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박물관 전국지도
100여 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한계령 동쪽 설악산 남으로 우리나라 열한 번째 국립공원 오대산이 있습니다.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오대산은 바위와 암벽이 별로 없는 부드러운 흙산으로 산봉우리 대부분이 평평하고, 봉우리 사이를 잇는 능선 또한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하여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역사와 문화를 품은 자연, 오대산
희귀한 우리 꽃과 나무들로 그득한 국립한국자생식물원, 한강의 발원지로 꼽힌 우통수(于筒水), 천년의 숲으로 불리는 월정사 전나무숲, 오대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아름드리 숲을 따라 걷는 선재길은 오대산의 풍부한 자연 식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보기입니다. 오대산은 이 나라 불교 유산의 한 절정을 품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가장 오래된 동종(銅鐘)과 세조와 얽힌 유래를 간직한 상원사, 적멸보궁과 함께 월정사는 고려시대 걸작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을 비롯해 직접 붓으로 쓴 가장 오래된 한글이 들어있는 등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며 300여 년간 오대산사고의 수호 사찰 역할까지 맡았던 유서 깊은 곳으로 지금은 명상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깊은 산속에 품은 조선왕조의 역사, 오대산사고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몇 해 후에 이곳 오대산 산중에 늠름한 2층짜리 건물 두 채가 들어섭니다. 국가의 역사 기록물인 실록과 왕실 행사를 기록한 의궤 그밖에 중요한 서책을 보관하는 사각(史閣)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寶閣) 입니다. 이를 함께 일러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라고 합니다. 조선은 중요한 기록물을 하나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안전을 위해 여러 부를 만들어 전국 곳곳에 나누어 보관하였습니다. 큰 도시 충주, 성주, 전주에 있던 사고를 임진왜란의 피해를 겪은 후에 깊은 산속을 찾아 다시 세웠습니다. 그중 강원도에는 사명대사가 오래 머무셨던 월정사를 수호사찰로 하여 평창 오대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400년을 이어오던 오대산사고는 안타깝게도 6.25 전란 중에 월정사와 함께 불에 타버렸습니다. 다행히 옛 기록과 흑백사진을 통해 1990년대에 원형을 찾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01, 02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상설 전시실 03 어린이 박물관 04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영상실
100여 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도 가장 귀히 여겨 깊은 산속에 나누어 감춰두었던 역사기록물 . 조선 후기 외사고(外史庫)는 오대산 말고도 세 곳이 더 있었습니다. 강화 정족산, 무주 적상산, 봉화 태백산입니다. 각각의 사고에는 저마다 깊은 연원이 있고, 무수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그중 오대산사고본은 다른 곳과 또 다른 독특한 특징과 기구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임진왜란 후 하나 남은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실록을 다시 인쇄할 때 붉은색으로 바로잡은 교정쇄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유일하게 - 그러나 본의 아니게 - 바다 건너 다녀온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불에 타고 1932년 27책이 돌아왔습니다. 광복 후까지 남아 있던 나머지 48책과 의궤 82책은 지역과 불교계, 정부의 노력으로 10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 다시 오대산
오대산 오르는 길에 연한 회색 화강암으로 벽돌을 쌓은 모양의 잘생긴 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2025년 5월, 환지본처(還至本處,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다)의 염원을 담아 전관을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입니다.
어느 때고 좋습니다. 한번 들러보십시오. 사방 울창한 깊디깊은 숲속에 자리한 오대산사고가 오늘도 묵묵히 우리 조상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깊은 지혜를 보여줄 것입니다. 제 자리로 돌아온 이 나라 기록문화의 정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들려주는 그 길고 안타까운 여정에 배어있는 진한 감동과 경이로움을 선사해드립니다. 겨울이 일찍 오고 봄은 늦게 와 다른 곳에서 봄꽃 구경할 때 봄눈 구경할 수 있는 매력,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오대산으로 오지 않으시렵니까.
김대현국립고궁박물관 행정사무관
2025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