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글로벌 복합위기와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 산업

산업 경제안보를 견인할 반도체 제조 역량

이준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본부장 2022 가을호

지난 8월 9일(현지 시각),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확보 및 중국 굴기 견제를 목표로 국가적 역량을 총집약하기 위한 초강력 법안으로 평가되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of 2022)」에 서명하였다. 동법을 통해 미국은 첨단 기술·산업의 안보화를 위한 내부 전열을 가다듬고 중국과의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산업정책의 무한 경쟁 시대이다. 미래 제조업의 경쟁우위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역량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 확보를 위해 전통적으로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에 회의적이던 미국, EU 등까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그간 국제분업의 효율성을 토대로 형성된 현재의 글로벌 산업 지형은 이제 큰 틀의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 우리 미래 전략산업과 공급망이 있다.

복잡한 고차방정식인 산업 경제안보

자료: 이준 외(2021), 원자료는 SIA(2021)

첨단 전략산업, 특히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지극히 노골적이면서도 일관적이다. 그리고 이 행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위상 때문이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는 첨단(초미세) 반도체 제조 부문의 월등한 경쟁력을 토대로 글로벌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전략적으로 불가결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압도적인 공급 역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러한 제조 역량을 토대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핵심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현재 7나노미터(nm) 이하의 초미세 반도체 제조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로서 각국이 첨단 반도체 생산 기반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다. 그래서 미국은 우리에게 보다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화웨이, SMIC 등에 대한 제재부터 본격화된 주요 전략산업에 대한 미국의 중국 견제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동맹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첨단 전략산업에 대한 공급망 재편은 단·중기적으로 우리에게 기회이다.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전략산업의 핵심적 포지션을 확보한 상황에서 우리는 시스템 반도체 부문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으며, 대규모 수요가 예상되는 북미 배터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또한 첨단 기술·산업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우리와 중국 간 초격차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데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치밀한 방법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보복이다.

지난 8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산업 육성법에 서명하고, 366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과 높은 수준의 산업 분업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우리 산업·무역 구조를 고려할 때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는 최근의 흐름은 우리 산업에 큰 영향을 주는 중대 요인이다. 특히, 특정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공급망 리스크 취약 품목이 상당 부분 중국발 중간재이며, 이들 품목이 단기간에 대체하거나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비금속광물, 정밀화학, 비철금속 등이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예기치 못한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는 실재(實在)하는 위협 요인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우리 산업 공급망의 경제안보는 고차원의 방정식이다. 즉,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like-minded countries)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현재 가지고 있는 전략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하는 한편, 동시에 우리 산업 공급망 전반에 잠복되어 있는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료 : 이준(2022),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대외여건 변화와 대응방안’을 토대로 재정리

가치를 높이는 고도의 산업 전략 필요

미·중 기술패권 경쟁, 디지털·그린 전환 등은 장기간 지속될 이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 질서가 형성될 것이다. 상당 기간 진행될 글로벌 산업 지형 재편 과정에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경제안보적 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 산업 전략이 이제는 필요하다. 전략의 목표는 명확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외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산업을 운용하는 역량을 확보하고 동시에 미래 전략산업을 확보하기 위한 경로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에 있는 산업과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 코로나19 팬데믹, 요소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산업 공급망의 경제안보 이슈에 대해 충분히 경험했고 이 과정을 겪으면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확보했다. 그동안 축적한 대응 경험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다가올 산업의 무한 경쟁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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