회과학자마을’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의 퇴직연구자들에게 파격적 지원을 제공하여 이들의 지혜와 자원을 지역과 나누고 지역을 키우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국책연구기관 퇴직연구자들의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저는 “이거다”라며 곧바로 경상북도 담당자들과 협의를 시작토록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제주도에서는 이미 폐교가 된 탐라대학교 시설을 활용해 국책연구기관과 지방연구원, 대학의 현직연구자들이 연구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연구회 역시 연구자들이 알차게 그 기간을 보낼 방법을 찾도록 안팎에서 요구받고 있었기에 현장답사와 도지사 면담 등을 신속하게 진행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에 있어 ‘인재 양성과 활용’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기에 그것을 위한 지역과의 협업, 지역으로부터의 혁신은 ‘신의 한 수’가 될 것 같습니다.

인재 양성을 위한 치열하고 참신한 시도는 국경을 넘어 발견됩니다. ‘싱크탱크의 나라’ 미국의 싱크탱크들도 좋은 인재를 얼마나 갖추느냐에 의해 평판이 좌우됩니다. 그것은 비단 ‘회전문’을 돌아 나와 역량과 경력을 이미 갖춘 연구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카네기재단이나 헤리티지재단 등 워싱턴 싱크탱크들에는 대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연수, 인턴십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습니다. 뛰어난 정책연구자의 꿈을 갖고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인재 양성은 대학만 아니라 싱크탱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럽과 글로벌 사우스 싱크탱크들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되는 OTT(On Think Tanks)의 ‘School for Thinktankers’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국이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신설 태재대학교의 졸업생이 싱크탱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키우겠다는 염재호 총장님의 포부는 ‘대학의 미래’는 물론 ‘싱크탱크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만듭니다. ‘글로벌’과 ‘디지털’이라는 맥락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국책연구기관을 포함한 대한민국 싱크탱크 생태계, “99년 연구회 체제”의 인재 양성의 성과와 과제, 대안에 대해 절실하게 살펴보게 됩니다. 싱크탱크의 처음과 끝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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