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글로벌 복합위기와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 과학기술

국가필수전략기술을 뒷받침할 통합적 정책 지원

송치웅과학기술정책연구원  아태첨단기술전략연구센터장 2022 가을호

글로벌 기술패권을 주도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게 그리고 더욱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7월,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of 2022)」을 최종 승인하고 공표한 데 이어 8월에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입법 활동을 통해 미국은 유일한 글로벌 패권국가, 즉 G1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은 평화로운 세계를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무역기구(WTO)를 기반으로 무역자유화를 통한 글로벌 경제발전을 추구하였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공동 대응을 위한 파리협정에 서명하였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호 의존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 및 발전시켜 왔다고 보아야 한다. 요약하자면, 자유무역과 보편적 다자주의와 상호 호혜주의로 공동번영을 누릴 수 있을 듯했다.

신흥기술 개발을 향한 국가적 지원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여한 가운데 미국의 반도체 및 전기차 지원법 대응 관련 업계 간담회가 열렸다

2015년 중국 정부의 ‘중국제조 2025’가 발표된다. ‘중국의 제조업은 크지만 강하지 못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중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첨단 제조기술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대적인 R&D 투자를 단행하게 된다. 또한 ‘반도체 굴기’를 제시하고,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게 된다. 즉,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제조국가 그리고 기술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었다.
2018년, 미국이 중국에 대해 무역 제재를 단행할 당시만 하더라도 양국 간의 갈등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곧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은 무역이 아니라 기술(Technology)이 그 핵심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고, 그 핵심은 반도체 그리고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첨단 기술이 었다. 2021년 미국 상원은 이른바 「미국혁신 경쟁법(USICA)」을 통과시키고 반도체 제조와 신흥기술(Emerging Technology) 개발의 지원을 통해 미국의 기술패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게 된다. 이후 미국 하원은 2022년 초 「미국 경쟁법(ACA) 2022」을 제출하여 반도체 제조기업뿐만 아니라 소재 및 장비 산업까지 지원의 범위를 확대하였고, 대만(Taiwan)과의 외교관계 및 대만의 평화/안정에 관한 하위법안을 포함하여 명시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게 된다.

자료: 트렌드포스

편향된 기술경쟁력, 아직은 먼 갈 길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설계 및 공정에서 기술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시스템 반도체와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는 선진국 대비 기술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차량용 반도체 설계는 최고선진국 대비 59%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인공지능 반도체 소프트웨어 및 설계는 최고선진국 대비 56% 수준의 기술력에 그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반도체 소재, 부품 및 장비 분야의 기술력 역시 최고선진국 대비 60%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설계 및 공정과 비교했을 때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와 같은 측면은 반도체 시장 현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펩리스(설계) 시장을 보면 퀄컴과 엔비디아 그리고 브로드컴 등의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 기업의 점유율이 약 65% 그리고 대만 기업의 점유율이 약 17%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또한 파운드리(제조) 시장은 대만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20년도 자료에 따르면, 대만의 TSMC가 5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UMIC와의 점유율을 합하면 대만의 점유율이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갈 길은 아직 멀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총 성능은 일본 및 미국 대비 각각 3.6%와 3.0%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슈퍼컴퓨터 보유 대수 역시 일본 및 중국 대비 각각 10.3%와 1.33% 수준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허등록 건수, 빅데이터 규모 및 인력 측면에서도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

국가전략기술 지정을 뒷받침할 정책 방안 강구해야

정부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패권경쟁 양상을 모니터링하면서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법 제정 및 정책 지원을 강구해 왔다. 2021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및 백신 분야 총 65개 항목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세액공제 제공을 추진해왔다. 또한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는 경제적 가치, 기술적 중요성, 성장 잠재력 및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12개 분야 총 73개(2022년, 75개) 항목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였다. 같은 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국가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전략’을 의결하고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을 선정한 바 있다.
다만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상과 같은 부처별 법 제정 및 정책이 종합적인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시행될 필요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즉 범부처 차원의 통합법안 및 종합정책의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술 선진국과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기술경쟁력은 아직까지 세계 최고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첨단기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쉽지 않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공동연구 펀딩 조성 그리고 EU의 ‘Horizon Europe’ 참여를 통한 전략적 기술제휴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