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2 대한민국 미래전망 - 미래 복지

아프면 쉴 권리: 인권과 생산성 모두를 위한 ‘상병수당’

김기태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복지국가연구단  부연구위원 2021 겨울호
2021년 1월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노총-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2호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상병수당 도입 법안인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온 지구가 들끓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경험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에도 H1N1 바이러스가 한차례 전 지구를 강타한 바 있다. 나라별로 수만에서 수천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이 컸다. 여기, 두 나라의 예를 살펴보자. 미국과 독일의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2009년 4월부터 1년 동안 6,08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1만2,000여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대서양 건너 독일에서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경미했다. 비교 대상 기간이 조금 다르지만, 2009년 4월부터 연말까지 5만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12명 정도였다. 차이가 컸다. 왜 그랬을까. 국제노동기구에서 건강 정책을 담당하는 크세니아 샤일-아틀룽(Xenia Scheil-Adlung)은 H1N1 감염병 발발 직후에 낸 보고서에서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든 이유를 상병수당이라고 설명했다. 상병수당은 흔히 ‘업무 외 상병으로 아픈 노동자가 고용이 보장된 상태에서 휴가 혹은 휴직 기간에 받을 수 있는 현금성 급여’를 가리킨다. 상병수당이 있다면, 노동자는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소득도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다. 크세니아 샤일-아틀룽에 따르면, 미국에서는상병수당이 없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아파도 출근해서 감염병이 확산된 반면, 상병수당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독일 노동자들은 아프면 쉴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제도적인 변수가 2009년 두 나라의 감염병 확산 추이를 바꾸었다.

‘아픈 노동’ 예방 위한 상병수당

한국은 불행히도 미국과 처지가 비슷하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상병수당이 없는 네 나라 (한국· 미국·이스라엘·스위스) 가운데 하나다. 네 나라 가운데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법적 규제를 통해서 사용자가 아픈 노동자의 유급 병가를 보장하도록 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무급 병가는 보장한다. 한국은 노동자가 아플 때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OECD 회원국이다.
상병수당의 정의를 되새기면, 상병수당이 한국에 없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상병수당이 없는 한국에서는 노동자가 업무 외 상병으로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으면 일자리를 잃거나, 회사에서 휴직을 보장해주더라도 소득이 끊기는 일이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은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확인됐다. 많은 택배 및 콜 센터 노동자들이 아파도 무리하게 일을 나왔다가 전염병이 확산됐다. 상병수당 도입의 필요성은 이렇게 확인됐다.
상병수당 도입의 필요성을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각각 네 가지씩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 맥락에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병수당은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 필요하다. 둘째, 아파도 꾹 참고 일하는 ‘아픈 노동’을 예방할 수 있다. 셋째, 아파도 일해서 생기는 건강 악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넷째, 아픈 노동자가 소득원이 끊겨 생기는 빈곤화를 예방할 수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는 다음의 이유로 필요하다. 첫째, 아픈 노동으로 초래되는 생산성 감소를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전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셋째, 사회의 빈곤층 증가를 막을 수 있다. 넷째, 장기적으로 의료 비용 증가를 막을 수 있다.

자료: 김수진, 김기태(2020) 누가 아파도 쉬지 못할까: 우리나라의 병가제도 및 프리젠티즘 현황과 상병수당 도입 논의에 주는 시사점. 보건복지 Issue & Focus 391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적절한 급여 수준 책정 등이 관건

한국 정부도 코로나19 감염병의 여파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2022년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3년의 시범사업을 통해 본 제도의 틀을 갖출 것이다. 상병수당의 미래 방향을 설정할 때, 고려할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영업자 및 비정형 노동자들을 얼마나 포괄할 것인가. 즉, 보편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둘째, 상병수당의 급여 수준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아픈 노동자가 생계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급여가 제공돼야 할 것이다. 셋째, 급여 기간 및 대기 기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여기서 대기 기간은 아프기 시작한 시점부터 상병수당 급여를 받기까지 기간을 가리킨다. 대기 기간이 지나치게 길면, 노동자는 쉬지 못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된다. 넷째, 일부 기업에서 기업 복지 차원에서 아픈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유급 병가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한국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못 미치는(46.4%) 노동자가 기업의 병가 혜택을 받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절반이 넘는 노동자들이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사업장이 작을수록, 종사상 지위가 불안정할수록 병가를 누릴 기회는 적다(그림 참고). 상병수당 도입 과정에서 유급 병가를 받는 노동자들은 상병수당과의 매끄러운 연계가 중요하다. 다섯째, 의료적 인증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이다. 상병수당을 받기 위해서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에 대한 기준 설정이 역시 중요하다.
물론, 상병수당 도입으로 아픈 노동자가 쉽게 쉴 수 있는 환경으로 바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노동자가아파도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는 작업장 문화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프면 쉬는 것이 보장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보장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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