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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화합적 사회통합의 연금술사

넬슨 만델라, 화합적 사회통합의 연금술사 대표이미지
  • 발행기관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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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조 교수님

김문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예방부터 관리까지의 각종 조처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는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는 심각한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갈등 공화국’이라고 불리며, 그 폐해를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더구나 사회경제적 양극화나 연대 의식의 와해로 날로 첨예해가는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은 지난날의 경제적 성취나 사회발전 성과까지 부정하는 위험 수위에 이르러, 파국적 갈등을 방기하면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초래될 것으로 전망한다.


갈등의 원천을 이루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체계의 변화에 비례해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으나, 그 근저에는 권력이나 재화와 같은 자원 점유에 관한 이해 각축과 더불어 사회적 존재가치나 정체성 확보와 같은 상징적 쟁투가 뒤얽혀 있다. 따라서 불평등 해소를 취한 사회통합 방안은 분배원리의 개선을 목표로 하는 복지적 접근과 이질적 가치관이나 행태를 인정하자는 포용적 접근으로 대별되곤 한다.  


만델라 해법의 한국적 적실성 

분배론 및 인정론 이외에 오래 전부터 존속해 온 법치주의에 입각한 징벌적 접근도 사회통합 전략에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심화되는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심성적 차원을 포함한 보다 원천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에 의한 화해적 접근(reconciliation approach)이 유력한 사회통합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340여 년에 걸친 남아공화국의 내국적 갈등을 종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넬슨 만델라의 국가통합론이 그 표본에 해당한다.     

 

“과거사를 다루는 정책이 지난 날의 과오를 징벌하려는 목적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피해자들의 권리와 당대의 사회적 요구를 동시적으로 포용하는 담대하고 창의적인 전략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만델라의 신념을 발판으로 고착적 불평등 구도에 억눌려 발설할 수 없던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집합적 의지가 형성되었다. 화합적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국민 대다수의 열망과 맞아떨어져 새로운 공화국 건설을 추동하게 된 것이다.    


오랜 식민통치 체제에서 유래한 혹독한 반민주·반인권·반인격·반인륜적 인종차별과 착취, 그에 대한 거센 반발과 저항, 강력한 국제사회의 관여와 제제, 공멸 회피를 위한 진지한 타협과 조정……. 이러한 고난의 역정에서 배태된 화해와 용서의 정신은 한국 현대사를 장식해 온 어떠한 사건이나 결말보다 극적이자 감동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저한 맥락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먼 나라 남아공화국의 체험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복기할 만하다.


용서와 화해를 통한 사회통합은 통상적 교감을 넘어선 강한 공감대 하에서 지난날의 행적에 대한 자성으로부터 맺힌 마음을 풀어 집단적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종의 고진로(high-road)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혐오나 증오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응어리진 마음의 매듭은 시혜적 이타심을 넘어선 호혜적 행위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쌓여가는 불신, 불만 및 불안과 함께 타자에 대한 혐오, 적의 및 울분이 누적되어 단절의 강폭이 날로 확장되어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델라식 해법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이유이다.



강연중

<사진> '제20차 세종국가리더십포럼'에서 발제하는 김문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선제적 용서와 화해를 통한 치유적 통어력(統御力)            

오늘날 한국인은 통상적 수준의 각축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일종의 전투적 상황을 살아가고 있다. ‘생존경쟁’이 ‘생존투쟁,’ ‘생활현실’이 ‘생활전선’으로 회자되고, ‘경쟁자’가 승패를 결정하는 ‘적’이요, ‘성공’이 ‘승리’, ‘실패’가 ‘패배’라는 용어로 대체되어가는 언어 인플레 현상이 그러한 정황을 시사한다. 삶의 격전장에서는 상처를 입은 부상자가 속출하기 마련인데 상처의 본질은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정신적 상처이다.  


사회통합의 궁극적 관건은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본 발상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알프레트 아들러의 심리학을 접목해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치유법을 제안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논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의 의미를 찾아 미래를 바라보며 삶에 충실하라는 희망을 불어넣고 격려하는 의미치료 요법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화해적 접근의 회복적 정의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한 최적의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상처가 있는 사회는 병든 사회요, 그것이 마음의 상처라면 사회는 건전치 못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한 격려나 위로와 같은 립 서비스가 효험을 발휘하지 못할 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을 경우 심층적 성찰과 각성을 출발점으로 한 심성 재정립(mental reset)이라는 심층적 조처를 필요로 한다. 또 치유로서의 화해적 사회통합은 개인 차원을 넘어선 시민공동체에 부여된 집단적 과업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능동적 참여와 협력을 필요로 하며, 그 이념적 토대에 해당하는 회복적 정의는 처벌위주의 사회통제 양식을 지양해 갈등으로 인한 심적 고통이나 상처의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자유로운 소통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내국적으로는 1987년 체제에서 새로운 체제, 한반도 차원에서는 적대 관계에서 공존 관계, 지구적으로는 정보사회에서 지능정보사회, 문명사적으로는 분화문명에서 융합문명으로 사중적 교차점에 놓여 있다. 이 같은 중첩적 전환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사회는 선제적 용서와 화해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할 수 있는 혜안, 덕성 및 용기를 겸비한 화합적 리더십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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