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글로벌 복합위기와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 특별좌담

한국형 경제안보, 협력 위해 머리를 맞대다

  2022 가을호
진행, 패널
진행 패널
문명재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NRC 국가전략연구위원회 위원장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박기순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교수,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갈등구도의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맞 물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하면서 경제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형국이다.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되고 기술이 안보화 되는 시대를 맞아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면밀하게 대응하고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주도적인 흐름을 이끌기 위한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자국 보호주의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안보의 리스크 요인을 짚고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특별 좌담을 마련했다.

왼쪽부터 문명재 박기순 연원호 김상배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의 필요성 대두

“과소 안보도 문제지만 과잉 안보도 문제역사적 맥락 바탕으로 대응전략 모색해야”
김상배 교수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관계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
박기순 교수

“공급망 재편 우려 확산 속 경제안보 전략 중요성 대두”
연원호 팀장

문명재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하 문명재)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미·중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요인으로 경제 불안이 가속화되고 자국 이기주의가 심화되면서 경제안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 경제 질서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하 김상배)

최근 한 경제학자가 이런 얘길 했다. 경제와 안보가 만난 것이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이라 이 상황을 벗어나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사실 지난 30~40년이 예외적 상황이었고 역사적으로 경제와 안보는 따로 간 적이 없다. 소위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 시기에는 국제사회에서 경쟁과 협력이 잘 이뤄져 왔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안보가 매우 소극적으로 다뤄진 측면이 있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재 안보가 과도하게 부각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국정 운영 측면에서 과소 안보도 문제지만 과잉 안보도 문제가 된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과잉 안보의 측면이 있는데 그런 맥락을 이해하고 우리의 대응전략을 모색해보자는 뜻에서 한국형 경제안보를 논하게 된 것 같다.

박기순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교수(이하 박기순)

학계에선 경제안보 개념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와 안보는 분리되어 다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미·중 갈등으로 인해 경제안보 개념이 우리에게 확 다가오게 됐다. 또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소재·부품을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파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들 국가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 와중에 일본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종으로 무역 갈등을 빚었고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형 경제안보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이하 연원호)

부국강병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찌 보면 경제안보는 전통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경제와 안보를 각각의 관점으로 바라봤고 미-소 냉전 이후 세계화되면서 경제 논리에 초점을 맞춰 발전하는 과정에서 안보가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미·중 갈등, 자연재해, 전쟁 등의 상황이 공급망에 대한 우려를 키우면서 첨단 기술 산업을 비롯해 우리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계획이나 전략에 관심을 갖게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세계 각국이 처한 위치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 주목해 한국형 경제안보가 논의되고 있다고 본다.

경제안보 중심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여러 이슈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는 양상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해야”
김상배 교수

“제조안보가 곧 경제안보 제조업 경쟁력이 경제안보의 지표”
박기순 교수

“국가의 미래 생존, 첨단기술 산업이 좌우할 것”
연원호 팀장

문명재

문명재

경제안보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최근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 것으로 봐야 할 텐데 기존의 경제안보와 최근에 강조되는 경제안보의 초점과 범위는 어떻게 다르다고 보나. 특히 지정학적인 요소와 경제안보는 어떻게 연계되어 있다고 봐야 하나.

김상배

김상배

과거에는 매우 간단한 시스템 위에서 이뤄지는 국제 정치와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경제와 안보를 논했다면 현재는 매우 복잡하고 초연결화된 시스템과 환경 속에서 경제와 안보를 논한다는 차이가 있다. 경제안보를 말할 때 경제의 개념이 모든 경제활동을 포괄하는 건 아니다. 신흥 안보 이슈를 살펴보면 미시적인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도체나 배터리 등 생각지 못한 품목에서 문제가 불거지다 보니 앞으로 ‘무엇이’ 터질 것이냐가 아니라 안보 위협의 요소들이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박기순

박기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제안보는 제조안보를 일컫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현재 제조업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 데에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다. 중국은 현재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제조업이 강해야 하므로 중국은 제조업 비중을 일정 정도 가져가려 한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의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는 등 중국으로선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의 경우도 산업공동화를 우려하는 상황이고 제조업 비중이 GDP(국내총생산)의 10%대에 그친다. 결국 제조업 경쟁력이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정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자 경제안보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연원호

연원호

경제안보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의 생존은 현재와 미래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는 에너지·식량·자원 등의 공급망 이슈와 연관이 있고 미래는 첨단기술 전략산업과 관련이 있다. 경제안보 문제의 근원에는 기술 산업이 있다고 본다. 미-소 냉전기에는 핵무기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등 군사용 기술이 개발되고 민간으로 전용되는 측면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AI,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의 기술처럼 민간에서 빠르게 개발되고 군용으로 전용되는 흐름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국가들이 민간기업에 대한 규제 혹은 수출 통제를 가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이 공급망과 관련하여 우려하는 제품도 보면 배터리, 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중요한 품목들이라는 점에서 첨단기술 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합적 경제안보 위기와 전략적 우선순위

“범정부 차원의 대응과 거버넌스 체계 마련이 과제”
김상배 교수

“기술안보 관점에서 산업기술의 육성과 보호에 힘써야”
박기순 교수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해야”
연원호 팀장

문명재

새롭게 부각된 경제안보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가 특히 관심을 두어야 할 산업 분야는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나. 전략적 우선순위가 있다면 그 점도 함께 말씀해달라.

김상배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러시아가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안보 관점에서 보면 그저 전쟁 이슈에 그치겠지만 만약 핵무기 사용으로 주변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크라이나가 세계적인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식량 이슈로 확대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이슈가 에너지, 식량 등 다른 이슈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위협으로 다가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도 범부처 차원의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기순

경제안보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분야는 과학기술이다. 앞서 언급한 제조안보는 곧 기술안보를 의미한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의 기술 유출 문제가 빈번해지는 만큼 기술자산의 축적은 물론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에 힘써야 한다. 그동안 공급망을 둘러싼 문제들이 지나치게 단기적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는 기술 산업에 대한 논의를 더 많이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사실 우리가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다기보다 기업들이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잘 뒷받침해주기만 하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본다.

연원호

공급망 이슈들은 확실히 현재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잘 보여준다. 지금으로선 당장 취약 지점을 파악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중점을 두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경제안보와 관련해서는 이전 정부 때부터 초당적으로 잘 대처해오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 분야 75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고, 지난 8월에는 경제제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 지원을 위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정부가 잘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보다 효율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범부처 차원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와 우리의 대응전략

“국제협력 이끌어내는 중견국 리더십 필요”
김상배 교수

“기술 격차 유지하며 시장을 지키는 기회로 삼아야”
박기순 교수

“미·중 상황 예의주시하며중국 리스크 적극 관리해야”
연원호 팀장

문명재

우리나라 입장에서 경제안보와 관련된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중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할 장애요인은 무엇이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보나.

김상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 아닐까.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게 큰 문제다. 아무래도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그런 사례가 아닌가 싶다. 최대한 위기 상황을 예측해 조기에 위협을 차단하고 다양한 국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다. 강대국 간의 관계를 조율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국가들과 적극적인 연대에 나서는 중견국 리더십도 필요하다.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새롭게 펼쳐지는 경제안보 환경에서는 국가들 간의 네트워크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어떻게 포지셔닝하느냐가 관건이다.

박기순

최상의 시나리오는 기술과 시장을 다 잡는 것,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 둘을 다 잃는 것이다. 결국 기술을 지키는 것이 시장을 지키는 길이다. 그동안 한국이 대중국 관계에서 강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기술적 격차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보면 우리와 기술 동맹을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본질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미국과 기술 동맹을 잘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역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면서 상대국의 움직임에 미리 대처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향후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우리는 첨단기술 육성과 보호에 집중함으로써 기술 격차를 벌리고 시장을 지키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연원호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리가 국가 경쟁력을 잃고 기술확보도 못한 채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이다. 앞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기조로 보면 더 빠르게 결판을 내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양국이 더욱 첨예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우리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미·중 관계는 향후 10년간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조치가 연달아 나올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경우 상하이 락다운(봉쇄)과 같은 방역 정책을 비롯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우리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 리스크를 적극 관리할 필요가 있다.

경제안보 시대에 요구되는 국책연구기관의 과제

“메타적 관점에서 위기상황 직시하는 국책연구기관 역할 중요”
김상배 교수

“범기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장기 미래전략 수립해야”
박기순 교수

“실제 입법과 정책에 반영되도록 활발한 융합연구 추진돼야”
연원호 팀장

문명재

경제안보와 관련된 문제를 관리·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책연구기관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다. 그동안 정책연구에 관여한 경험을 토대로 향후 국책연구기관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상배

각 연구기관마다 해당 분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제안보 이슈를 연구해주었으면 한다. 이슈별로 위기의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그에 적합한 거버넌스에 대해 적극 연구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 터지고 나면 이를 어떻게 원상태로 복원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특히 신흥 안보 이슈는 각 이슈들이 연계되면서 위기를 증폭시켜 가는 양상을 보이는 만큼 이를 포괄적인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같은 메타 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박기순

기술안보가 중요하다고 일관되게 말씀드리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과학기술 분야와 경제산업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이 좀 더 늘어나고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안보 시대에는 기관별 연구에 치중할 게 아니라 범기관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 한국의 장기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대만의 1인당 GDP가 거의 20년 만에 한국을 추월한다는 전망이 나오지 않았나. 이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친기업·친기술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인재 육성이나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외자 유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점이 많다.

연원호

국책연구기관의 역할은 정부에 정책을 컨설팅해주는 것이다. 정부가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제공해주는 것이 핵심 역할이 아닌가 싶다. 경제안보 측면에서 보자면 많은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는 만큼 보다 많은 연구기관이 함께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연구기관들과 경제안보 관련 전략보고서 작업에 참여했는데 의미 있는 첫발을 뗐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후속 작업들이 활발히 이어지길 기대한다.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결과가 보고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입법과 정책에 반영되는 방향으로 적극 활용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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