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생각  

워싱턴 DC, MP3, 페루, Zoom, 그리고 ‘싱크탱크 국제협력’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서울대학교 사회학 박사, 『세계를 이끄는 생각: 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저자 2022 겨울호

2006년부터 2년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시거센터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끝내자마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 하고 갔기에 ‘준비부족’ 상태였고 당연히 영어도 서툴렀습니다. 시거센터에서 조금만 걸으면 미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들이 모여 있는 L 거리(L street)가 있었습니다. 미국식 주소 읽기에도 서툴러 브루킹스 연구소라고 찾아간 곳은 전혀 엉뚱한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각종 세미나와 행사를 찾아다니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미국 싱크탱크에 관한 책을 쓸 결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주고받았던 명함과 기관 공식 이메일 주소만 믿고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미국 싱크탱크에 관한 책을 쓰려는 시거센터 방문연구원”이라는 자기소개에 대부분 흔쾌히 자신의 시간과 식견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안 『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아이디어를 키워라”—미국 싱크탱크의 전략』이라는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할 때는 MP3 녹음기와 디지털카메라가 필요했습니다. 어색했지만 혼자 해야 했기에 인터뷰 도중 말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찍기도 했습니다. 책을 낸 후 미국 싱크탱크의 ‘아시아 연구’에 관해 추가 작업을 했고 귀국 후 주간지에 연재하였습니다. ‘아시아 차르’라고 불리며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을 맡은 커트 캠벨 박사(당시 미국안보센터 공동대표)도 인터뷰를 했는데 멋진 포즈로 사진에 찍힌 이례적인 경우였습니다(<시사IN> 47호 “동아시아 연구 경향 5대 흐름”). 여러가지로 무모했지만, 미국 싱크탱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고, 또 알리고 싶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에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 소속이기도 했지만 ‘싱크탱크의 국제협력’까지는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30대 중반의 패기 넘치던 연구자는 어느새 흰머리가 쉽게 눈에 띄는 50대 중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지구 반대편 페루에 있는 엘리케 맨디자발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시차가 반영되는 웹 캘린더로 일정을 잡았고 아침과 저녁, 한국과 페루라는 시·공간 거리는 더 이상 제약이 아니었습니다. MP3와 디지털카메라 대신 줌(zoom)과 스마트폰이 필요했습니다. 인터뷰는 자동으로 녹화되었고,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인터뷰 중간에 핸드폰으로 화면을 찍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영어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길거리를 헤맬 일 없이 링크 클릭으로 충분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싱크탱크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한국 싱크탱크, 특히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소개하고 협력을 제안했습니다. ‘싱크탱크 국제협력’의 필요성과 방법론, 기회와 도전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언젠가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할 일’이 이미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 곳곳에 미국, 독일, 베트남 등 세계로부터의 소식과 제안들을 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내년 3월 ‘연구회 체제’ 출범 25년을 앞두고 ‘기억’을 ‘기록’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로 경제사회연구회와 인문사회연구회의 임종철, 김영진 두 분을 시작으로 전임 이사장님들의 인터뷰 연재가 이번 호부터 시작됩니다. 그분들과 함께 만들어 온 역사가 있기에 더 먼 곳을 향한 새로운 항해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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