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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에서 지역민으로 : 진천 취미부자 이야기

도재우한국교육개발원 디지털교육연구실 부연구위원  2022 겨울호

나는 자타공인 취미부자이다. 취미부자의 삶은 대학 시절 읽은 책 한 권으로 시작되었다. 내 삶을 바꿔준 책 중 하나인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에서 마지막 습관으로 ‘끊임없이 쇄신하라’를 소개한다. 나는 그 습관을 ‘톱날을 갈아라’로 기억하고 있는데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무뎌진 톱날로 열심히 또 열심히 나무를 베는 것보다 톱날을 가는 쇄신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그 책을 읽고 난 내 삶에 톱날을 가는 장치들을 늘 만들고 있다. 즉, 나에게 취미란 내 삶의 톱날을 가는 충전적 활동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입사로 생각지도 못했던 진천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 만들기를 시작했다.

진천이기에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취미, 캠핑

바야흐로 캠핑의 시대이다. 많은 이들이 짐을 꾸려 자연이 주는 감성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캠핑을 떠난다. 놓칠 수 없는 취미이기에 캠핑 전문가였던 친구에게 좋은 캠핑장 추천을 요청했다. 그 친구는 “진천이 캠핑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왜 그걸 내게 묻냐!”라고 말해주었다. 등장 밑이 어둡다고 알고 보니 내가 사는 진천은 ‘캠핑 명소’였다. 진천 곳곳의 캠핑장들은 주말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캠핑장이었다. 그 이후, 나는 진천 백곡저수지 근처의 조용한 캠핑장에 장박지를 마련했다.

나의 캠핑은 주말의 특별한 행사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날 업무에 지쳐 퇴근할 때면 내비게이션을 집이 아닌 20분 거리의 캠핑장으로 설정한다. 장작 한 박스를 사서 장박지에 도착하면 주섬주섬 모닥불을 만든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과 풍경화 같은 자연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요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놀러온 길고양이들을 위해 목살 한 점을 더 굽기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자연에서 감성을 충전하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내일의 출근을 준비한다. 진천이라는 곳에 사는 나이기에 일상 안에서 캠핑을 취미처럼 즐기고 있다.

작은 성취감을 주는 동네 꽃집에서의 꽃 공부

국책연구기관에 소속된 연구자의 삶에서 행동적 퇴근은 있어도 인지적 퇴근은 쉽지가 않다. 퇴근하고 몸은 집에 와있지만 나의 인지는 (의도와는 다르게) 여전히 수행하고 있는 연구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1년 정도의 긴호흡으로 진행되는 연구들은 때론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꽃(식물) 공부는 산출물 생산에 장기적인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단기적 산출물로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취미이다.

지인에게 줄 꽃을 사러 동네 꽃집에 들렀다. 한 송이 꽃의 포장을 부탁드렸는데 처음엔 가격을 듣고는 ‘한 송이인데 왜 이렇게 비싸지’하고 생각했다가 포장된 꽃을 보고는 사장님께 “여기 레슨도 하시나요?”라고 나도 모르게 묻게 되었다. 그렇게 매주 1회 꽃을 만나고 공부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딱딱한 글들과 보낸 하루를 뒤로 하고 화사한 꽃 그리고 따스한 수다가 가득한 레슨 시간을 가진다. 이 시간은 내게 업무와는 분리된 인지적 휴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레슨을 통해 완성한 나만의 작품을 통해 나에게 작지만 화사한 성취감을 제공한다.

  • 테라리움 만들기(작업 중)
  • 테라리움 만들기(완성)
  • 리스 만들기
  • 하트꽃다발 만들기

지면의 한계로 내가 진천에서 즐기고 있는 모든 취미를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취미 외에도 저녁 시간에는 동네 젊은 청년이 되어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기도 하고, 진천 지역의 커피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역 커피점을 탐험하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렇게 돌아보니 내가 이곳에서 즐기고 있는 취미는 진천이라는 지역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취미이다. 취미가 늘어가고 깊어갈수록 나는 내가 이주민이 아닌 지역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낯선 도시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직장 동료뿐이었는데 이제는 길을 걷다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되는 지역주민들이 꽤 많아졌다. 앞으로도 이어질 취미부자의 삶은 내 일상의 충전뿐만 아니라 진천 지역민으로서 내 정체성을 확고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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