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77년 이상 평화의 시기가 이어지면서 사회과학은 ‘구조’에서 ‘행위자’로 관심이 이전되었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간의 냉전이 전개되면서 사회과학 역시 구조주의의 전성기가 도래하는 듯했다. 남미를 중심으로 전개된 종속이론과 세계체제이론,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네오마르크시즘과 조절이론 그리고 국제정치이론에서 맹위를 떨친 세력균형이론 등이 사회과학의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이론들이었다. 그러나 평화의 시기가 연장되면서 구조의 힘이 변수가아닌 상수가 되었고 구조보다 인류 역사의 주인인 인간 개인 행위자가 사회과학의 관심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원인은 무엇보다도 구소련 진영의 붕괴에 따른 마르크시즘의 몰락 그리고 신고전주의와 통화주의적 경제학의 융성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의 부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최근 복합위기는 다시 한번 사회과학에서 ‘구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는 복합위기로 인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국지전, 1차와 2차에 걸친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를 겪었지만 지혜롭게 극복해 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겪고 있는 최근의 위기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으로 비롯된 자국패권주의, 코로나19 팬데믹, 글로벌화의 후퇴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신냉전, 글로벌 인플레이션, 환경 및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초불확실성 속에서 세계는 당황하고 있고, 이러한 새로운 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변화와 사회과학의 역할
AI, 사물인터넷, 나노바이오 기술, 빅데이터 처리 등 첨단 기술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업이 늘어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격차가 커지고 더 나아가 교육을 통한 성장이동의 사다리도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사회질서와 변화에 관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역할과 책임은 실로 막중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 및 자연과학과의 협력을 통한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최근 복합위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상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기술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정학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복합위기로 인한 대전환 시기에 나타나고 있는 환경변화를 유인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미래 변화를 예측함은 물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해결 방안을 사회과학이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회과학의 새로운 위기, 그리고 도전
사회과학 분야는 최근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과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더욱 침체되어 가고 있고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 세계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사회과학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으나 사회과학은 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화는 그 힘을 점차 잃어가고 있고 지역과 개별국가 그리고 각 문명 간의 대립은 오히려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사회과학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플랫폼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과학은 대전환 시기에 학문 및 학제 간 교류를 통한 융합 연구를 확대하고, 사회과학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책연구기관들과 함께 정책적 그리고 학문적 해결 방안의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 사회과학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 사회과학 분야와 소통하고 협력하고 연결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최근 복합위기는
다시 한번 사회과학에서 구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시아사회과학 국제 컨퍼런스 개최
한국사회과학협의회(KOSSREC; Korean 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는 1976년, 정치, 경제, 경영, 행정, 사회, 여성, 교육, 언론, 문화인류, 지리 등 15개 사회과학 분야 학회들의 협의체로 설립되었다. 한국사회과학협의회는 2022~23년 아시아사회과학협의회 의장국으로 아시아 14개국의 사회과학협의회와 함께 2023년 6월 12~14일 아시아사회과학협의회 창립 5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를 ‘아시아 사회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아시아지역에서 사회과학의 과거 및 현재까지의 경로를 살펴보고 곧 당면할 주요한 문제들을 규명하여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2030년,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글로벌 아시아시대’가 개막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들어섰고 우리 사회 역시 선진사회로 도약하고 있다. 진정한 선진국, 선진사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올바른 사회과학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과학이 아시아 사회과학과 함께 지속 가능한 해결 방안을 수립하여 아시아 국가들이 신냉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시기를 연장하는 데 기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장기간 유지되어 온 유교적 문화 전통하에서 숭고하게 명맥을 유지한 학술적 그리고 지적 권위가 다시금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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