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4년의 대한민국과 세계 - 공급망 리스크

재글로벌화 시대 공급망 재편의 중요성

김동수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 2023 겨울호

세계 통상 질서의 흐름은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관세를 장벽으로 한 보호무역주의에서 자유무역주의로 전환되었다. 이 변화로 1995년 WTO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후 자유무역주의의 추세 속에서 중국은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세계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2018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략경쟁의 근본적인 이유는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은 미국의 대중국 첨단산업기술보호 및 견제였다. 이는 최근 반도체를 비롯한 배터리와 바이오의약 등의 주요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가치와 신뢰 중심의 재글로벌화

최근 등장하는 용어 중 공급망에서의 재글로벌화가 있다. 글로벌화는 무엇이고 재글로벌화는 무엇인가? 공급망의 글로벌화란 어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자국 내에서 완결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대신에, 제품의 각 생산 단계별로 노동력, 토지, 물류비용,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생산비용이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의 경우 양극재와 음극재 같은 핵심 소재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배터리 셀 제조는 한국에서 하여 이를 전기차에 탑재한다. 주요 범용 부품은 베트남과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제조하여 한국으로 다시 역수출한다. 이렇게 모여진 부품으로 조립·제조된 전기자동차를 북미 시장에 수출하는 것이다. 산업의 공급망에 있어서 정치적인 불안이나 갈등이 없고 관세의 부담이 적었을 때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으로 인하여 중국을 배제하는 움직임이 서방 선진국에서 확산하면서 가치와 신뢰를 공유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급망이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동맹동맹국이나 우호국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을 일컬어 ‘재글로벌화’라 한다. 한동안 글로벌화의 반대 개념으로 역세계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최근 재글로벌화라는 용어로 재정의되고 있다. 재글로벌화는 경우에 따라 글로벌화 시대보다 더 공급망이 다변화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화 시대에서 반도체 제조의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생산하여 전 세계 시장에 공급하였다. 그러나 재글로벌화 시대에서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으로 생산시설을 다변화하고 있다. 결국 재글로벌화란 가치와 신뢰 기반의 새로운 경제블록화에 적합한 형태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경제안보 전략

재글로벌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경제안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산업이나 무역의 측면에서 손해를 입을 수 있고, 경제력 또는 산업경쟁력을 바탕으로 안보력을 높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안보 이슈가 산업의 공급망 불안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공급망에 있어서 중요한 노드(node)를 차지하는 국가가 수출통제를 통하여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견제할 수 있으며, 중국 정부의 핵심 광물 소재 수출통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안보 측면에서 경제적 통제로 인한 공급망의 교란은 불안과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안정적인 공급망의 확보가 중요한 산업정책 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념이나 정치 또는 안보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처럼 시장경제체제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최대 교역국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다. 1992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대중국 교역규모는 우리나라 전체 교역규모의 약 25%에 이를 만큼 빠르게 성장하였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경쟁은 앞으로 30~40년 동안 굴곡을 보이며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적 대중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재글로벌화로 인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전략적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재글로벌화 시대의 전략적 대응

재글로벌화 시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전환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우선 이미 반도체 산업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만이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첨단산업 분야를 육성하는 일이다. 바퀴 축을 고정하기 위하여 꽂는 린치핀(linchpin)과 같은 산업 분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인력 양성 등을 포함하여 국가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첨단 핵심산업은 우리의 대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관리이다. 지금과 같은 전문화 및 분업화 된 글로벌 교역환경에서 한 나라가 자급자족형 공급망을 가지면서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결국 경제블록별로 맞춤형 공급망 확보 전략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안정시키기 위한 공급망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리스크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주요 산업 분야에서 특정국가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입선 다변화와 최소한의 국내 생산시설 확보 같은 공급망 안정화가 필요하다. 많은 나라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적절하게 선제 대응을 한다면 오히려 어려움이 주요 경쟁자가 배제된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기회요인으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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