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책지식 생태계' 탐구  

융합과 협치를 위한 정책지식 생태계 활성화

임주환(재)희망제작소  소장 2022 봄호

연구회 체제가 만들어지고 20여 년이 경과한 현재 연구회 및 국책연구기관은 박사 2,000여 명, 전체 구성원 6,000여 명, 예산 1조 원 이상 등의 수치에서 확인되듯 한국 사회 최대 싱크탱크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연구회 및 국책연구기관은 각 부처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는 일에 머물러 횡단적이고 복합적인 정책지식을 생산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지금의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는 변화된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국책연구기관들이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등 새로운 의제와 관련한 정책 기초 지식을 충분히 생산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의 비전처럼 융합적 연구가 필요한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룬 연구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치 주체들은 표심을 자극하는 단기적이고 파편적인 정책에만 몰두하는 퇴행을 보이고 있고, 시민사회·기업 등 민간 부문의 활동은 침체돼 있다. 국내의 공공·민간 연구기관들은 저마다 쏟아지는 연구과제들을 쉼 없이 수행하고 있다.

‘물길’이 막혀버린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

한국 사회가 대전환기를 맞았음에도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에서 그에 대응하는 정책지식의 생산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은 그 생태계가 생태계다운 상호작용과 순환을 잃어버렸다는 방증이다.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면, 정책지식의 수요자라고 할 정부 및 국민과의 관계, 정책지식의 대체자라 할 민간·정당·시민사회 싱크탱크와의 관계에서 대결과 공명, 평가와 존중, 자극과 되먹임(피드백)이 실종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책연구기관들은 부처 종속성에 따른 경직성 및 부처별 칸막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직속위원회 등 국정 상위 거버넌스와의 상호작용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부동산 문제, 에너지 전환 등 여러 영역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주제와 관련한 정책지식 생산이 미흡하고, 정부가 정책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는 예각화된 정책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회 내지 국책연구기관이 국가 미래전략 수립과 관련한 비전페이퍼를 생산하더라도 이에 기초한 각 분야별 계획, 시퀀스와 위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국책연구기관들이 국회에서 조사 기능을 지닌 조직인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힘들다. 최근에는 기본소득, 메가시티 같은 의제를 제기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출연연구기관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협력과 인적 교류를 통해 이들의 내실화를 돕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은 정부나 국책연구기관들을 정책의 홍보나 설득을 위한 동원 대상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그림> 국가정책연구 고도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지식 생태계 내 상호작용

국가정책연구에 필요한 혁신과 협치

대전환기에는 변화 요소 내지 위험 요소가 복합적·중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정책개발을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총괄적인 융합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과제의 분업’을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융합 연구는 열린 연구 구조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제대로 된 인센티브와 평가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융합연구에 따른 리스크를 인정하고 가치를 존중할 때 가능해진다. 열린 연구 구조와 네트워크는 실질적 융합연구가 이뤄지기 위한 전제조건인 동시에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책연구기관이 다양한 시각의 연구기관, 단체, 전문가, 당사자 조직 등과 토론 및 협동 연구를 수행하고 국책연구기관 내 인적 구성에서도 마이너리티 혹은 비주류학파에 대한 개방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건물의 격벽이 아닌 세포의 격막처럼 국책연구기관 간 인적 교류가 유연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고 ‘무임소 연구위원’처럼 국책연구기관과 정부부처의 관계를 이완시키는 제도의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부처, 국책연구기관, 각 부처 산하기관 등이 밀집된세종시를 제대로 된 정책지식 클러스터로 진화시켜야 한다. 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정보와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부딪치고 섞여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콘퍼런스, 포럼 등을 조직하고 국민과 민간 연구자들이 함께 교류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서 첫발을 뗄 수 있다. 예산의 극히 일부라도 활용해 잠재성 있는 젊은 연구자, 시민단체 등과의 협동 연구를 수행한다면 국내 정책지식 생태계의 ‘새 피 수혈’에도 효과가 클 것이다. 청와대, 국회 등 국정 상위 거버넌스의 핵심 기구들이 세종으로 이전한다면 세종 정책지식 클러스터의 활성화 가능성도 매우 높아질 것이다.
전문 행정 역량과 민간 역량을 과감하게 믹스하는 협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국민들의 삶과 정책연구가 상설적으로 만나게 할 필요가 있다. 정책연구에서 협치( 거버넌스) 개념을 도입하자는 제안은 공공 영역이 가진 자원을 민간에 적극 개방하고, 현장 국민들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그들이 가진 감각과 섬세한 지식을 반영한 정책 대안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예컨대, 배달앱에 대한 정책을 세우려면 소상공인들을 직접 만나 수수료, 리뷰, 별점 등의 문제를 들어봐야 하고 ‘지방 소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려면 지역을 떠나려는 또는 지역에 남고자 하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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