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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세·재정을 말하는 정책연구자들
정책의 여러 변수 중 조세와 재정은 국민 삶과 국가 경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도구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높은 분야다. 더욱이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각 나라 운용의 근간이 되는 조세·재정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연구가 정부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국내 유일의 조세·재정 정책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을 만났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입사동기이자 팀장으로서 달라진 무게감을 느끼는 두 연구자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어본다.왼쪽부터 홍 병 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세연구팀장
김 정 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패널팀장
효율적인 조세·재정 로드맵을 그리다
홍병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세연구팀장 (이하 홍병진)
박사과정에서 기업 가치 평가, 자본 조달, M&A 등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며 재무 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변수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학문적 탐구와 정책적 분석을 연결하는 연구에 관심이 커졌고 정책연구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주된 연구는 법인세와 금융 세제를 중심으로 기업과 정부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글로벌 시장 경쟁 심화에 따라 조세 회피, 국가 간 조세 경쟁과 같은 국제조세 분야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거시 경제 및 산업 정책의 중요한 축인 관세 분야도 주목하고 있는데요. 미·중 갈등이나 공급망 재편과 같은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관세 정책이 국가 산업을 보호하고 경제 안보를 지키는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 재무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조세와 관세라는 거시 정책이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정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패널팀장 (이하 김정환)
경제학 박사 과정에서 계량경제학 이론을 연구했을 만큼 데이터와 통계를 엄밀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 항상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성향은 입사 후에도 이어져, 조세·재정 제도와 관련된 정량적 분석을 세밀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력하는 연구 주제는 국민의 소득·자산·소비 등 데이터를 통해 드러나는 불평등도의 동태적 분석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기준중위소득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소득세, 근로장려세제, 기업 관련 금융지원 및 법인세, 고령화에 따른 사회서비스 제도와 저출생 관련 현금성 지원 제도 등의 소주제를 차근차근 연구해 왔습니다. 특히 소득 분포의 극단치에 주목하여 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극단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가 지향하는 연구 주제를 엄밀히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병진
저는 ‘법인세가 기업의 자본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연구원의 대표 발간물인 「재정포럼」에 처음으로 기고한 연구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깊습니다. 당시 국내 기업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계 법인세율이 기업부채 수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정했습니다. 분석 결과 두 변수 간에 양(+)의 상관관계가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기업 부도 위험과 자산시장의 왜곡 가능성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정책연구가 지닌 사회적 파급력을 처음 실감했습니다. 발표 직후 주요 언론과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 등이 연구를 소개하면서 대중과 소통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연구자로서 단순히 정보 제공을 넘어 사회적 논의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고, 동시에 더 엄밀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새기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학문적 성과를 넘어 정책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고민하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김정환
기억에 남는 연구는 선배 박사님과 함께 진행했던 ‘소득세율 변화에 따른 탄력성 추정 과제’입니다. 쉽게 말해, 소득세율이 변하면 납세자들이 얼마나 행동을 바꾸는지를 분석하는 연구였습니다. 세금 증감만 비교한 것이 아니라, 세율이 달라지는 소득 구간에서 과세표준이 크게 달라져 납세자 반응이 더욱 민감해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던 ‘비모수적 추정 모형’이라는 방법을 적용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함께 고생하며 끝까지 완성했을 때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이 연구가 소득세 제도 개편 논의에 기초 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불확실의 시대, 선제적 대응을 위한 조건
홍병진
한편 최근 정책연구의 큰 흐름은 복잡성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분석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차원적인 문제들이 늘어나면서 연구 방식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정교한 계량 분석이 보편화되면서 정책 효과를 더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가 많아지면서 여러 학문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융합 연구’가 핵심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 과제가 회계연도 단위로 계획하고 끝나다 보니, 단기적인 분석과 대응에는 효과적이지만 여러 변수가 얽힌 복잡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김정환
저도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정책연구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단기적인 정책 대응 역량뿐 아니라 장기적인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국은 연구를 위한 훌륭한 데이터가 많으나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과정이 구현되지 않아 많은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한 과제이지만 앞으로는 데이터 활용과 협조 측면에서 더 개방적이고 강력한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별 강점을 결합하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이전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님과 고령화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복지재정 지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동연구를 진행했는데, 각자의 연구를 공유하고 재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더 통합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들 간에 상호 존중과 이해가 뒷받침된다면 이런 공동연구는 더욱 활발해지고, 배우는 것도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홍병진
각 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존중하되, 국가 싱크탱크로써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할 때 더 큰 시너지가 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관 평가나 연구자 업적 평가 시스템에 기관 간 협력 과제의 비중을 높여, 협력이 연구자 개인과 기관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관 간 보이지 않는 칸막이를 허물고, ‘경쟁’에서 ‘협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연구자 인력 교류 프로그램을 활성화한다면 공식적인 공동연구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효과적인 협력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자 한 명 한 명이 기관 사이를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환
정책연구는 국가적 현안에 수시로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관련 정부 부처에서 긴급 대응을 위해 보고서를 요청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다만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연구임에도, 당장의 정책 시사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있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정책연구에는 단기 대응 못지않게 긴 호흡이 필요한 중장기적인 과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 면에서 연구자의 자율성이 좀 더 보장된다면 개인의 성장은 물론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홍병진
정책연구를 하다 보면 이미 발생한 문제의 사후적 대책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현안뿐 아니라 미래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연구도 필요합니다. 10년, 20년 뒤의 대한민국의 장기적 청사진과 전략을 제시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정책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진정성은 통하는 법! 함께 성장하기 위한 노력
홍병진
연구하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다양한 전문가들과 교류할 때입니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고,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을 균형 잡힌 결과물로 발전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정책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과거의 정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의 지식을 계속 의심하고, 새로운 이론과 현상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는 지적 겸손함이 없다면 연구자로서의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노력이 더욱 큰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더 이상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스스럼없이 만나 토론하고 협력하는 ‘융합 연구’ 환경이 제도적으로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해외 유수의 학자나 다른 국가의 정책 실무자들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다른 나라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배우고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하며 새로운 시각을 수혈받을 때, 연구자의 역량과 연구의 질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정환
저 역시 일상생활에서 동료 박사님들과 연구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합니다. 홍병진 박사님과 함께 진행한 연구도 기억에 남습니다. 법인세 부담 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제적인 연구로 국세청의 협조를 통해 법인세 실측치와의 비교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기존 연구에서는 재무자료에서 산출한 추정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법인세 효과인지 측정오차로 인한 오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는데, 본 연구를 통해 기업과 투자자, 정책 설계자 등의 의사결정에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정환
홍병진 박사님은 저와 입사동기인데 통통 튀는 스타일입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올 때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도 무리하게 답을 찾으려는 시도보다는 연구의 한계점에 집중하고 이를 보고서에 잘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진행하는 연구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줘서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가끔 이과 감성으로 엉뚱한 대화를 나눌 때도 즐겁고 친근함을 느낍니다.
홍병진
김정환 박사님과 서로의 연구에 대해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정책연구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는 노력,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깊이 고민하는 모습 등 연구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와 철학이 서로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구에 대한 진정성이 전해졌으며, 깊은 동료 의식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을 위한 ‘굿파트너‘될 것
홍병진
사실 처음 연구원에 왔을 때는 이 길이 제게 어떤 의미가 될지 깊이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수행하며 제 보고서가 공적 논의의 기반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큰 책임감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정책연구자로서 객관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논의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여론에 휩쓸릴 때, 데이터에 기반한 균형 잡힌 분석으로 중심을 잡고, 논의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쓴소리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김정환
저 역시 입사 전에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훌륭한 정책연구자와 기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실제 일을 해보니 정책연구자는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책의 방향을 조언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연구자로서 주제를 잡을 때도 단순히 개인의 성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내용인지 사회적 파장 등을 한 번 더 고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저보고 철 들었다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정책연구자로 일한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김정환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구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창출하는 연구입니다. 이런 연구를 위해 연구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올바른 도덕관과 가치관, 그리고 연구 분야의 전문성, 마지막으로 훌륭한 환경과 동료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올바름을 추구하는 동료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후배 박사님들이 오셨을 때 함께 고민하며 연구할 수 있는 정책연구자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홍병진
연구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제 이름이 실린 보고서는 믿고 볼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동시에, 언제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열린 연구자였으면 합니다. 동료로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저는 뛰어난 개인으로 기억되기보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렇게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홍병진, 김정환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세연구팀장, 재정패널팀장
2025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