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책지식 생태계' 탐구  

국제협력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 : 국가연구체제 발전전략 사례조사를 위한 유럽 싱크탱크 탐방

장익상경제·인문사회연구회 예산부  전문위원 2024 봄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자식이 많은 부모가 가지는 근심과 걱정을 이르는 말이다. 나날이 바뀌는 정책 환경 속에서 여러 현장을 다니다 보면 어디서든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 50년간 출연연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복잡다기한 사회변화 속에서 출연연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늘어나고 있다.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힘들어지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성과 책임성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아울러 대학 및 민간 연구소의 약진으로 인한 출연연의 위상 약화는 출연연내외부적으로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연구현장에서의 긴 호흡과 협력기관 확대의 필요성

지난 1월 정부의 R&D 기조변화와 국제협력 강화 추세에 연구회 체제의 모태가 되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 Max-Planck-Gesellschachaft)와 우리나라 출연연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를 방문한 적이 있다. 두 기관 모두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와 이를 관리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식이 돋보이는 곳이다. 연구회는 이전에도 두 기관 모두와 교류했던 적이 있었으나, 정례화되지 못했던 한계가 있었기에 단절된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것도 이번 방문의 주된 목적 중 하나였다.

방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연구현장에서의 긴 호흡과 관련 기관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경제·인문사회계 출연연의 경우, 연구성과가 정책현장에 반영될 수 있도록 기본 연구과제는 가급적 1년을 넘지 않도록 한다. 일부 중장기로 진행되는 과제도 있으나, 매년 과제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때문에 과제 주기가 짧다. 재원한정으로 매년 출연금 심의 시기에는 예산 규모를 위해 총력전을 펼칠 때가 있다. 이로 인해 잘 기획된 과제도 탈락되거나 보류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수탁과제나 정부의 요청에 따른 연구는 긴급히 주어진 현안을 기한 내에 완결 지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반면 막스플랑크연구회는 하르나크 원칙(HarnackPrinzip)에 의거한 운영이 기반이 되어 다양한 응용연구가 가능하다. 동료평가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검토하고, 다양한 연구자의 리뷰를 통해 완성도를 높인다. 정례적인 리뷰 과정에는 다른 연구단 소속 연구자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연구회 내부에서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으며,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추구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결국 협동연구 간접비 개선과 함께 협력의 방식과 내용을 어느 수준에서 구체화하여 위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법인화된 연구원의 운영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자 간의 자율적인 협력연구체계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협력기관 다변화를 위한 제언

협력연구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선진사례를 살펴보고, 다양한 의견을 거치면 보다 정교한 대안이 나온다. 연구과제별 출장이 잦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네트워크나 전문가의 자문에 의존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실제로 출연연의 예산 현황을 살펴보면 2024년 기준, 출연연 전체 출연금 사업비[기관고유사업+일반사업(ODA 제외)] 1,398억원 중 25억 원 정도가 공동연구 목적으로 쓰인다. 이 중 약 56%가 국제기구 분담금이나 세미나, 공동연구 성격으로 집행되고 있으며, 미국 소재 기관과의 협력은 전체의 24% 수준으로 비중이 가장 높고, 기관별 추진 규모의 편차도 크다. 이는 원하는 기관과 연결하여 서로 관심 있는 주제와 내용을 협의하고 실제 연구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호흡이 필요한데, 해당 과제를 기획하여 연도 내 승인받기에는 출연연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으로 보인다.

협력연구를 위해서는 기관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는 국가관리주의(Dirigismed’État)의 전통이 강하고, 중앙을 통해 내려오는 수직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제한적인 예산환경으로 인해 외부기관과 교류 시 승인절차가 복잡한 편이다. 관련 유관부처를 통해 사전에 협의 후 교류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무척 제한적이기 때문에 연사초청, 기고 요청 등 단계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교류를 확장하는 방안이 권장된다. 논의 주제를 한국 문화와 연계하여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바칼로레아(BAC)에서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지정된 이후 프랑스 내에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 큰 바탕이 되고 있다. 만일 프랑스 내에서 협력기관을 선정하고자 하는 경우, 파리국제대학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파리국제대학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전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세워진 기숙사형 학교인데, 박근혜정부 시절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관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프랑스 내 정부부처나 공인된 연구기관, 대학 등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석·박사급 연구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데, 국가별 생활관을 통해 다양한 연구그룹과 교류할 수 있어 네트워크 다변화 차원에서 그 활용도가 높다.

국제협력연구 지원을 위한 연구회의 노력

연구회는 국제협력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OECD와의 협력으로 정례적인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ILO와의 공동연구 등을 정례화하여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한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와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 출장의 결과로 막스플랑크연구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 추가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고 협력과정에서 헬름홀츠연구회와도 연결되어 4월 중 한국 방문시점을 고려하여 KAIST, 과기계 출연연과 함께 구체적인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일시적인 협력이 아닌 정례화된 형태의 구체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재원 마련 등 필요한 노력들을 내실 있게 추진할 예정이다.

출연연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존의 영역을 공고히 하면서도 새로이 발굴해야 하는 영역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개발도상국 중 처음으로 선진국’이 된 사례로써 단순히 개발경험을 전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주요 전략국의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로도 확장하고 있다. 출연연은 각계각층을 연결하는 매개로써 위상과 역할은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해질 것이기에 이러한 협력과 경험이 출연연의 중요한 자산이 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