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커스 칼럼 인공지능(AI) 시대의 휴머니즘인류 문명은 도구와 사상이 상호작용하며 발달해왔다. 어느 시기에는 도구가 인간의 삶과 사상을 바꾸기도 했고, 어느 시기에는 사상이 주도하여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삶을 바꾸어 나갔다.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인간 고유 영역의 많은 것들을 기계와 기술로 대체하고 있다. 새로운 AI를 인간이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할 것이냐에 따라 인류 문명은 또 다른 변화와 질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난 6월 구글 엔지니어인 블레이크 러모인은 챗봇 람다가 개발자와의 대화에서 ‘자의식’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자의식’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남과 구별되는 자기 자신, 즉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인은 의사표시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화가 되지 않는 어린아이, 동물 또는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공지능(AI)의 자아의식에 관한 질문 어느 물체가 자아를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개체보존 활동 여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도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기 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자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의 자아 논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집이 정전된 적이 있는데, 충전기에 전기가 없어지자 로봇청소기가 삑삑 소리를 내며 온 집안을 헤매고 다녔다. 이러한 현상과 어린아이가 배가 고플 때 소리 내어 우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러한 자아를 `‘유사 자아’라 부르고자 한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유사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100년 후가 되면 거의 모든 인공지능 기계들이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받으려 애쓰는 `‘유사 자아’를 가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자아의식까지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인간과 인공지능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미래에도 인본주의 휴머니즘 사회를 유지해야 한다. 사상이 변화를 주도하여 새 질서 확립 기존의 사회는 생산도 인간이 하고 의사결정도 인간이 한다. 21세기 후반에는 생산은 인공지능이 하고, 인간은 놀면서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생산자와 의사결정자가 불일치하게 될 때 생기는 이러한 부조화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15세기 대항해시대에 부르주아 신흥귀족들이 출현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귀족들이 이들의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자 신흥귀족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확립했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노동자 계급의 생활이 궁핍해지고 있었지만 왕과 귀족들은 이를 외면했다. 결국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새 질서를 추구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도구의 변화를 지혜롭게 수용하지 못하여 피를 통한 혁명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역사이다. 반대로 사상이 주도하여 도구의 변화를 평화적으로 수용한 예도 있다. 철기 문화의 발달로 인간은 대량 살상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 원시사회의 약육강식 원리로는 인류의 평화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약 2,500년 전에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 등의 성인들은 인간사회의 규범을 정해주었다. 이들을 통해 인간은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 확립되었다. 여성해방도 사상이 주도하여 평화롭게 질서를 만든 사례에 속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본주의 사상을 지키기 위한 휴머니즘의 발전과정이라 할 수 있다. 도구가 발전하면서 그것에 맞게 삶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여 인간성을 보호해왔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인류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거대한 물결처럼 밀고 들어오는 인공지능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인간과 함께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길을 연구해야 한다. 21세기 휴머니즘 2.0 21세기야말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시대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며 인본주의 사상을 고양시키는 학문이다. 우리 인간은 밀려오는 인공지능 물결 앞에 서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휴머니즘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융합하여 만들어내는 사상체계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전 세계가 인문학의 위기에 놓여 있다.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도구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 주체가 인문학이기 때문에 인문학이 몰락하면 인류 문명이 길을 잃게 된다. 방향을 잃은 도구의 발전은 디스토피아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1세기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이 필요하다. 이를 “휴머니즘 2.0”이라 부르고 싶다. 새로운 휴머니즘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융합하여 만들어내는 사상체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도 인문학을 연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자들도 과학기술을 공부해야 한다. KAIST에서는 디지털인문사회학부를 출범시켜 휴머니즘 2.0 사상을 연구하며, 인간 중심의 기술개발을 추진하려 한다. 기술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학자들이라 가장 먼저 느꼈고, 앞장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평화를 위해 움직인 역사였다.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평화를 위해 타협하기도 투쟁하기도 했다. 이제 인공지능(AI)이라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 왜소해지고 있는 인류를 보호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결국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된 호모사피엔스는 이번에도 승리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이광형KAIST 총장 2022 가을호
-
편집인 생각 ‘설명’으로서의 책임과 ‘응답’으로서의 책임올해 한글날 다음날은 대체공휴일이었습니다. 쌓인 자료도 정리하고 국정감사도 준비할 겸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일을 하다가 잠시 틈을 내어 김기협의 『오랑캐의 역사 :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 읽기도 마무리했습니다. 미·중 패권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앞둔 시점에 “도대체 중국과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꽤 어렵고 큰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시작한 독서였습니다(러쉬 도시가 쓴 『롱 게임 : 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과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책은 반대로 ‘중심’으로부터 중국을 이해하려한다는 점에서 또 다르게 흥미롭습니다). 오후 내내 비와 햇살이 번갈아 쏟아지길 반복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를 기다려 자전거를 타고 연구회 앞 다리를 건너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왼편으로 2027년 이전 예정의 국회 세종부지가 꽤나 넓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참을 달려 국무조정실 앞에 도착했고, 조금 더 갔더니 기획재정부가 나타났습니다. 비 때문에 자전거 귀가를 포기하고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국무조정실이나 기획재정부보다 국회가 훨씬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국회와 국책연구기관은 국정감사나 예·결산 때 국회 정무위원회 피감기관 정도로 다뤄지는 게 현실인데 앞으로는 거리만큼 관계도 가까워지길 예상하고, 또 기대해봤습니다. 국무조정실이나 기획재정부, 그리고 한창 국책연구기관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감사원과의 관계도 생각해봤습니다. 이들도 질문을 하고, 설명과 답변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주로 ‘영수증’으로 상징되는 회계적 차원의 ‘설명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설명 책임(accountability)’이란 기록에 의해 제3자에게, 또는 법령에서 지정한 기관에게 업무 또는 행정 수행의 전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기록학 용어 사전』)으로 정의됩니다).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책임’도 있습니다. 역사적·사회적 차원의 질문과 요구에 ‘응답’해야 할 책임입니다(일본의 전쟁책임을 다룬 가토 노리히로의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 전후 일본의 해부』를 대학원 시절 읽으며 ‘응답으로서의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한 제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국책연구기관과 연구회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할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답해야 합니다. 예컨대 ‘글로벌 복합위기의 장기화’에 대응한 ‘선제적 안전판 구축’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와 의지 표명은 무거운 질문과 요구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은 이에 답해야 합니다. ‘99년 연구회 체제’가 IMF 금융위기에 대한 예측과 대응을 제대로 못한 데서 시작되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복합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한국형 경제안보’ 전략을 최고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선제적으로 제안해보았습니다. 그간 충분히 접할 수 없었던 아세안 싱크탱크의 역할과 역량, 향후 협력방안에 대해 박번순 연구위원 인터뷰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광재 국회사무총장은 세계를 움직이는 ‘생각의 힘’과 국가 싱크탱크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강조했습니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던진 “인공지능 시대 휴머니즘”이라는 화두는 질문과 응답의 수준을 더 높일 것에 대한 주문이었습니다. 이번 호가 국책연구기관이 ‘응답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영수증 노릇을 했길 바랍니다.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2022 가을호
최근호 보기 총 15 건
포커스 칼럼 불확실한 미래, 미래창발적 비전을 갖자 임현진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2023 겨울호 |
편집인 생각 갑진(甲辰) 새해, 값진 한 해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 2023 겨울호 |
포커스 칼럼 21세기 지성공동체, ‘하회과학자마을’ 이철우경상북도지사 | 2023 가을호 |
편집인 생각 싱크탱크의 처음과 끝은 결국 ‘사람’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 2023 가을호 |
포커스 칼럼 함께 한 50년, 함께 할 50년 김복철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2023 여름호 |
편집인 생각 만남과 인연, 그리고 ‘멋진 신세계’로의 여정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 2023 여름호 |
포커스 칼럼 선행학습과 간척사업 최재경고등과학원 원장 | 2023 봄호 |
편집인 생각 Busan is Ready! Are we Ready?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 2023 봄호 |
포커스 칼럼 ‘글로벌 아시아시대’ 사회과학의 도전 박영렬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 연세대학교 교수 | 2022 겨울호 |
편집인 생각 워싱턴 DC, MP3, 페루, Zoom, 그리고 ‘싱크탱크 국제협력’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서울대학교 사회학 박사, 『세계를 이끄는 생각: 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저자 | 2022 겨울호 |