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99년 연구회 체제”를 넘어 - <현지기고> 유럽 한국학 전문가의 제언

공동 목표를 갖고 함께 수행할 과제 개발해야

이은정베를린 자유대학교 교수  2022 겨울호

최근 유럽에서도 한국학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몇 개되지 않는 대학에 존재감조차 없이 그저 명맥만 유지하거나 폐지 위기에 놓여 있던 유럽 대학의 한국학과가 2010년 이후 적어도 양적으로는 지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한국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려는 학생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학과가 설치되어 있거나 한국어 또는 한국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학교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22년에는 유럽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교수급 이상의 한국학 전임교수의 수가 40명을 넘었다. 2001년의 유럽 한국학회 연례보고서에 한국학 전임교수가 5명이라고 보고되었던 것에 비하면 가히 기하급수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같은 기관을 통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3년 1월 현재, 독일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총 9개의 한국학 전임교수직 중에 6개의 자리가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졌다. 이제는 베를린 자유대학과 보쿰대학처럼 한국 정부의 지원 없이 독일 정부의 예산만으로 정교수직을 설치한 곳이 예외적일 정도이다.

양적인 팽창에도 일본학, 중국학에 못 미쳐

유럽 대륙의 대학에 한국학 교수직이 설치된다는 것은 한국학과가 설립되고 학사과정부터 한국학을 전공하는 유럽인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미권 대학의 경우는 한국학이 학부 전공과목으로 존재하지 않고 대학원에서 한국 관련 주제에 관한 논문을 쓴다. 반면 유럽 대학은 학부과정부터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학부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대학원에서 한국학 석사를 전공하는 학생 수보다 훨씬 많다. 한국학과가 설치된 많은 대학들은 학부과정의 한국학 전공 학생 수가 300명을 넘는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런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은 아직 일본학이나 중국학과 달리 유럽 학계 내에서 학문적으로 크게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중국학과 일본학의 경우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유럽 대학에서 분과학문으로 정착되고 독립된 이후 100년 이상의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연구성과가 축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분과를 넘어서 전체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저명한 학자도 적지 않게 배출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일본학과 중국학 연구자 간에 연구방법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일기도 했다. 인문학적 전통에 기반하며 지역학으로 발전한 동아시아학과 사회과학적 지역학으로 제도화된 북미의 동아시아학 간의 연구방법에 대한 헤게모니 싸움이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는 지역학의 연구대상과 연구자 간의 관계성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지역학의 연구대상을 피동적인 대상으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일본학에서는 1980년대에, 중국학에서는 1990년대에 사회과학적 전환을 이루었다. 유럽에서의 일본과 중국 연구는 현재 문학·사학·철학 중심의 전통적인 연구와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둔 경험적 연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2023 신년 기념사진

한국인 학자들의 주도적 역할 속, 성장하는 한국학

2차 세계대전 후 소수 유럽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학 연구와 교육은 1990년대까지 유럽의 인문학적 지역학의 전통 속에서 언어학적 방법론과 문학과 역사적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유럽 대학이 새로 임용한 교수 중에 한국에서 태어나 북미권의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한국인 학자의 비중이 높아졌다. 현대 한국의 사회와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영미권과 마찬가지로 유럽 대륙의 한국학에서도 연구방법과 연구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논쟁 없이 사회과학적 전환과 함께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가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공공외교의 틀에서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고, 동시에 한국인 학자들이 각 대학에서 한국학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의 한국학은 19세기 인문학적 전통 위에서 발전한 지역학,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틀에서 미국 정부의 주도로 정착된 사회과학적 지역학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의 지역학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타자를 관찰하는 지역학이 아니라 연구대상인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연구의 새로운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 한국학의 이런 변화로 인해 한국의 다양한 연구기관과 긴밀한 교류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긴 호흡으로 활용할 절호의 기회

학문적인 필요성뿐만 아니라 유럽의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으며, 현재 상황을 개선해야만 한다는 현실적인 요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싱크탱크와 유럽의 다양한 공공기관, 싱크탱크 간의 교류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유럽 대학의 한국학이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유럽은 한국에 관한 관심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정부와 공공기관에 한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 그나마 유럽 싱크탱크에서 한국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원래 일본 또는 중국전문가이다. 동아시아 지역전문가라는 명목으로 한국문제에 대해서 몇 차례 언론에 인터뷰를 하고 난 후, 갑자기 한국전문가라고 알려지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여전히 일본전문가 또는 중국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 일본 또는 중국 중심적인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싱크탱크들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유럽 싱크탱크의 한국 전문가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한국 전문가들은 한국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일회적인 이벤트성의 만남 또는 학술회의의 형태가 아닌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과제를 개발해야 한다.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지혜의 샘’ 정자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에서도 불고 있는 한류 붐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 통하지 않고 한국을 통해 동아시아를 처음 접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 청소년 세대가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한국에 우호적인 지한, 친한 인사로 성장해서 한국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유럽의 차세대 한국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단시간 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정책과 비전이 필요하다. 한국 대중문화 붐이 만들어준 절호의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19세기 말에 불었던 일본풍을 통해 만들어진 일본문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호감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이 유럽 사회에도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