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99년 연구회 체제”를 넘어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연계성 강화와 거버넌스 구축

서민영KDI국제정책대학원 연구지원팀장  2022 겨울호

개발협력 분야에서 연구와 경험에 기반한 지식공유의 필요성은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사회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원조에 집중해왔으나, 원조가 의도한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자 ‘제도 개선’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개선의 노력 역시 한계를 드러내자 근본적인 개발 및 정책 역량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지원과 제도적 거버넌스 개선에 앞서 문제점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1996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연차총회에서 당시 세계은행 총재였던 제임스 울펜손(James Wolfensohn)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해 개발 경험, 정책 수립 및 입안의 노하우 등 비물질적 자산인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개발을 위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식공유를 통한 개발협력은 형태와 내용 측면에서 지속해서 진화해왔다. 특히 ‘무엇’을 공유하느냐를 넘어 ‘누구’와 ‘어떻게’ 공유하느냐, 즉 지식공유의 방식에 있어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최근 개발협력 및 지식공유사업은 정부 기관과 국제기관이 주도하는 과거의 하향식·일방적 원조 패러다임에서 정부와 시민사회, 학계와 기업이 결합하여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이를 지식의 축적과 공유로 환류하는 양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또한 분야별·주제별 단편적 접근이나 분절적 접근방식으로는 영향력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지역 특성, 사업 분야, 주제, 프로젝트 방법과 전략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글로벌 트렌드 4가지

개발협력에서 연구기능의 역할 역시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선진공여국들은 지식공유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위한 개발협력 아젠다를 도출하고, 지식공유 사업의 기획·평가를 지원할 수 있는 별도의 연구조직을 부처 또는 시행기관 내에 두고 양질의 연구 결과물을 산출한다. 협력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지식이 활용 및 축적되고 있으며, 실험적 방법을 활용한 개발협력 사업의 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축적된 증거들을 여러 주체에 공유하여 사업의 효과성을 높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연구기관들은 연구 결과를 공유·확산하여 국제개발 어젠다를 설정하고, 민간·공공 간 협업을 촉진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개발협력 변화의 흐름을 민첩하게 감지하고, 선제적인 연구를 통해 개발협력의 지적인 리더십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은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는 개발협력 관련 연구 어젠다와 이를 뒷받침할 역량과 전문성을 보유한 국책연구기관이 나아갈 방향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최근 연구 및 활동 사례를 분석하여 최근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협력 분야와 지역의 전략적 선정, 민간-공공 협업의 촉진 및 지원, 증거기반 정책수립 연구, 개발의 성과 확산을 위한 연구성과물 공유 및 자료공유 플랫폼의 활용이다. 주요 흐름 중 하나는 각국이 자원을 다양한 지역 및 대상에 분배하기보다는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각국 ODA 비전이 포함되는 개발협력 전략서는 개발협력 전담연구부서 또는 시행기관을 중심으로 작성되고, 국가에 따라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간의 ODA 추진 방향이 결정된다. 이러한 전략적 중점협력 지역 및 분야 선정에 있어 연구기관들은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최근 정책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실험적 방법에 근거한 증거기반 정책수립(evidence-based policymaking)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이는 개발협력 분야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영향평가 연구 결과는 각종 이해관계를 최대한 배제하고 개발사업을 효과적으로 설계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수행기관들을 중심으로 연구 결과물의 정리 및 분석, 그리고 데이터의 활발한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지식공유사업 역시 공여국의 특수성을 넘어 근거에 기반한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선진공여국 사례를 통해 연구 결과의 관리와 환원이 비교적 일관성 있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별로 개발협력 사업과 연구의 기능, 기관 형태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연구 결과의 공유와 환원 메커니즘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또한 사업수행 주체에 차이가 있더라도 연구 결과는 동일한 채널을 통해서 관리되고 축적되며, 연구 결과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전략적 연계를 통한 경쟁력 강화

우리나라는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에 도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지식이 개별 분야나 주제별 전문조직이나 연구기관에 의하여 분절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서로 다른 협력국의 상황 및 조건에 적용 가능할 정도로 가공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 및 지역, 프로젝트에 대한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으며 개별 지식 역시 보편성 및 다양한 조건의 협력국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고려하여 가공될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이 대외전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므로 개발협력 분야에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확보하고 정부의 ODA 혁신계획에 부응하기 위하여 연구기능의 강화 및 효과적인 연구기관 간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개별 연구기관 차원에서는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연구 결과물과 인적네트워크 자산을 체계적으로 축적·활용하는 한편, 국제개발협력 관련 중장기 연구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발협력 전략 수립 및 기획 운영에 도움이 되는 지적 자산을 ODA 주관부처 및 시행기관에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국책연구기관 간 연계 시스템이 확립되면 대학, 학회, 민간연구소 및 기업을 포괄하는 ODA 연구생태계를 구축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개발협력 사업 지원을 위한 연구기능이 활발하게 작동하고, 결국에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효과성을 높이어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확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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