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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래정책 포커스]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정책과 미국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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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정책 포커스]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정책과 미국의 정체성 대표이미지
  • 발행기관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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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응

서강대학교 교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인종차별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2016년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공화당 후보 자격으로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을 비하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흑인 유권자들을 노골적으로 깍아내리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2020년 9월 미네소타주 유세에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백인 유권자의 ‘좋은 유전자’를 칭송하면서 20세기 초 악명 높았던 우생학의 개념인 ‘경주마 이론(racehorse theory)’까지 언급하여 많은 사람이 경악하였다. 국내정치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차별적인 행보는 잘 알려졌지만, 대외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2017년 7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이 손을 잡고 서구 문명을 지켜야 한다는 발언을 하여 언론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이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에 근거하여 국제정세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인종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음을 시사해 준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보였던 인종주의적인 경향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정치인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층이 여전히 두텁고, 공화당 내 많은 의원이 여전히 트럼프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청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였고 연방 상원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추가하는 데에 성공하긴 하였지만, 연방 하원의원 선거와 주 단위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선전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 여세를 몰아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미국정치의 주도권을 다시 잡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백인 민족주의 정당으로 성격이 변한 공화당에 권력을 준다면 국내정책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에서도 인종주의의 그림자를 확인할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적인 면모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이민정책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발효하여 여러 이슬람권 국가들로부터의 이민을 봉쇄하였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여 중미 지역으로부터의 불법 이민행렬을 막고자 하였다. 이슬람권으로부터의 이민 봉쇄 정책은 연방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송에 걸렸고, 오랜 심의 끝에 연방대법원에서 간신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는 판결을 얻어내어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반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프로젝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8년 하원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장벽 건설비용을 예산안에 포함하기를 거부하여 한동안 행정부가 셧다운(shutdown) 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편법을 사용해 장벽 건설 자금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정부의 일방적인 행보는 결국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때 시행된 불법 이민자 자녀 보호법(DACA,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을 폐기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법은 불법 이민자 부모를 따라 어린 나이에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갱신 가능한 거주허가증을 제공해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원래 부시 행정부 시절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목적의 법안이 논의되다가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그 대안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마련한 법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입국하여 불법 이민자가 된 약 80만 명의 사람들이 이 법의 혜택을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이 원칙적으로 불법 이민자라고 규정하고 보호법을 폐기하여 추방하고자 하였으나 사법부의 견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10년에 한 번 수행되는 인구조사에서 불법 이민자를 제외하는 행정명령을 2019년에 발효하였다. 미국이 건국된 후 지속적으로 수행된 인구조사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 미국 거주자의 수를 세는 것이 관행이었다. 인구조사를 통해 지난 10년 동안 어느 주의 인구가 늘었고, 어느 주의 인구가 줄었는지를 파악하여 각 주에 배정하는 연방하원의원 수가 재조정되기 때문에 인구조사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상당하다. 불법 이민자들을 인구조사에서 제외하여 캘리포니아와 같은 민주당 세력이 강한 주에 배당되는 연방하원의원 수를 줄이려는 시도를 트럼프 행정부가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연방 사법부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격과 백인 민족주의의 위협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일련의 행정명령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행보를 보였다. 이민정책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미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계획은 백지화하였고, 이슬람권 국가로부터의 이민 제한 역시 풀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약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이민자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할 목적의 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하고 있다. 이 법은 2021년 1월 1일 기준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세금납부를 비롯한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게 5년 안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해 주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3년 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통념과는 달리 미국 내 여론은 불법 이민자들을 포용하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전체 노동시장 구성원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는 불법 이민자들은 이미 미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불법 이민자들의 약 60%는 이미 10년 이상 미국에 거주하면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정책은 다양성을 강화하는 포용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에 저항하는 세력이 여전히 정치권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개신교 신자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사회이다. 그런데 최근 인구구성의 변화로 인해 2045년에는 백인의 비율이 50%가 안 될 것이라는 예측은 백인 유권자들에게 심리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은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항하여 미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만약 트럼프식의 백인 민족주의(white nationalism)가 공화당 내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미국정치의 무대를 다시 장식하게 된다면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외 관계에서도 인종주의적 시각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만 해도 미국 내 이민 문제는 주로 멕시코 및 중미에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믿음을 갖는 미국인들이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이민 정서가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향하게 되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결국에는 서구와 비서구 간의 문명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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