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문제가 국가 위기로 부상하며 여러 가지 해결책이 논의되는 가운데, 여성고용 확대와 일·생활 균형 제도 확충은 저출생 위기에 대한 중요한 해법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성의 고용 확대가 오히려 저출생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언급되어 혼선을 빚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상반된 견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성고용, 저출생 문제의 원인에서 해법으로
1980년대까지는 OECD 국가들에서 여성고용률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여성고용률과 출산율의 관계는 오히려 정반대로 바뀌었다. 최근 OECD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고용률이 높을수록 출산율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역사적 시점에 따라 두 변수의 관계가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여성 고용 확대가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적되다가 다시 해결책으로 논의되는 이유는 여성 고용과 출산율 사이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복지국가 연구의 대가인 에스핑-앤더슨(Esping-Andersen)은 이러한 경향을 성평등 사회로의 전환 과정으로 설명한다. 초기에는 남성이 주로 일하고 여성이 돌봄을 맡는 모델에서 높은 출산율이 유지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여성의 고용이 점차 보편화되면서도 사회가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출산율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후 성평등이 진전되고 남녀가 동등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출산율은 다시 회복되며 새로운 균형점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이론적 설명은 OECD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여성 고용률과 합계 출산율 간의 관계를 적절히 설명해 준다. 이들 국가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지원하고 남녀 모두를 위한 일·생활 균형 제도를 확충하면서 두 변수 간 관계는 점차 긍정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출산율과 여성고용률 관계 변화: 합계출산율에 대한 여성고용률의 계수 추정치

출처: OECD 산출(Fluchtmann, van Veen & Adema. 2023: 21)
주: 합계출산율(TFR)은 로그 변환한 값임
2030 청년들의 정책 동의도
- 남성부양 여성돌봄 정책 40.2
-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보는정책 87.2
- 남성부양 여성돌봄 정책 43.8
-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보는정책 74.3
일·생활 균형을 꿈꾸는 청년 세대
한국의 청년 세대에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2030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남녀 모두 ‘남성이 부양하고 여성이 돌보는 전통적 역할 분담’ 보다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보는’ 방식을 선호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청년 여성의 약 90%가 이에 동의했으며, 청년 남성도 약 75%가 이에 공감했다. 이는 여성들이 노동시장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편, 남성들 역시 경제적 부담을 혼자 짊어지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자녀 청년들을 대상으로 자녀 계획이 있는지, 자녀를 가진 후 어떻게 일할 계획인지 물어본 결과, 남녀 모두에서 ‘자녀 계획 없음’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특히 여성들의 비율이 더 높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을 원하지 않음’의 비율이 5%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즉 자녀가 없는 2030 청년 여성들 중 돌봄을 전적으로 담당하려는 여성은 매우 적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하며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 응답치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청년 남성들 중 상당수가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원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응답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2030 청년들은 일이나 돌봄이라는 한쪽 역할에만 치우친 삶을 넘어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균형이 가능해진 사회가 된다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자녀 계획 없음’이라고 응답한 청년들의 응답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무자녀 2030 청년들의 생애전망

출처: ‘청년층 생애전망 인식조사’(김은지 외, 2020: 65)
주: ‘앞으로 자녀를 가질 생각이 있으십니까?’와 ‘자녀를 가진 후 다음 중 무엇을 가장 원하십니까?’를 조합하여 구성
고용과 출산 상생의 유일한 해법은 일·생활 균형
남녀 모두가 일하고 돌보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청년 세대가 원하는 생애전망에 맞는 정책적 전환이다. 청년 세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만큼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질 경우 여성의 고용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저출생 문제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OECD 국가들의 경험을 보면 여성 고용이 저출생의 원인에서 해결책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남녀 모두의 일·생활 균형이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더 나아가 저출생으로 인한 급격한 고령화를 마주했을 때 여성고용은 생산인구 확충을 위해서도 필요한 해법의 하나이다. 고용과 출산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남녀 모두의 일·생활 균형이 가능한 사회,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보는 사회로의 전환이다. 현 시점의 한국사회에서 근로시간과 장소의 유연성 제고, 여성의 전생애 고용 유지와 남성의 돌봄시간 가용성 확대, 전업 양육자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등 예산 효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질 높은 돌봄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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