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생각  

‘설명’으로서의 책임과 ‘응답’으로서의 책임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2022 가을호

올해 한글날 다음날은 대체공휴일이었습니다. 쌓인 자료도 정리하고 국정감사도 준비할 겸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일을 하다가 잠시 틈을 내어 김기협의 『오랑캐의 역사 :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 읽기도 마무리했습니다. 미·중 패권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앞둔 시점에 “도대체 중국과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꽤 어렵고 큰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시작한 독서였습니다(러쉬 도시가 쓴 『롱 게임 : 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과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책은 반대로 ‘중심’으로부터 중국을 이해하려한다는 점에서 또 다르게 흥미롭습니다).

오후 내내 비와 햇살이 번갈아 쏟아지길 반복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를 기다려 자전거를 타고 연구회 앞 다리를 건너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왼편으로 2027년 이전 예정의 국회 세종부지가 꽤나 넓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참을 달려 국무조정실 앞에 도착했고, 조금 더 갔더니 기획재정부가 나타났습니다. 비 때문에 자전거 귀가를 포기하고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국무조정실이나 기획재정부보다 국회가 훨씬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국회와 국책연구기관은 국정감사나 예·결산 때 국회 정무위원회 피감기관 정도로 다뤄지는 게 현실인데 앞으로는 거리만큼 관계도 가까워지길 예상하고, 또 기대해봤습니다.

국무조정실이나 기획재정부, 그리고 한창 국책연구기관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감사원과의 관계도 생각해봤습니다. 이들도 질문을 하고, 설명과 답변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주로 ‘영수증’으로 상징되는 회계적 차원의 ‘설명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설명 책임(accountability)’이란 기록에 의해 제3자에게, 또는 법령에서 지정한 기관에게 업무 또는 행정 수행의 전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기록학 용어 사전』)으로 정의됩니다).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책임’도 있습니다. 역사적·사회적 차원의 질문과 요구에 ‘응답’해야 할 책임입니다(일본의 전쟁책임을 다룬 가토 노리히로의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 전후 일본의 해부』를 대학원 시절 읽으며 ‘응답으로서의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한 제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국책연구기관과 연구회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할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답해야 합니다. 예컨대 ‘글로벌 복합위기의 장기화’에 대응한 ‘선제적 안전판 구축’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와 의지 표명은 무거운 질문과 요구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은 이에 답해야 합니다. ‘99년 연구회 체제’가 IMF 금융위기에 대한 예측과 대응을 제대로 못한 데서 시작되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복합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최고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선제적으로 제안해보았습니다. 그간 충분히 접할 수 없었던 아세안 싱크탱크의 역할과 역량, 향후 협력방안에 대해 박번순 연구위원 인터뷰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광재 국회사무총장은 세계를 움직이는 ‘생각의 힘’과 국가 싱크탱크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강조했습니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던진 “인공지능 시대 휴머니즘”이라는 화두는 질문과 응답의 수준을 더 높일 것에 대한 주문이었습니다. 이번 호가 국책연구기관이 ‘응답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영수증 노릇을 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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