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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구정책 : 양질의 보육환경과 일·가정 양립문화

이승윤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2024 가을호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

  • 2007 1.26
  • 2003 0.72

미국의 합계출산율

  • 2007 2.11
  • 2003 1.62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2007년 2.11명 이후 소폭 하락 중이나 최근까지 1.6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합계출산율 하락 추세에서 미국도 예외는 아니나 미국은 OECD 38개국 중 유일하게 유급출산휴가제도를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이민자, 낙태 이슈와 달리 출산율 하락은 주요 쟁점이 아니며 이에 대한 위기감이 아직까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 장기간 운용해 온 이민제도를 꼽는데 양질의 인력이 전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미국 노동시장에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리와 양질의 보육

미국의 합계출산율 추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15~24세 연령대의 출산율 하락이 합계출산율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나타난다. 청소년기 및 청년 초기의 임신·출산을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반면 30~44세 연령대의 출산율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 및 경제활동 참여 정도가 향상됨에 따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강화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출산과 양육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충분한 금전적·시간적 여유를 갖췄다고 판단할 때 자신의 경력계획에 맞춰 출산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인구정책은 출산보다는 출산 이후 양질의 보육환경을 확보하데 그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 출산을 방지하고 여성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본인이 원할 때 출산할 수 있도록 여성의 출산에 대한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미국 정부 노력의 예로 민간보육안정화(Child Care Stabilization) 프로그램을 통해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보육서비스 제공 대상 아동을 확대했으며, 미국의 대선후보인 해리스는 자녀세액공제(Child Tax Credit) 액수를 현재 1인당 2,000달러에서 6,000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우선 양질의 양육환경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민간기업 주도형 일·가정 양립문화 정착

미국의 기업들은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통해 근로자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근로자가 일·가정 양립, 일·생활 균형을 달성함으로써 업무효율, 몰입도, 성과 향상 등 조직의 목표도 함께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다년간의 실증연구와 사례분석을 통해 입증되었다. 시차출퇴근제도, 재택근무제도 등 업무 내용과 시공간의 유연화를 통해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해 온 것이다. 미국노동통계에 따르면 2023년 미국 기업의 재택근무 활용도는 19.5%에 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일·가정 양립 제도 및 문화는 한국의 정부주도형 제도화 방식과는 달리 기업의 성과 증진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민간기업 주도형으로 발전되어 왔다.

유연한 근로조건과 직무공유 제도

업무 내용과 시공간의 유연화는 미국의 노동시장 특성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의 노동시장은 근로자 개인의 직무와 능력에 맞춰 임금과 고용조건을 개별적으로 협상하는 개별고용 관행이 보편화되어 있다. 또한 직무 및 성과중심 시장임금체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 개인이 담당하는 직무의 난이도 및 중요도, 성과에 비례하여 보상이 지급된다. 근로자는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토대로 임금 및 고용조건(일·가정 양립조건 등)을 협상하게 되는데, 고숙련 전문가일수록 협상력이 강화되고 가사노동은 아웃소싱이 가능해진다. 반면 미숙련 근로자는 협상력이 약하여 일·가정 양립이 어려우므로 국가 차원의 돌봄서비스 지원이 필수적이다. 일· 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하나로 직무공유(Job Sharing) 제도가 있다. 풀타임 정규직 포지션을 두 명이 나눠서 근무하는 형태로 임신과 출산, 육아, 질병, 가족돌봄 등 다양한 상황이 고려되며 근무한 시간에 비례하여 급여가 지급된다. 미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을 아우르는 K-5 교육시스템에서도 활용되며 두 명의 담임이 요일을 분담하여 한 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2023년 기준 약 20%의 미국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고, 유니레버사(社)에서는 두 명에게 각각 60%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인구정책의 시사점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정부주도형 일·가정 양립제도 도입과 확산 노력이 주를 이루었다면 앞으로는 이와 병행하여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이 기업의 성과 증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누적된 경험이 중요하다. 출산과 양육이 순조로울 수 있도록 업무 내용, 시간 및 장소의 유연화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출산 장려정책과 맞물려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은 양질의 보육 여건 조성이다. 출산은 생산가능 노동인구의 확보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봄서비스를 확대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번스타인(Bernstein)의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인구전략의 일환으로 개방적이고 스마트한 이민정책을 통해 우수한 외국인 인력을 국내 노동시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과 시민들의 인식개선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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