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글로벌 복합위기와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 - 식량

곡물 수입국의 저소득층 식품 접근성

국승용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2 가을호

유럽에는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이라는 농업과 관련된 국가 간 협약이 운영되고 있는데 그 연원은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역이 황폐해졌고, 식량은 부족했기에, 유럽 지역 어느 곳에서도 곡물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어려웠다. 극도로 심각했던 식량 부족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공동농업정책의 초기 높은 농산물 가격을 보장해 식량 증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경험했던 사회의 체계에는 식량 안보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나라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식량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다. 식량 자급을 일정 수준 달성한 선진국들은 모든 사람에게 풍부하고 균형 잡힌 영양을 공급하고, 저개발국이나 저소득층이 식품이나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식량 안보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UN에서 지향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빈곤과 기아 퇴치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식량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가격하락으로 위기를 맞은 국산 ‘쌀’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6% 수준이고, 사료 등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곡물의 대외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상이 최근 벌어진 일은 아니다. 2011년 식량자급률이 50% 밑으로 떨어졌고, 그 이후 50%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최근 3∼4%p 추가로 떨어졌다. 사료 등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03년 30% 밑으로 떨어진 후 이젠 20% 선이 위협을 받고는 있지만, 과거의 추세가 유지되는 것이지 급격하게 떨어진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국제 곡물 수송에 차질이 발생해 곡물값이 오르고, 러시아가 곡창지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또다시 곡물값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대외적인 영향에 의해 식량자급률이 낮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림>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식량자급률 추이

국내의 식량 작물 생산은 최근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쌀은 2021년산 재고가 많고 2022년산도 풍작이 예상되어 심각한 가격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 곡물은 수입 가격이 상승하여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곡물은 차질 없이 수입되고 있다. 지금이 식량 위기인지 아닌지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제곡물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2021년 초부터 ‘주의’ 단계로 위기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외국에서 곡물을 안정적으로 반입하기 곤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위기 단계는 ‘경계’로 상향될 것이고, 그 정도가 심각해져 식량 수급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면 위기 단계는 ‘심각’으로 격상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1% 이하

국제 곡물은 남반구, 북반구에서 각각 겨울·봄 작기에 생산된다. 국지적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다른 지역, 다른 작기의 생산이 원활하다면 그 영향은 관리될 수 있다. 다만,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어 전 지구적인 곡물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곡물 부족에 대응해서 쌀은 3개월분 소비량인 90만 톤을 비축하고, 국제 곡물도 약 3개월분을 국내에 비축하는 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일시적인 공급 차질에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는 있을 것이나, 생산 차질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현재의 곡물 비축정책으로는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것이 원활치 못할 때 국내 농지에서 우리 모든 국민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곡물을 사료로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쌀은 현재 소비량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다소 생산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위기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밀은 현재 식용 소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 작물 중 하나이다. 그런데 밀은 쌀을 수확한 논에 겨울철 이모작이 가능하며, 종자만 충분하다면 국내 생산으로도 소비의 상당 부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밀 자급률이 낮은 것은 우리가 생산을 못 해서가 아니라 생산비용이 높아서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워서인 것이다. 농산물의 생산 기반인 우량 농지를 적정 수준 유지할 수 있다면 기후위기 등의 심각한 재난 상황에서도 상당한 정도로 식량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

저소득층의 식품 접근성을 보장해야

현재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식량 안보의 현안은 저소득층의 식품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해서 식품 물가가 오르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나, 약 80% 곡물곡물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에서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많지 않다. 해외 곡물 시장에 직접 참여하여 가격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해외 농업 개발을 통해 농업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부분 단기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 수단이다. 또한 생산비 상승 상황에서 기업이 식품 판매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식품 물가만 별도로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소득 수준에 따라 식품 물가상승이 야기하는 가계의 압박 수준이 상이하다는 것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품 가격 상승에 의한 고통이 과중할 수밖에 없다. 평상시에도 소득 하위 계층은 식품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섭취하는 비중이 낮은 현실인데, 식품 가격이 상승하면 식품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하게 저하될 수 있다. 정부의 서로 다른 부처에서 다양한 식품 접근성 제고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그 전반을 조정하거나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정부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상승하는 식품 가격 전반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소득층의 식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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